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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_이야기(52)] 책임완수! 생선장수 최재욱 병장_02

이정환 기자 승인 2018.06.01 14:20 의견 0
그렇게 반가운 만남을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가게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아서 동네 술집들을 잘 모르는 최병장을 데리고 욕쟁이 탱자씨네 포차로 갔다.

 

“탱자이모, 이분이 저기 새로 문을 연 생선가게 사장님이셔.”“아무튼 조카는 오지랖도 넓어. 그새 친해진 겨”“아니 그게 아니고 이 분이 나 군생활 때 내무반 고참이네요. 앞으로 잘 좀 대전해드려. 동네 텃세 부리지 말고. 응”“씨벌 조카는 날 뭘로 알고 텃세 고 뭐고 지랄이야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응 충분히 그렇게 보여. 그러니까 좀 잘 해드려.”

 

최병장은 ‘생선가게를 하다 보니 생선요리는 싫다’면서 제육볶음을 주문했다.제육볶음 한 입을 맛보자 마자,“야! 이병장 이집 물건이네 물건…… 어쩜 제육볶음이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지 여기요 사장님 이거 포장되요 배달이 되면 5인분만 더 만들어서 저기 우리 가게에 배달 좀 해주시고…… 집에 갈 때 가져가게 4인분 포장해주세요.” 군생활 때의 호들갑스런 모습이 하나도 바뀌질 않았다. 손이 큰 것도 여전하다.아무튼 탱자씨는 그 호들갑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버렸다. 최병장은 그렇게 탱자씨를 화끈하게 제압했다.

 

그 이후로 최병장은 생선가게 문을 닫을 시간이면 술 마시자고 내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최병장은 나로도 외삼촌, 성인용품점 백열 형, 돈까스집 사장 진수와도 자연스레 친해지면서 동네 텃세를 무사히 피했다.

 

“어이 이병장 바빠” 술 마시자는 전화가 왔다. “제수씨랑 애들 데리고 나와. 우리 가족들 소개해줄 테니까.” 여긴 롯데백화점 뒤 양꼬치집이야.” 이미 얼큰하게 취한 목소리다.

 

기백엄마가 웬일인지 흔쾌히 나간다고 한다.“제수씨 이병장이 말이에요. 군생활 할 때 전설이었어요 전설. 완전 꼴통이라 골치가 아팠어요.” 라며 예의 그 호들갑을 떨기 시작한다.“이미 어머니께 들어서 잘 알고 있어요. 걱정이 돼서 면회를 한달에 두번씩이나 갔다면서요” 기백엄마가 최병장의 말을 자른다.

 

최재욱 병장은 고향인 청양으로 귀촌을 했다. 필자는 요즘도 가끔 청양에 있는 최병장을 찾아가 술잔을 기울인다. 며칠 후 그와 다시 만나서 그간의 회포를 풀 생각이다. 사진의 오른쪽 앞이 육군병장 최병장이다.

(이정환 작가)

 

최병장의 부인은 최병장과는 다르게 상당히 교양스런 분이다. 큰 아이는 딸인데 이대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호주 유학을 준비 중이다. 둘째인 사내 아이도 일류대학 신입생이다. 아무튼 외모로는 최병장만 겉돈다. 양꼬치집에서 양가 인사를 나누고 진하게 회포를 푼 후 최병장과 나는 둘이서 한잔을 더 마시러 갔다.

 

최병장네 생선가게는 곧 동네 명물이 됐다. 최병장의 너스레에 동네 아줌마들을 배꼽을 잡고 웃으며 생선을 사게 됐다. 늦은 시각에 생선의 신선도가 떨어지면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거저 나눠주기도 했다.

 

최병장의 고등어와 이면수를 간 잡는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간이 딱 맞게 베어 여기서 자반을 한번 사서 먹으면 다른 곳의 자반을 먹을 수가 없다. 안동 간고등어가 맥을 못 출 정도였다.

 

그렇게 삼사 년을 보낸 후 어느 날 최병장은 심상치 않은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이병장, 우리 이별주 마시게 제수씨랑 나와.”

 

돈을 벌만큼 벌었으니 이제 고향에 가서 농사나 지으면서 살고 싶다는 거다. 그런데 최병장의 부인은 시골 생활이 싫다면서 딸이 유학간 호주로 가고 싶다고 한단다. 아들은 서울에서 자취를 해야 하니 그야말로 이산가족이 되는 거다.

 

결국 최병장은 자기 고집대로 고향인 청양으로 내려갔다.그와 부인은 이혼을 했다. 최병장은 청양에서 애인을 둘, 셋이나 사귀면서 인생 이모작을 훌륭하게 지내고 있다. 요즘도 나는 가끔 청양에 내려가서 며칠씩 놀다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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