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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희 작가의 “사진 잘 찍는 법” (64)] 대가와 대가증후군

김홍희 사진작가 승인 2018.06.11 13:32 의견 0

2017년 4월에 개봉한 영화 중 ‘지니어스’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편집자 ‘맥스 퍼킨스와 그를 만나 천재 작가로 부상한 ’토마스 울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였습니다.

천재적인 작가 토마스 울프의 글을 다듬어 가는 장면이 영화에서 길게 소개가 됩니다. 한 작가의 영혼이 담긴 글을 줄이고 줄여 엑기스만을 남기는 장면에 대단한 감동이 밀려 들어왔습니다. 사진도 똑 같은 작업을 통해 한 권의 사진집이 남으니까요.

토마스 울프의 데뷔작 ‘천사여, 고향을 보라’ 이 후 두 번째 작품은 초고는 자그만치 5천매에 이릅니다. 이 원고 역시 원고의 내용을 줄이는 작업에서 편집자인 ‘맥스 퍼킨스’와 ‘토마스 울프’ 사이의 갈등과 반전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작가가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을 때 자신의 원고 한 장 한 장에 애정을 가집니다. 이 애정의 산물을 버리고 지우는 과정은 마치 영혼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을 느끼게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잘 다듬어진 작품으로 다시 재탄생합니다. ‘지니어스’에서는 편집자와 작가간의 갈등을 장면으로 묘사 합니다.

영화 전체를 통해 기억에 남는 장면은 편집자인 ‘맥스 퍼킨스’의 아내가 휴가를 함께 가지 못하는 남편에게 불평을 털어놓자 ‘맥스 퍼킨스’가 ‘토마스 울프’를 걱정하며 함께 휴가를 갈 수 없는 사정을 말 하는 대사입니다.

‘그는 지금 두 번째 작품을 쓰고 있어. 첫 번째 작품으로 천재 작가라는 인정을 받았어. 그래서 지금 쓰는 작품에 대해 스트레스가 엄청 많아. 내가 옆에서 지켜주지 않으면 그가 쓰던 글이 어떻게 될지 몰라.’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대개 전시나 사진집을 출판하고 난 뒤 오랜 침묵의 시간을 거치는 작가들을 봅니다. 편집자 ‘맥스 퍼킨스’의 말에 따르면 첫 전시나 출판 보다 더 좋은 작품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지요. 저는 이것을 ‘대가 증후군’이라고 부릅니다.

김홍희 사진작가 제공

한국 사회에서는 책 한 권을 쓰거나 사진집 한 권을 내면 대개 작가로서 대접을 해 줍니다. 책을 쓰거나 사진집을 내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다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첫 번째 책은 오랜 열정과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송두리째 쏟아 붓기 때문에 적어도 평년작은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두 번째 책입니다. 잘 했다는 소리를 들은 뒤 책의 가치나 그 성과를 한 번 맛본 사람은 쉬이 책을 내기가 두려워집니다. 뿐만 아니라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부담감이 자신을 억누릅니다. 이렇게 되면 글이든 사진이든 진행이 안 됩니다. 아주 오래고 긴 터널을 지나는 과정을 겪게 되지요.

이 터널을 뚫고 지나와 성숙한 작가로 돌아오는 사람도 있지만 이 터널 속에서 길을 잃고 평생을 빠져 나오지 못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 친구 중에 문학 비평가가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실력자입니다. 이 친구가 하루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신춘문예’에 당선된 후 죽을 때까지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신춘문예가 그의 정점이다”라고.

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대가 증후군’에 빠져 글을 쓰지 못하거나 다음 작품을 발표하지 못하고 사라져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빠져 나가야 할까요 수많은 작가들이 하나의 작품을 발표한 후 어두운 침묵의 세계에 빠져 자신과 사투를 벌입니다. 그런데도 뾰족한 수가 없어 좌절하고 사라집니다.

