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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 200명의 시나리오 작가와 함께 쓰는 뮤지컬 - ‘지금 만드는 뮤지컬’

김혜령 기자 승인 2018.07.20 14:35 의견 0

‘네, 여기는 극단 ’죽이되든 밥이되든‘입니다. 저희는 많은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언제든 공연이 가능 합니다.’
이번 뮤지컬에는 대본이 없다. 배우도 관객도, 연출도 어떤 뮤지컬이 만들어질지 모른다. 뮤지컬 넘버도 일부는 작곡은 되어 있지만, 일부는 즉석에서 작곡과 작사를 동시에 진행한다. 극의 기획도 산으로 간다. 디즈니 어드벤처 장르의 ‘잠자는 숲속의 태우’. 태우의 직업은 심마니로 꿈은 요정이 되는 것이다. 기면증에 예민하지만 랩을 잘하고 동물과 대화가 가능한 김태우씨는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얼릴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관객들의 모든 설정이 결합되어 나온 주인공의 캐릭터이다. 주인공도 정해져 있지 않다. 그날 관객들의 환호성에 따라 주인공이 결정된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정해진 것 없이 시작해서 끝나는 뮤지컬이다.

▲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시연장면 ⓒ김혜령 기자

무대에는 별 다른 장치가 없지만 배우들의 연기와 관객의 상상력이 동원되어 깊은 숲속, 호수, 하늘 어디든 갈 수 있다. 배우들은 황당한 설정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배역을 소화한다. 아무리 관객의 설정이 불합리하다 생각되어도 관객의 설정을 존중한다. 이날 성격이 엄청나게 예민해 개복치라 불린 김태우씨는 설정에 맞게 아주 사소한 일에도 상처받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관객도 놓칠 수 있는 설정을 잊지 않은 배우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다른 극과 달리 연출이 극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점도 신선하다. 연출은 관객들과 소통을 하며 자신의 귀에 꽂히는 설정을 그 자리에서 차용해 극을 만들어낸다. 결정된 설정으로 극이 만들어지는 동안 한쪽 구석에 배우들과 연출은 분주하게 극을 만든다. 다소 산만해보일 수 있지만, 극 안에 극을 보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오히려 관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온다.

▲ 공연중 등장한 쇼스타퍼.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에서 만나볼 수 있는 매력포인트이다. ⓒ김혜령 기자

지금 만들어진다고 해서 극의 기승전결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극은 기승전결 구조를 지니며 완성된 형태로 종결된다. 또한 극 중반에 갑자기 극이 멈추며 ‘show-stopper’가 등장한다. 이는 ‘명연기’ 라는 뜻으로 배우에게 환호성을 듬뿍 보낼 수 있는 시간이다. 연출자는 극의 구조에 대해 설명하며 갑자기 멈춰진 극에 설명을 덧붙인다. 처음 뮤지컬을 보는 관객들도 당황하지 않고 친절한 설명에 따라 극을 즐길 수 있다. 이날 등장한 여배우의 멋스러운 열창에 관객석은 뜨거웠다.
극은 철저히 관객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극의 3요소 대본, 배우, 관객 중 ‘관객’의 역할이 가장 멋지게 빛나는 극이었다. 어떤 뮤지컬을 만들까. 또 다른 200명의 시나리오 작가들과 쓰는 연극이 궁금해진다면, 대학로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을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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