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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파크] 퀴어 영화이기에 가능한 것들, <지난여름,갑자기>, <남쪽으로 간다>

강동희 기자 승인 2018.04.20 08:44 의견 0

이송희일 감독의 동성애 영화 <지난여름, 갑자기>와 <남쪽으로 간다>를 보았습니다. 훌륭하더군요. '독립 영화로서', 혹은 '동성애 영화로서' 훌륭한 것이 아니라, 그냥 하나의 '작품'으로서 최상이었습니다. 이성애 영화에서는 찾기 어려운 퀴어 영화만의 감성을 구축하는 한편, 같은 퀴어 영화라도 이송희일 감독이 아니면 구사할 수 없는 그만의 정서를 발굴해낸 수작 입니다.

사제지간, 군대 선후임지간의 동성애... 금기에 금기를 덧댄 '사랑이야기'

두 작품을 따로 한 번 살펴보죠. 먼저 <지난여름, 갑자기>는 사제지간의 이야기입니다. 학생 '상우'와 선생 '경훈'이 이 로맨스의 주인공입니다. 상우는 경훈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경훈도 자신을 원한다는 걸 알고 있지요. 상우는, 게이 술집에서 만취해 인사불성이 된 경훈의 사진을 몰래 촬영하고, 그것으로 경훈을 협박해 만 하루 동안의 만남을 요구합니다. 경훈은 필사적으로 상우를 피하려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성 정체성이 알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피하고 싶은 감정을 자꾸만 직시하도록 만드는 상우의 당돌함에, 그리고 상우에 대한 부인할 수 없는 자신의 감정 탓에, 저항할 힘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남쪽으로 간다>에는 이제 갓 군에서 전역한 사내인 준영과 휴가를 막 마친 병장 기태, 이렇게 두 사내가 등장합니다. 둘은 군시절 성관계를 가졌던 사이죠. 준영은 기태와 있었던 일을 그저 '군대였으니까 가능한 일'로 축소시킵니다. 그리고는, 갓 군에서 제대한 여느 사내처럼 여자친구를 사귀고 취업 준비에 온 정신을 쏟지요. 그러나 기태는 그런 준영을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준영은 말년 휴가를 마치고 때맞춰 부대로 복귀해야하는 기태를 차에 실어 데려다주는데, 기태는 준영이 잠시 차를 세운 사이 수면제가 든 커피를 그에게 먹입니다. 준영은 이내 정신을 잃고, 기태는 남쪽으로 차를 돌립니다. 준영이 약에서 깨자, 기태는 '군시절 나한테 했던 이야기들은 다 뭐냐'며 오열합니다. 그리곤 그에게 '마지막' 성관계를 요구하지요.

두 작품 모두 성적인 폭력이 등장합니다. <지난여름, 갑자기>의 상우는 경훈의 성 정체성을 폭로하겠다고 협박을 합니다. '학교 담임선생님'이라는, 가장 보수적인 가치들이 요구되는 위치에 있는 경훈에게 이것은 엄청난 폭력이죠. <남쪽으로 간다>의 기태가 준영에게 한 짓은 명백한 데이트 강간이고요.

그러나 <지난여름, 갑자기>의 상우와 <남쪽으로 간다>의 기태. 이 둘의 위험한 행동은 ''퀴어 영화'만의 문법을 적용해 조금은 다른 방법으로 읽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지난여름…>의 학생 상우는 담임선생님 경훈을 협박하지만, 경훈이 자신의 말을 '듣기'시작하자 문제의 사진이 담긴 자신의 휴대전화를 그에게 묵묵히 넘깁니다. <남쪽으로 간다>의 기태는 수면제를 이용해 준영을 기절시키지만, 이 둘이 성관계를 맺는 것은 준영이 약에서 깨고 기태의 성관계 요구를 수용한 후의 일입니다. 그러니까, 애초에 상우와 기태, 이 둘 모두 미수에 그친 폭력을 실제로 이행할 의향은 없었던 겁니다. 이들의 행동은, 학교 담임선생 경훈이 갇힌 '보수 사회'와, 제대한 선임 준영을 가둔 그의 '비겁함'(적어도 기태의 시선에서는)을 깨기 위한 것으로, 표면적으로야 성폭력이지만 더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억압에의 저항이었던 것이죠.

<지난여름, 갑자기>의 이야기는 다른 방법으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담임 선생 경훈이 가정 방문을 다니는 동안 상우는 그의 곁을 계속 맴돈다'는 영화의 기본 설정을 하나의 은유로 본다면, '상우'란 인물은'경훈'의 '성정체성', 그 자체를 상징하는 존재로 보는 해석이 가능해지죠. '엄마도 내가 동성애자임을 아는' 상우는 자신의 정체성이 그저 덤덤합니다. 그런 상우를 애써 감추고, 곁에서 떨어뜨리려는 경훈의 모습은 어떻게든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가려는 이 땅의 남성 동성애자들의 모습과 대단히 유사한 것이고요.

이 해석을 보다 확장시키면, 상우를 피해 대문을 걸어잠근 경훈을 끝까지 쫓아가, 그의 '문'을 쿵, 하고 두드리곤 이내 집 안으로 들어오고야 마는 상우의 모습은, 경훈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는 순간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상우를 때리는 경훈의 모습은 '자기혐오'로, 그리고 자신에게 얻어맞고 초라하게 쓰러진 상우를 다시 일으켜 껴안는 경훈의 행동은 '자기수용'으로 해석될 수 있고요. 수많은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수용하는 과정과 많이 닮아있죠.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것은 <남쪽으로 간다>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마 백 명의 관객들에게 백 장의 종이를 주고, 기태가 미친듯이 춤을 추는 마지막 장면의 상징을 적어보라면 백 가지 대답이 나올 겁니다.

그러나 이야기를 표면 그대로 수용하든 다른 해석을 시도하든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정서가 있으니, 바로 '만성적인 공허감'입니다. <지난여름, 갑자기>엔 십대, 삼십 대 남성이 등장하고, <남쪽으로 간다>엔 이십대 남성 두명이 등장하지요. 그리고, 흥미롭게도, 이 영화 속 십대, 이십대, 삼십대 인물들은 다 그 나이대 한국 사람들 특유의 공허감이 느껴져요. 이 '한국적으로 공허한' 정서는 이는 다시 동성애라는 영화의 소재와 어우러져 동성애를 다룬 다른 나라의 영화에서 찾기 어려운 '이송희일 영화'만의 정서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렇듯 훌륭한 영화이지만, 다소 불미스런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이송희일 감독은 최근 자신의 트위터에서, '다른 사람보다 제일 먼저 불법 토렌트로 내 영화 돌리는 게이들 보면 퀴어영화 만들어서 뭐하나 싶은 생각이 많다'는 말을 했습니다. 동성애자든, '동성애'라는 문화상품을 소비하는 이성애자든, 아니면 저처럼 그냥 감독의 영화가 좋아서이든, 우리 제발 '굿 다운로드'합시다. 이송희일 감독이 아니면 못 만드는 영화들,몇 편 더 봐야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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