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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파크] 매일 매일이 할로윈인 연인,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강동희 기자 승인 2018.04.19 09:39 의견 0

데이빗 O. 러셀 감독의 신작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참 희한한 영화입니다. 대단히 전형적인 캐릭터 희극이지만, ‘전형적인 영화’냐 하면 그건 절대로 아니거든요. 보고 나면 도대체 이 영화는 뭔가 싶어지는, 그런 부류의 영화입니다.

장르만 봐도 그래요. 적당히 로맨틱하고 매순간 코믹하지만, 로맨틱 코미디라기엔 주인공 남녀의 관계가 참으로 애매합니다. 심각한 조울증에 시달리는 남자와 섹스 중독에 빠진 여자의 연애담이니, 오죽하겠습니까.

등장 인물들의 상태가 영 아니다보니 관객들은 이들의 사랑 싸움을 신기한 구경거리 보듯 관조하게 됩니다. 주인공 남녀와 관객인 나의 '동일시 과정'이 반드시 요구되는 일반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감상법과는 사뭇 대조적이죠.

그러나 이들의 만남이 발단을 거쳐 전개와 위기 그리고 절정을 지나 마침내 결말에 이르면, 관객들은 영화가 펼쳐놓은 특유의 세계관을 수용하고, 나와 내 주위의 사람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등장인물 누구 하나가 아니라 영화가 펼쳐놓은 '세계'와 나의 '일상'을 동일시하게 되는 겁니다.

대단히 사실적인 조울증 묘사... 섬세한 인물 관찰 돋보이는 작품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까요. 일단 내용부터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우리의 남자 주인공 '팻'은 방금 정신병원에서 나온 조울증 환자입니다. 그런데 이 사내는 정신병원에서 나와도 돼서 나온 상태가 아니에요. 법적 책임마저 무릅쓰겠다며 아들을 필사적으로 끄집어낸 어머니 덕에 심각한 상태에도 불구하고 어찌어찌 나온 겁니다.

당연히, 영화의 전반부는 이 '미친' 사내가 저지르는 온갖 슬랩스틱의 나열로 전개됩니다. 그는 '땀을 내겠다'는 이유로 쓰레기 봉투를 뒤집어쓰고 아침 조깅을 하고, 헤밍웨이의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를 읽다 결말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책을 집어던져 자기 방 창문을 깨뜨리고, 새벽 세 시에 난데없이 '내 결혼식 비디오 어딨냐'며 난리를 피워 집 안으로 경찰이 들어오게 합니다.

관객석 여기저기에서 폭소가 터졌는데 전 못 웃겠더군요. 조울증 환자가 실제로 어떤지 저는 잘 알거든요. 넋놓고 웃기엔 이 영화의 조울증 묘사는 정말 소름이 끼치도록 사실적입니다. 큼직큼직한 사건 묘사야 말할 것도 없고, 아주 사소한 설정이나 상황들에서도 사실성을 발견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조울증 아들을 보는 어머니 들로리스의 반응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물건을 부수며 화를 내거나 기분이 좋다며 이리저리 뛰어다닐 때보다 가만히 있을 때 더 불안해합니다. 실제로 가족 중에 조울증 환자가 있는 집이라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고, 조울증에 대한 세심한 관찰 없이는 나올 수가 없는 곁가지 묘사죠.

약을 먹으면 멍해진다며 한사코 약을 피하다 기어이 사고를 치고 나서야 시무룩한 표정으로 약을 먹는 팻은 어떻습니까. 정신과 의사를 만나 자신의 아버지와 자신의 폭력 성향이 어떻게 다른지 애써 설명하는 모습은요. 네, 분명 웃기긴 합니다만 저처럼 조울증 환자를 가까이서 볼 기회가 있었던 사람들한텐 일종의 블랙 코미디입니다. 아, 물론 코미디는 코미디지만요.

그래서 나쁘다는 거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실 정반대죠. 사실적인 조울증 묘사를 보며 차마 웃을 수 없는 거야 제 개인사정이고, 이 영화의 농담들은 타율이 아주 좋아요. 일단 배우들의 연기가 좋고, 편집점이 대단히 적절합니다. 그리고 조울증에 대한 공부 없이는 나올 수 없는 각본이라는 데서 이 영화의 각본을 쓴 데이비드 O. 러셀의 작품에 대한 정성을 엿볼 수가 있죠. 너무 사실적이어서 도리어 불편한 건 영화의 단점이 아니라 개성입니다.

신개념 로맨틱 코미디 여주인공의 등장

자, 어쨌든 우여곡절끝에 이 모양 이 꼴인 남자 주인공이 등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장르가 나름 로맨틱 코미디인 만큼 이제 우리의 상대역이 나와줘야겠죠.

