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메뉴

[샤갈:색채의 마술사①] "어느 화가를 좋아하세요?"

(연재)꼬리에꼬리를무는예술 - '마르크 샤갈' 편

블루노트 승인 2018.08.18 17:40 의견 0

어느 화가를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샤갈의 이름을 입에 올립니다.

색채의 마술사라고 불리는 샤갈은 화사하면서도 부드러운 색채로 어느 한 유파에 고착되지 않고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냈습니다.

샤갈은 색채에 심혈을 기울였는데, 색채 스스로가 움직이고, 말도 할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생명을 가진 색채가 샤갈이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샤갈은 원색을 주로 사용했는데, 빨간색은 유대인, 고향, 성서의 메시지들을 상징합니다. 또 샤갈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파란색은 신을 향한 경배, 자유를 상징합니다. 샤갈은 파란색을 나에게 가족이며, 신의 축복이고, 모두의 행복이다라고 말한 적 있습니다.

▲ 비테프스크 위에서, 1915-20. Oil on canvas, 67*92.7cm (2018년 예술의전당 전시중) ⓒ뉴욕현대미술관

보따리를 매고 눈 덮인 도시 위를 날아가는 사내는 방랑하는 유대 민족의 운명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김춘수 시인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의 모티프가 된 원화이기도 합니다.

비테프스크는 현재 벨라루스라고 알려진 곳으로 샤갈을 알기 위한 필수 지명입니다.

샤갈(1887~1985)은 러시아 "비테프스크"에서 유대인 가정 9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청어 도매상에서 육체노동을 했고, 할아버지는 도살업을 했습니다.

샤갈은 비테프스크를 가리켜 내 고향이자 무덤이라고 말했습니다. 샤갈이 유년기였을 때는 인구 5만의 작은 도시였는데 그 중에 절반 정도가 유대인이었습니다. 비테프스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많은 수의 유대인들이 탈출했지만, 대부분 학살당했습니다.

마을도 무너져 모습을 찾을 수 없지만 샤갈의 생가는 현재 복원되어 몇몇 작품을 전시하는 작은 미술관이 되었습니다. 샤갈의 본명은 모이세 자하로빅 세갈입니다. ‘세갈을 프랑스어로 발음하면 샤갈이라고 합니다. 샤갈은 1910년 파리에 이주했을 때 자신의 이름을 샤갈로 바꿨습니다.

샤갈 가족은 하시드파 유대인이었는데, ‘하시드충성스러운 자들혹은 신앙심이 깊은 자들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단어입니다.

하시드파는 복잡한 탈무드의 가르침이나 경전에 대한 믿음과는 반대로 신의 계시에 담긴 현재적 의미를 강조했습니다. 또한 하시드파는 죄인의 영혼이 사후에 말 못하는 동물의 몸속으로 들어간다고 믿었습니다. , , 닭 등 우리와 친숙한 동물에 죄 많은 인간의 영혼이 깃든다고 생각했습니다.

샤갈이 서정적인 감성으로 동물을 그린 것은 유대 하시디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샤갈은 염소와 수탉과 말을 사랑했습니다. 동물의 몸에 빨강, 파랑, 녹색 등의 생명에 가까운 색을 입혔습니다. 이런 동물들은 샤갈 자신으로 치환되어 작품 속에 드러나기도 합니다. 사걀은 때때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결코 미술가가 아니야. 그러면 뭐지 암소일까

각 그림마다 의미가 다르기도 하지만, 항상 고향을 그리워했던 마음은 모국을 암시하는 수탉이 되고, 간혹 암소는 젖을 주는 어머니, 조국, 다정한 연인을 상징합니다.

부모님은 집안 살림에 도움이 되길 바랐으나 샤갈은 화가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미술 관계자들은 샤갈의 꿈이 어려서부터 줄곧 화가였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샤갈은 꿈이 많은 소년이었습니다. 가수, 바이올리니스트, 무용수, 시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화가의 꿈은 좀 더 강했기에 결국 샤갈은 집 근처 예후다 팬이 운영하는 예술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팬은 가정 형편이 어려운 샤갈에게 수업료를 받지 않고 가르쳐주겠다고 했습니다. 샤갈은 학교에 걸린 그림을 보며 자신이 원하는 그림과 다르다고 느끼고 두 달 후에 그만 두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신고전주의가 유행했는데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계속)

<저작권자 ⓒ시사N라이프> 출처와 url을 동시 표기할 경우에만 재배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