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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희 작가의 “사진 잘 찍는 법” (68)] 결혼 시말서와 단편 소설

김홍희 사진작가 승인 2018.06.19 12:13 의견 0

사진으로 소설을 쓰는 것이 가능할까 저는 가능하다고 봅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문자를 익혔습니다. 그래서 문자를 해득하는 능력은 있지만 어려서부터 이미지를 읽어내는 훈련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미지로 소설을 쓴 것에 대해 아리송해 합니다.

이런 작품들은 그런 점에서 전문가들만이 해득할 수 있는 이미지의 라틴어가 되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재로서는 그 방법을 바로 개선하기는 어려운 듯합니다. 아무튼 사진 이미지로 된 소설이 존재하고 누군가가 읽어낼 수 있는 한 약간의 노력을 함으로서 우리 모두가 읽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일본의 천재 사진가 ‘아라키’는 ‘소설 서울’이라는 아주 두꺼운 사진집을 내었습니다. 말 그대로 사진으로 소설을 쓴 것이지요. 저는 그의 이런 실험 정신을 존경합니다. 누구도 사진으로 소설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는 해 낸 것입니다. 저도 ‘결혼 시말서’라고 하는 사진집을 냈었습니다. ‘결혼 시말서’는 일종의 사진 이미지로 만든 ‘단편 소설’입니다.

김홍희 사진작가 제공

‘결혼 시말서’는 제가 결혼을 하기 전부터 기획했던 작품입니다. 결혼을 할 생각이 없었지만 그래도 인생은 알 수 없는 법. 제가 결혼을 하게 되면 아내와 함께한 신혼여행 사진을 찍어 전시하고 책을 묶을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전시는 1992년도에 이루어졌지만 사진집으로 묶는 것에는 절대적 반대가 아내로부터 있었습니다. 노출이 심하고 자신이 부끄러워 하는 사진이 많다는 이유였습니다.

결혼 시말서가 책으로 묶이는 데는 결혼 후 20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아내의 이해조차 받기 이렇게 힘이 듭니다. 그러니 일반인들의 이해를 구한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사진은 어쨌든 이미지로 소설화 하거나 이야기를 꾸려 나가야 합니다. 그럴 때 어떤 상징이나 인덱스로 그 사진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사진이 곧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재현이라고 생각하는 아내를 설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대중을 계몽하는 것은 더어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일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새로운 장르는 여는 일은 가장 가까운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는 일이고 사회의 거부를 넘어가는 일이지만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결혼 시말서는 한정판으로 777권을 만들었습니다. 모든 책에 에디션 번호가 들어있고 저의 사인이 들어있습니다. 이런 책은 세월이 지날수록 높은 가치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제가 얼마 전에 일본에 갔을 때 ‘타카나시 유타카’라고 하는 사진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가 젊어서 만든 사진집들이 팔리지 않아 거의 집에 묵혀 있었다고 합니다. 이제 그의 나이라 80이 넘고 연로한 시점에 그의 책이 유럽의 수집가들 사이에 고가로 팔린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1년에 한 번, 책 두 권을 들고 유럽으로 간다고 합니다. 한 권의 사진집 가격이 80만 엔. 우리 돈으로 900만원이 넘습니다.

저의 사진집들도 이런 시대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여러분의 사진집도 이런 시대를 함께 맞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것은 한 개인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국가 브랜드도 중요합니다. 일본은 거대한 미국을 상대로 싸운 나라입니다. 이 브랜드를 극복하기란 쉽지 않겠지요. 그러니 밀레니엄을 지나 우리는 세계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예언들이 많습니다. 그런 예언에 힘입어 우리 한국의 사진가들에게도 이런 이야기가 자주 들리는 시대가 올 것을 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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