팻에겐 사실 확고한 목표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옛 아내 '니키'와의 재결합이죠. 그러기 위해선 아내에게 재결합 의사를 전하고,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확인시켜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팻은 니키로부터 백오십미터 이상의 거리를 유지해야만 하는 처지인지라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조력자가 필요합니다. 바로 그 때 니키한테 편지를 전달해 줄 수 있는 여자가 이 남자 앞에 등장을 합니다. 그가 바로 이 영화의 여자 주인공, 티파니입니다. 그런데 이 여자, 팻보다 상태가 더 심각합니다. 듣자하니 최근에 사랑하는 남편을 잃었고, 그 충격 탓에 그 모양이 됐다는군요. 그런데 그래서 그런가 보다하고 보기엔 이 여자의 행동은 너무 심해요. 최근에 회사에서 잘렸는데, 그 이유가 글쎄 사무실의 모든 직원들과 다 자버리는 바람에, 였답니다. 여직원 포함해서요. 그녀는 죽은 남편 얘길 하며 엉엉 울다가 난데없이 팻의 얼굴을 후려치기도 하고, '나보다 네가 더 미친 것 같다'는 팻의 말에 화가 난다며 식당에서 상을 엎어버리기도 합니다.

어쨌든 팻은 티파니가 필요합니다. 아내와의 재결합을 위해서요. 그래서 그녀의 비위를 적당히 맞춰주지요. 성적으로 문란하다고 소문난 티파니를 범할 목적으로 그녀의 집을 찾은 사내를 적당히 타일러 쫓아내주기도 하고, 춤 대회에 나가고 싶은데 파트너가 없다는 그를 위해 난생 처음으로 춤에도 도전을 하게 됩니다. 로맨스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할로윈데이 같은 이 세상... 괴상한 차림의 상대를 받아들이기

하지만 팻과 티파니 모두 그냥 대놓고 정신이 나간 남녀 주인공인 탓에 이들의 여정은 결코 순탄치가 않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도와주면 되지 않겠냐고요 어디 봅시다. 주요 조연인 팻의 아버지는 강박증에 도박 중독이 겹친 인물입니다. 이들 남녀에게 도움을 줄 만한 인물은 아닌 듯 싶군요. 팻과 같은 정신병원에 있다가 탈출해 나온 대니는 더 말할 필요도 없겠고…. 아내와 아이로 인한 심적 압박 탓에 미치기 일보 직전인 로니도 자격 미달로 보이는군요. 그의 아내 베로니카에겐 자기애성 인격장애의 징후가 보이고, 팻의 친형 제이크는 극단적 이기주의자니까…. 네. 티파니와 팻을 정상으로 만들어 줄 인물은 이 영화 어디에도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군요.

그렇습니다. 이 영화의 세계는, '다 같이 미친' 세계입니다.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니냐고요걱정 마시기 바랍니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미친 사람들이 모여사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쓸데없는 상상이나 늘어놓는 천박한 영화가 아니에요. '너도 미쳤고 나도 미친 이 세상에서 우리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영화죠.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이 영화 나름의 답은, 티파니와 팻의 첫 데이트 장면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영화는 두 인물이 처음으로 단 둘이 만나는 날을 할로윈 데이로 설정해놓고 있거든요. '괴상한 차림을 한 서로를 있는 그대로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바로 그 할로윈데이 말입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 누구도 달라지거나 '나아지지' 않습니다. '성격장애'로 표면화 된 각자의 개성을 악기에 비유한다면, 이들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각자의 박자와 각자의 음을 연주하지요. 그리고, 영화는 이들 모두의 소리를 존중합니다. 어느 누구의 소리도 잘못된 것으로 취급하지 않아요. 막바지에 이르러 이들이 '이중 내기에서의 승리'라는 하나의 목표하에 대동단결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서커스 무대와도 같은 그 생동감은, 하나 하나의 악기들 이 소리를 쌓아 마침내 감정의 최고조를 이끌어내는 록 밴드 내지는 오케스트라의 그것과 유사합니다.

자기 위안 아니, 자기 긍정!

결말이 뻔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출전 자체에 의의가 있는' 춤 대회를 준비하며 가까워진 남녀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익숙한 로맨틱 코미디 결말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여기에 대해 평론가 이동진님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입체적인 캐릭터에 비해 예상보다 더 관습적인 후반부의 전개가 살짝 아쉽다'고 평했고, 듀나 님은 '결말이 기성품이고 인위적이지만, 관객들은 이들에게 몰입하게 된다'고 평했습니다.

글쎄요, 저 역시 결말이 뻔하다는 데는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그래도 '뻔한 맛'은 있었다고 반론하고 싶군요. 그리고, 이들이 심사위원에게 '5점'을 받고 환호하는 장면은, '남들과의 비교' 대신 스스로 세운 기준에 맞추어 도전하고 또 성취해 낸 이들 특유의 자존감이 느껴지면서도,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따위의 구질구질한 자기위안에 빠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좋았습니다.

영화는 전미비평가협회 남우주연상과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여덟개 부문에 후보로 이름을 올린 상태입니다. 국내에는 지난 2월 14일 개봉했는데,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국내 비평가들의 호평에도 흥행은 '그럭저럭'인 모양이더군요.

'정신병'은 말할 것도 없고 약물 치료나 심리 상담마저 낯선 한국사람들에게 영화의 소재가 다소 생소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무슨 짓을 해도 안 고쳐지는 주위 사람들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분들이라면, '천만 영화'에 질린 관객이라면, 이 낯선 영화에 한 번 도전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신선한 경험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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