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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색채의 마술사⑥] "입체주의와 표현주의"

(연재)꼬리에꼬리를무는예술 - '마르크 샤갈' 편

블루노트 승인 2018.08.24 15:59 의견 0

샤갈 가족은 모스크바로 이주해서 살다1922년 러시아를 떠나 베를린에 잠시 머문 뒤, 1923년 가을 파리로 돌아옵니다.

이때 러시아 문호 고골리의 죽은 혼에 삽화를 착수했고, 1926년부터 라퐁텐 우화집에 들어갈 구아슈 삽화도 제작했습니다. 1931년에는 가족과 함께 팔레스타인으로 떠납니다. 팔레스타인은 새로운 유대국가의 탄생 준비로 들떠 있었습니다. 샤갈은 이후 보다 사실적인 구약성서의 삽화들을 그렸습니다.

가끔 샤갈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인물을 그렸습니다.하이브리드적 존재, 즉 합성된 인물은 여러 작품의 소재로 나타납니다.

샤갈의 작품들 속에는 사람의 육체와 얼굴이 동물과 결합한 형태나 두 명의 인물이 하나로 합쳐져 남자 혹은 여자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형태가 나타납니다. 그런 조합체는 샤갈 자신 및 샤갈의 이중성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뿐만 아니라, 종종 연인의 모습을 빌어 등장함으로써 서로 다른 두 개의 존재가 하나로 결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목적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결합이 하나의 가능성이라면, 이 가능성이 현실화된 결과가 바로 두 얼굴의 인물입니다. 물론 입체주의의 영향도 있죠.

1935년 샤갈 부부는 고향인 비테브스크를 방문했다가 유대인 배척주의에 충격을 받습니다. 이후 벨라는 유대어로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 첼리스트, 1939, 과슈와 파스텔, 일본 개인 소장


이전까지는 사물을 한 방향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려고 했습니다. 반면 입체주의는 사물을 여러 방향에서 본 모습을 한 화폭 안에 담아냈습니다.

입체주의는 큐비즘이라고도 불립니다. 큐비즘은 조르주 브라크의 《에스타크의 집》을 본 앙리 마티스가 조그마한 입방체를 모은 것 같다고 이야기한 것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입체주의의 가장 유명한 화가는 파블로 피카소입니다.

샤갈은 예술은 내적 존재에서 외부로 나온 것이며, 보이는 사물에서 육체적 결과물로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입체파의 영향을 받았으나 입체파와는 거리를 두었습니다.

샤갈을 표현주의 화가라고 합니다. 표현주의는 미술의 기본 목적을 자연의 재현으로 보기를 거부합니다. 즉 미술의 전통적 규범을 떨치려 했습니다. 표현주의자들은 미술의 진정한 목적은 감정과 감각의 직접적인 표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구성의 균형과 아름다움에 대한 전통적 개념은 무시되었으며, 왜곡은 주제나 내용을 강조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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