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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파크] 결국 모두를 구원할 길은 ‘사랑’… 역작 <인터스텔라>

강동희 기자 승인 2018.07.07 09:27 의견 0

비평에 앞서 개인적인 고백을 하려고 합니다. 사실 전 반골 기질이 있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좋아도 남들 다 좋다는 건 일단은 삐딱하게 바라보곤 하죠. 맛집에 줄 서서 밥 먹는 건 도무지 체질에 맞지 않고, 좋아하는 음악가가 콘서트를 열어도 그 '우르르 몰려가는' 분위기가 싫어서 나중에 실황 녹음 음반을 사 듣곤 하는, 뭐 그런 성격입니다.

<다크나이트 3부작>과 <인셉션>으로 천재니 거장이니 하며 전세계가 놀란 감독에게 열광할 때, 그의 작품에 늘 '글쎄올시다'하는 태도를 취해왔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습니다. 그가 재능있는 감독이고 그의 작품이 훌륭하다는 데엔 동의하면서도, '나 아니어도 수많은 이들이 찬사를 쏟아내는데 굳이 내가 거기에 목소리 하나를 더 보탤 이유가 있겠나' 했던 겁니다.

그랬던 제가, 기어이 놀란의 평을 쓰게 되네요. 맞습니다, <인터스텔라>는 어떻게든 그의 천재성을 의심하고 싶었던 저의 타고난 삐딱함을 기어이 내려놓게 만든 작품입니다. 걸작, 수작, 역작, 그 어떠한 단어로도 작품의 가치를 오롯이 담기가 어렵군요.

'사실주의적 SF영화' 역사에 큰 획

<인터스텔라>는 (많은 비평가들의 말처럼)두말할나위 없는 놀란의 최고작이자 가깝게는 <그래비티>부터 멀게는 <2001스페이스오디세이>등의 명작이 쌓아온 이른바 '사실주의적 SF영화'의 역사에 큰 획을 긋게될 작품입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먼저 이야기부터 살펴보죠. 병충해와 황사로 전 인류가 식량난에 시달리게 된 근미래를 배경으로, '쿠퍼'란 이름의 사내가 등장 합니다. 그는 나사 소속 비행사였다가 어찌어찌하여 농부가 돼 농사일을 하고 있어요.

그에겐 '머피'란 이름의 딸과 아들 '톰'이 있는데, 딸 머피의 방에서 초자연적인 현상이 발견되자 그것을 연구하다가 미지의 존재가 발송하는 좌표의 존재를 발견합니다.

좌표를 따라 이동한 곳은 나사의 비밀 연구소. 그곳에서 옛 나사 동료들을 다시 마주하게 된 쿠퍼는 나사가 오래전부터 비밀리에 척박해진 지구를 떠나 제2의 지구를 찾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중이었단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곤 '제발 내 곁을 떠나지 말라'는 어린 딸아이를 제대로 달랠틈도 없이 그 프로젝트에 투입돼 우주로 가게 돼죠.

그리고 주인공들을 태운 로켓이 성층권을 통과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영화는 SF팬들과 천문학, 물리학 전공자들이 목놓아 열광할 온갖 상황들을 펼쳐보이기 시작합니다. 네, 구체 모양의 웜홀, 매우 사실적인 블랙홀, 시간을 만질 수 있고 공간을 건너뛸 수 있는 5차원의 공간, 무중력 상태에서 회전 운동하는 우주선, 항성간 이동, 상대성 이론에 의한 쌍둥이 현상 같은 것들이요. 과학자들을 직접 섭외해 만들었다는 이 모든 장면들은 눈물이 쏙 나오게 아름답습니다. 블록버스터의 이른바 '도시 파괴 CG'에 물려있던 관객들에게 신선한 볼거리를 제공하죠.

