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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파크] 활어처럼 펄떡대는 동네 양아치들, <개들의 전쟁>

강동희 기자 승인 2018.04.12 09:00 의견 0


지난 20일, 참 특이한 시사회가 하나 열렸습니다. 여느 시사회처럼 개봉 전 손님들을 초대해 작품을 먼저 보여주는 것은 같았지만 다른 게 하나 있었지요. 상영관 임대나 초대권 배포 등의 절차 없이, 작품을 동영상 파일로 만들어 인터넷상에 무료로 공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겁니다. 영화 <개들의 전쟁> 얘깁니다.

제작사와 투자사 모두 대단한 모험을 한 셈인데, 저는 이 패기 넘치는 기획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더군요. 1000만 영화들의 고래 싸움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한 작은 영화의 자구책이었기 때문입니다. 가치 있는 일이었습니다. 입소문에 대한 자신감 없이는 불가능한 홍보 방식인 만큼, '얼마나 잘 만든 영화길래'라는 호기심도 생겼습니다.

그렇게 기대를 안고 시사회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정말 재미있더군요. 정말 오랜만에 실컷 웃었습니다. 동네 양아치들의 정서를 이토록 정확히 그려낸 영화, 도대체 몇 년 만이던가요.

단순 무식한 양아치들의 다양한 얼굴들

먼저 내용부터 말해볼까요. 입대한 배우 김무열이 맡은 '상근'은 동네 양아치 패거리들의 대장입니다. 동네 어디를 가도 '형님' 소리를 듣는 인물이죠. 그런데 알고 보니 상근은 호랑이 없는 굴에 여우였답니다. 어느 날, 상근이 1인자로 떠오르기 전 동네 실세였던 '세일 형님'이 뚜렷한 목적도 없이 동네로 돌아옵니다. 상근은 그에게 자리를 뺏기기 싫었고, 착한 동생들과 함께 일궈놓은 동네의 질서를 지키고 싶어하지요.

그렇습니다. '뺏기기 싫음'과 '지키고 싶음', 나아가 '좋은 것'과 '싫은 것'은 이 영화의 처음이자 끝입니다. 이야기의 큰 축부터 사사로운 일화까지, 이 영화에 나오는 동네 양아치들은 '좋은 것'을 끝까지 지키려 애쓰고 '싫은것'은 어떻게든 깨부수려 발악합니다.

예를 볼까요. 역전 다방에서 일하는 예쁜 아가씨는 좋고, 내가 선물한 목걸이를 그 아가씨가 해주니 더 좋습니다. 하지만, 세일 형님이 그 아가씨를 숙박업소로 불러내는 건 싫고, 그걸 말려보려다 괜한 실수를 저질러 착한 동생들이 억울하게 맞게 되는 것은 더 싫고, 내가 대신 맞겠다며 세일 형님에게 직접 찾아가 알아서 엎드려 뻗쳐주는 동생들의 기특한 모습은 참 보기 좋고… 영화는 이런 식으로 전개됩니다. 등장인물들은 조금도 관객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처럼 어이가 없을 정도로 간단명료하고 단순 무식한 인물들 속에서 입체감이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등장인물이 하는 말이며 행동이 모두 눈에 보이는 그대로인 덕에, 관객은 인물의 내면을 읽고 이해하기 위한 씨름을 할 필요도 없이 그들의 감정에 공감하고 이입할 수 있게 됩니다. 여기에 신인 조병옥 감독의 사실적인 연출이 결합돼 영화는 '뻔히 들여다보이는 속을 꼼꼼히 들여다보는' 모양새로 완성됐습니다.

어르신도 경찰도 못 말리는 '개들의 전쟁’

인물들만큼이나 간결한 갈등 구도에 대한 이야기도 해야겠습니다. 영화는 상근 패거리와 세일, 이 둘이 빚는 대립 이외의 갈등은 의도적으로 축소하거나 외면해버립니다. 양아치들이 동네에서 무슨 짓을 해도 동네 어르신이 나와 한 소리 하는 법이 없죠. 경찰이 출동하는 일도 없고요. 이는 둘간의 대립이 주는 긴장과 대립의 해소가 주는 쾌감 모두를 극대화하는 효과를 불러옵니다.

간결한 갈등 구도로 영화를 이끄는 상근 패거리와 세일이 둘 다 양아치란점도 언급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양아치 상근을 괴롭히는 반동 인물이 '어르신' 내지는 '경찰'이 아닌 덕에 영화는 갈등 구조가 체계화되고 대립이 구체화되는 과정에서도 전개가 느려지지 않습니다. 반동 인물로 양아치들의 방종에 찬물을 끼얹는 인물이 등장했다면 아마 지금만큼의 재미는 없었을 것입니다. 양아치들의 대립, 그야말로 '개들의 전쟁'으로 갈등 구도를 간추린 덕에 영화는 시종일관 힘을 잃지 않습니다.

이는 관객의 수요를 정확히 읽어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양아치들이 정말 양아치답게 나오는 영화를 보면서 복잡한 갈등 구도나 인물의 다양한 내면 묘사를 기대하는 관객이 얼마나 될까요. 골치아픈 상황이 되려다 이내 긴장을 빼버리는 마지막 장면은 관객들의 기대를 정확히 아는 연출자가 건네는 일종의 농담입니다.

시사회 후 일주일... 천만보다 값진 1만 관객

영화 <개들의 전쟁>은 관객의 수요를 정확히 짚어낸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인터넷 시사회를 통해 좋은 입소문이 돌고, 무료로 영화를 본 관객들이 유료로 영화를 재관람하는 사례들이 이어지면서 영화는 1만 관객을 무난히 돌파했습니다(11월 26일 영진위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독립영화치고는 상당한 관객 수입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아쉬웠습니다. 상영관만 더 많았더라도 충분히 더 많은관객을 모을 수 있었을 테니까요. 올해 1000만 관객 영화가 두 편이나 나왔다고 합니다. 또 한국영화 누적 관객수가 1억 명을 넘었다는 소식도 들리고요. 그러나 이것이 과연 진정 '한국 영화의 승리'인지 되물을 필요성이 있어 보입니다. '다양성 없는 확장'은 고인 물을 더 깊게 고이게 하는 것과 다름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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