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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희 작가의 “사진 잘 찍는 법” (74)] 영원한 현재와 시간의 연착

김홍희 사진작가 승인 2018.07.02 09:37 의견 0

[김홍희 작가의 “사진 잘 찍는 법” (74)] 영원한 현재와 시간의 연착시간(時間)은 어떤 시각에서 어떤 시각까지의 사이를 말 합니다. 그리고 시각(時刻)은 시간의 어느 한 지점을 말 합니다. 시간의 어느 한 지점을 가리키는 말 중에 ‘현재’라는 말이 있습니다. 현재는 언제 일까요 현재를 정확히 지칭할 수 있습니까

점(點, point)은 무엇일까요 ‘유클리드의 원론 1권’ 정의 1에 따르면 ‘점은 부분으로 분해할 수 없는 것’을 말 합니다. 그러면서 ‘어떤 공간에서 위치만을 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원소로 길이, 넓이, 부피가 없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렇게 되면 한 점의 길이, 넓이, 부피는 0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한 점의 차원은 차원의 어떤 정의에 의하여도 0이 되고 맙니다. 말이 조금 어렵습니다만 라이프니츠에 따르면 "점이란 위치가 있고 부분이 없는 것“을 말 합니다. 길이, 넓이, 부피가 없으면 질량이 없어지는 것이지요. 현실 세계 속에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을 말 합니다.

유클리드는 선(線) 역시 "폭이 없는 길이(length)다”라고 말했습니다. 현실 세계에서 존재 불가능한 점의 집합으로 선이 이루어지니 이렇게 밖에 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점에서 선이 나오고 선에서 면이 나오고 면에서 입방체가 나옵니다. 그러나 이들 정의 자체는 애매하고 기하학의 증명에는 전혀 사용되지 않았으며 본질적으로 하등의 관계를 갖지 않기 때문에 현재는 간접적 정의에 의한 무정의원소로 하고 있습니다.

현대수학에서는 점은 정의하지 않는 무정의술어(無定義述語)로 칩니다. 무정의술어인 집합과 마찬가지로 점은 구체적으로 정의하지 않고, 점을 나타내는 방법만을 배웁니다. 점의 위치는 좌표계를 이용하여 나타내고, 일반적으로는 이를 점이라고 합니다. 점을 칠판 위에 구현하는 순간 그 점은 무정의술어의 점이 아닌 것이 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것을 이해하고 공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무수히 많은 세계를 이해하고 구현해 왔습니다.

다시 시간으로 돌아와 현재는 언제일까요 현재는 과거 ·현재 ·미래의 셋으로 구분되는 시간의 하나로 과거와 미래 사이의 시간이라고 밖에는 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차이점은 현재는 과거나 미래에 비해 의식과 실천적인 면에서 우월성을 가집니다. 의식적인 면에서 과거나 미래는 모두 ‘~에 대하여’ 라고 의식할 수 있지만 현재는 의식에 의해 의식할 수 있는 동시성을 지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실천적인 행위의 면에서는 인간의 자유로운 행위가 허용되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과거는 필연(必然)과, 현재는 자유와 미래는 가능과 관계 지어진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현재는 의식과 실천이라는 두 가지 점에서 과거나 미래보다 우월합니다. 그래서종교적으로나 철학적으로 예술적으로 이 현재라는 시간과의 만남을 추구하고 종용해 왔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논리는 철저하게 현재 그 자체로서만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위에 기하학적인 예를 들었습니다만 시간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올린 것입니다. 철학에서는 본질과 현상의 문제를 다룹니다. 시간에도 본질과 현상이 있다고 하면 무엇일까요

시간의 현상은 과거, 현재, 미래입니다. 본질은 현재인데 그냥 현재라고 부르지 않고 ‘영원한 현재’라고 부르겠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는 영원한 현재 위에서 흐르는 시간을 말 합니다. 이렇게 선적으로 흐르거나 수평적으로 의식 속에서 흐르는 시간을 ‘크로노스’라고 그리스인들은 칭했습니다. 시간이 과거에서 현재를 통해 미래로 흐른다는 시간을 말 합니다. 표면적 시간이라고 하고 시간 속의 시간이라고도 합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이처럼 흐르는 시간과는 달리 본질적 시간을 신과 함께 연결해서 이해 했는데 그 시간이 바로 ‘카이로스’입니다. 본질적 시간을 말하고 이것은 흐르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영원한 현재를 말하는 것이지요. 쉽게 말 하면 과거는 이미 없고 미래도 오지 않았으니 아직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현재만 있는 것이지요.

과거, 현재, 미래는 심리적 시간으로 ‘흐른다’고 인식하면 우리는 현상만을 보게 됩니다. 의상대사의 법성게에는 ‘구세십세호상즉(九世十世互相)’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구세는 9개의 시간을 말 합니다. 과거, 현재, 미래가 있다면 그 셋을 다시 과거의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고 현재의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며, 미래의 과거, 현재, 미래를 나눕니다. 그럼 9세가 됩니다.

그 9세가 10세와 호상(互相), 다시 말해 서로(相互) 즉(卽), ‘=’,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10세는 무엇일까요 이 10세는 선적으로나 수평적으로 흐르는 9세와는 다른 흐르지 않는 시간인 ‘영원한 현재’를 가리킵니다. 9세는 시간 안의 시간으로 현상의 시간이고 10세는 시간 밖의 시간으로 본질의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 10세가 바로 시간의 본질과 현상이 만나는 자리인 셈이지요. 이 자리가 바로 본질과 현상이 만나서 이 세계가 이루어지는 자리입니다. 지금 이 자리가 여전히 창세기가 말하는 창조가 이루어지는 자리인 셈이지요.

그러나 우리의 인식은 항상 오감을 통합하는 의식과정을 통해 일어난다고 우리는 맹신 합니다. 이것은 언제나 의식이 일어나는 순간 과거를 가리키게 되지요. 이것이 바로 제가 부르는 ‘시간의 연착’입니다. 당신은 지금 존재하지만 의식을 통해 존재하기 때문에 항상 과거를 가리키게 됩니다. 이 시간의 연착을 인식하고 자각하는 것. 그리고 빠져 나오는 것. 이것이야 말로 영원한 현재의 존재자로 스스로를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이 영원한 시간은 당신이 눈 뜨는 순간 어디서나 만날 수가 있습니다. 특히 셔터를 끊을 때 미러가 업 되고 칠흑 같은 찰라의 순간 당신의 의식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고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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