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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희 작가의 “사진 잘 찍는 법”(58)] 흑과 백

김홍희 사진작가 승인 2018.05.30 01:04 의견 0

작가 중에는 흑백 사진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컬러 시대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흑백으로 작업하거나 그것에 몰두하는 사진가들이 있지요. 저는 어느 하나를 고집하지 않고 컬러와 흑백을 오가면 작업합니다. 컬러로 작업을 해야 할 경우는 컬러로 작업을 하고, 흑백으로 해야 할 경우는 흑백으로 합니다.

현란한 색으로 무엇인가를 표현해야 할 때는 망설임 없이 컬러로 작업을 합니다. 대신 중후하고 메스와 라인으로 그 본질을 드러내야 할 경우에는 서슴없이 흑백 작업을 합니다. 컬러는 색의 현란함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흑백은 덩어리와 선만으로 메시지를 전달하지요. 어느 것이 옳다 그르다의 세계는 아니고 어느 것을 선호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저의 경우는 작품 자신이 스스로를 컬러로 작업을 해 달라거나 흑백으로 작업을 해 달라고 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예를 들어 쿠바나 인도의 현란한 색이 존재하는 세계의 사진을 작업했을 때도 그 현란하고 황홀한 색을 버리고 흑백으로 작업을 주문하는 사진들이 있습니다. 이 때 저는 사진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고 그들을 색으로부터 분리 시켜 흑백으로 작업을 합니다.

저의 쿠바 사진은 그래서 다 흑백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쿠바의 햇살이 주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색을 왜 버리느냐고 묻습니다. 이럴 때 저는 딱히 드릴 답이 없습니다. 다만 색을 지움으로써 그 본래의 색을 상상하게 만들어 관객을 유혹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 합니다.

흑백으로 작업하면 색은 사라지지만 상상의 색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관객의 몫이 되고 관객의 경험에 따라 하나의 검정은 수많은 색으로 되살아납니다. 되살아 난 검정의 컬러는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연녹색으로 보면 어떤 사람은 붉은 색으로 봅니다. 색이 없는 한 장의 사진에서 사람들은 수많은 색들을 스스로 구현하지요.

김홍희 사진작가 제공

생각해보면 흑과 백은 선과 악이나 양과 음처럼 절대적 대응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극단의 세계에 흑과 백이 존재하는 셈입니다. 그 극단을 잇는 것이 바로 그라데이션, 계조입니다. 존 시스템을 통해 우리는 계조를 공부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존 시스템의 열 단계는 수식적인 단계에 불과 합니다. 실로 흑과 백 사이에는 수많은 계조가 있지요.

이것은 마치 우리 인생을 말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천국과 지옥이 우리의 삶 속에 있다면 우리는 그 안에서 스스로 수많은 계조 중의 하나를 선택해서 삶을 영위하거나 그 계조들을 옮겨 다니면서 자신이 원하는 검정이나 하양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계조는 인류의 수가 72억이면 72억의 계조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 72억의 계조가 바로 삶을 표현하고 그 안에 우리가 있다고 저는 생각 합니다. 흑과 백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개개인이 하나의 검정이나 하양을 지향하는 동안 조화로운 흑백사진이 완성 된다는 것입니다. 일부러 하이키나 로키의 사진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개는 아름다운 흑백 사진을 원한다면 이 모든 계조를 조화롭게 구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또 다른 모습이고 흑백 사진의 묘미라고 저는 생각 합니다.

절대 검정이 뭉개지기 전까지, 절대 하양이 날아가기 전까지 우리는 흑과 백을 구현하려고 합니다. 그 극단의 순간까지 가면서 망가뜨리지 않기. 이것이 바로 인생과 같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절대절명의 흑과 백 속에 수많은 검정과 하양을 배려하기. 이것이 밸런스 있는 삶과 닮아 있지요.

사람들은 ‘흑백이 좋으냐, 컬러가 좋으냐’로 세상을 양단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작가의 선호도에 의해 결정 됩니다. 그리고 보는 관객의 기호일 뿐입니다. 이런 점에 묶이지 아니하고 절대의 검정과 하양을 쥔 채 온 우주의 계조를 드러내기. 이것 자체가 삶을 지향하는 우리들의 자세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 합니다.

극단을 자유롭게 오가며 그 안의 모든 세상을 수렴하기. 극단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그 안의 계조를 다양하게 구현하기. 한 장의 흑백 사진에는 이런 철학이 존재 합니다. 그저 프린트를 잘 하는 장인의 솜씨를 벗어나 우리는 그 이상의 이데아를 담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이지요. 그거 솜씨에 의존하는 것과 마땅히 그러해야 할 당위성을 찾아 프린트 하는 것에는 외적으로는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실로 그 안에는 엄청난 차이를 가지게 됩니다. 사람들이 한 장의 흑백 사진을 볼 때 그 솜씨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담긴 작가의 정신까지 다 닿아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 장의 흑백 사진에는 그 사람의 교양과 사상과 철학, 그리고 사진을 다루는 기능과 기술의 차이 등 모든 것이 드러납니다. 이런 것은 사진을 프린트 하면서 얻을 수 있는 기능적 완성도 일 수도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 내면에 드러나는 사진가의 정신세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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