이 모든 장면들이 과학적 감수를 거친 것이라는 작품외적인 사실은 그 자체로 장면 장면의 감동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가짜'라는 의심없이 영화 속 현상들을 고스란히 느끼게 되는 것이죠. 실화 기반의 소설을 읽을 때 그 감동이 더 짙은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사실적인 영화 속 과학적 묘사와 정확하게 결합된 '이야기'

그러나 제가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이 지극히 정확하고 사실적인 영화 속 과학적 묘사와 대단히 적확하게 결합된 '이야기'였습니다. 묘사의 사실성은 <인터스텔라>가 가진 대단히 큰 재미 중 하나지만, 그것만 파고들었다면 영화는 극적 설정이 가미된 다큐멘터리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인터스텔라>는 이러한 함정을 훌륭히 피해갑니다. 사실적으로 묘사된 극 중 과학 현상 하나 하나에, 그 현상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가장 극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연결해 '과학으로 사람 울리는',SF장르의 본디 목적을 정확히 이행해내고 있어요.

예를 살펴볼까요. 지구에서의 7년이 다른 행성에서의 한 시간일 수 있다는 이른바 '상대성 이론'의 사실적 묘사는, 순간의 실수로 낯선 행성에서 3시간을 허비한 뒤 우주선에 돌아와 그새 24년의 인생을 살아버린 아들과 딸의 모습을 목격하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의 '이야기'와 완벽히 맞아떨어집니다.

5차원 공간에 빠져 시간과 공간을 완벽히 뛰어넘는 상태에 놓인 사내에 대한 사실적 묘사는, '지구'라는 다른 공간에 남은 '과거의 딸'을 향해 생존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아버지의 절규로 비로소 '깊이'를 얻습니다.

사랑하는 남자가 홀로 오래 머문 별에 도착한 아멜리아의 마지막 모습은 어떤가요. 항성간 여행에 대한 사실적 묘사만으로는 그만한 울림을 얻기 어려웠겠죠. 무중력 상태에서 회전 운동하는 우주선에 대한 묘사는 어떤가요. 회전하는 우주선에 도킹하려 주인공이 핏대를 올리고, 그 위에 한스 짐머의 아름다운 음악이 깔리는 장면의 충격은 과학적 묘사의 사실성과 그 과학 현상이 빚어낸 극적인 감정이 부딪혀 일어난 뜨겁고 강렬한 불꽃입니다.

기술과 이야기같이 굵직굵직한 부분들 외에도, 사소한 구경거리들도 좋습니다. 그 디자인이 너무 투박해서 도리어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로봇 '타스'의 디자인, 골판지를 갈아 직접 만들었다는 모래폭풍의 묘사와 적막하기 이를데없는 옥수수밭의 모습 같은 것들까지 하나 하나가 다 구경거리에요.

폴터가이스트 현상의 탐구로 시작해 나사의 비밀 연구와 항성간 여행을 거쳐 시공간을 초월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주인공 일행의 여행이 발전되고 확장돼나가는 과정을 성급함없이 설득력있게 전달해 준 편집도 기억해둘 만 합니다.

결국, 이 엄청난 이야기를 통해 놀란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요. 아버지와 딸의 시공을 넘어선 사랑은 인류에게 구원을 안겼고, 아멜리아는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를 찾아나섰다가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을 발견하게 됩니다. 영화는 '사랑'이란 단어가 얼마나 뻔하고 흔한지, 그것을 쫓는 것이 얼마나 비합리적인지를 이야기하면서도, 결국 우리 모두를 구원 할 방법을 '사랑'에서 답을 찾고 있습니다. 상영이 끝난 후에도 자리를 뜰수 없었다는 관객들이 많더군요. 저 역시 그랬습니다. 세 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끊임없는 감탄사를 연발한 건 영화가 준 시각적 충격 때문이었지만, 마지막 순간 차마 발길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던 그 여운은 아마 '사랑'이었을겁니다. '별과 별 사이'를 뜻하는 제목 <인터스텔라>가 의미하는 바도, 바로 '사랑'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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