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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련 기행(21) - 광주항쟁은 알아도 미국은 모르는

주동식 칼럼니스트 승인 2018.08.11 09:00 의견 0

그의 집은 우리나라로 치자면 30평이 채 못되는 크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의 지위에 비해 의외로 소박한 규모에 놀랐지만 전반적으로 사람들의 주거 공간의 크기나 건축 자재, 내부 디자인에 별 차이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이다. 물론 거실에서 차를 대접받고 돌아왔기 때문에 구석구석 살피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내가 보고들은 내용이 무척 단편적일 수 있다는 얘기이다.

M&Y와의 대화는 내가 처음에 얘기했던, 쏘련의 민중은 건강하지만 쏘련의 지도층은 전혀 그들을 지도하고 이끌 만한 역량이나 소신, 리더십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내 인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비록 냉전 분위기는 많이 약해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적성 국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을좋은 나라라고 평가할 수 있다니게다가 쏘련 공산당원이고 쏘련 최고의 소프트웨어 국영기업의 고위직 인사가 그런 발언을 하다니나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기강 해이이자 내부 붕괴의 현상으로 비쳤다. 특히 미국에 대한 호평이 단순히 미국의 물질적인 풍요에 대한 인상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미국이 국제정치에서 수행하는 역할에 대해서도 우리나라 대학 신입생만도 못한 인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이들은 광주항쟁에 대해서는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미국이 당시 수행한(것으로 알려진) 역할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고 별다른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자본주의 사회의 물질적 풍요에 대해서는 무척 부러워하고 있었지만 그러한 풍요를 얻기 위해서 어떤 댓가를 치러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이해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의 이런 모습은 결코 이들 한두 사람에게만 국한된 현상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 나라의 나름 배웠다는 사람들,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람들의 전반적인 모습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쏘련 공산당원이고 사회의 지도층이라면 이런 나라는 결코 오래 유지될 수 없다이것이 당시 내가 얻은 결론이었다.

내가 이런 결론을 얻은 것이 그들의 정치경제 사회적 인식이 꼭 부정확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의 인식 가운데 적어도 일부는 당시의 내 생각보다 더 객관적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설혹 그렇다고 해도 쏘련처럼 철저한 이념적 기초 위에 세워진 나라의 지도층이 저렇게 안이한 인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해하기도, 용납하기도 어려웠다. 물론 당시의 대화는 무척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됐지만.

내가 기록해야 할 또 하나의 대화, 모스크바의 조선인 시인 리진 선생과의 대화는 아무래도 다음에 소개해야 할 것 같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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