저는 사진을 촬영할 때마다 좌절합니다. 한 번 취재를 가서 촬영을 할 때 며칠 동안 사진이 제대로 찍히지 않고 마음에 드는 사진이 걸리지 않아 받는 스트레스가 엄청 납니다. 그 때마다 원고 청탁을 거절하지 않고 받은 것을 후회 합니다. 그러면서도 일을 합니다. 더 큰 스트레스는 촬영한 원고를 가지고 컴퓨터에 넣고 사진을 볼 때입니다. 이 때는 정말 좌절의 나락으로 빠져서 헤어나지를 못 합니다. 결국은 컴퓨터를 끕니다.

그리고 원고 마감 날이 다가오면 다시 컴퓨터를 켭니다. 그리고 다시 사진 원고를 뒤져봅니다. 어쩌다 생각지도 못한 좋은 사진이 한 장 있습니다. 그럼 용기를 내서 또 다른 사진들을 찾아봅니다. 그럼 또 어쩌다 한 장 좋은 사진을 건집니다. 그러나 원고에 충분한 사진을 찾아내면 속으로, ‘역시 나는 천재야.’ 이러면서 아무도 없는 작업실에서 상체를 뒤 흔들며 환호를 칩니다. 그리고 난 뒤 사진들을 손보기 시작 합니다.

지옥과 천국을 매번 오갑니다. 이렇게 좌절과 희망을 반복 합니다. 거기서도 좌절과 희망을 매번 맛봅니다. 쓰기가 말 할 수가 없습니다. 절대 원고 청탁 안 받는다는 각오를 수도 없이 합니다. 그러면서 또 새로운 작업에 몰두 합니다.

이게 작가가 사는 법입니다. 대가 증후군에 걸려도 해야 하고 못나가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이 이것 밖에 없습니다. 절망 속에서 셔터를 눌러야 하고 글을 써야 합니다. 그리고 환희와 희망을 만나지만 그다지 오래 가지 않습니다. 천구과 지옥을 동시에 이것을 인정하기. 이것이 작가 증후군으로부터 빠져 나오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찰스 부코스키’의 글 ‘작가가 되길 바란다면’을 하나 올리겠습니다.

작가가 되길 바란다면모든 것이 준비되었어도당신 안에서 터져 나오는 것이 없다면작가가 되지 마라.당신의 가슴과 당신의 정신과 당신의 입술에서,당신의 속 깊은 곳에서미처 묻지 못한 것이 없다면작가가 되지 마라.적당한 말을 찾기 위해몇 시간 동안이나컴퓨터 화면을 쳐다보거나타자기 앞에웅크리고 있다면작가가 되지 마라.돈을 바라거나명성을 얻으려고 쓰고 있다면작가가 되지 마라. 침대에 여자들을끌어들이기 위해 쓰고 있다면작가가 되지 마라.자리에 앉아서 먼저 쓴 걸고치고 또 고치고 있다면작가가 되지 마라.글쓰기에 대해 계속 생각하면서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면작가가 되지 마라. 다른 누군가처럼 쓰기 위해서애쓰는 중이라면작가가 될 생각을 잊어라. 당신 안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를기다려야 한다면참을성 있게 그것이 오기를 기다려라.그리고 결코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면다른 일을 찾으라. 당신이 쓴 것을 아내한테, 여자 친구한테, 남자 친구한테,부모한테, 아니 다른 누구한테먼저 읽혀야 한다면당신은 아직 준비가 되어 있는 게 아니다. 수많은 작가들처럼 되지 마라.스스로를 작가라 부르는 많은 인간들처럼 되지 마라.따분하고 지루하고가식적인 작가가 되지 마라.자기 사랑에 시간을 보내는 작가가 되지 마라. 세상의 도서관은그런 작가들 때문에하품이나 해 대면서밤을 보내고 있다.거기에 이름을 더하지 마라.작가가 되지 마라.당신 영혼이 로켓처럼터져 날아가지 않는다면,당신이 미칠 것 같거나자살하고 싶거나 살인을 꿈꾸지 않는다면작가가 되지 마라.당신 안에 있는 태양이당신 내부에서 타오르지 않는다면작가가 되지 마라. 진정으로 때가 되면,그리고 당신이 선택받았다면,저절로당신은 작가가 될 것이고,당신이 죽거나 당신 안에서 작가가 죽을 때까지계속해서 글을 쓰게 될 것이다. 다른 길은 없다.절대로 없다.-찰스 부코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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