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파크] 현실과 영화의 아주 얇은 막, 그리고 균열 <밤의 해변에서 혼자>

강동희 기자 | 기사입력 2018/07/20 [08:18]

[무비파크] 현실과 영화의 아주 얇은 막, 그리고 균열 <밤의 해변에서 혼자>

강동희 기자 | 입력 : 2018/07/20 [08:18]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감상하고 비평함에 있어 감독의 사생활과 작품을 분리하려는 시도는 가능하지 않습니다.기자회견장에서 홍상수 감독은 작품을 작품으로만 보아줄 것을 요청했지만,그게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건 본인도 알았을 겁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실제 연출자인 감독과 실제 주연배우의 스캔들이 있기에 더 재미있는 영화이며 그 스캔들을 알아야만 특정한 의미가 부여되는 장면들도 상당히 많은 작품입니다.물론 홍상수와 김민희의 스캔들을 모르는 이라도,영화 속 주인공 ‘영희’가 유부남 영화감독과 불륜관계에 있음을 알 수는 있습니다.그러나 영화는 실제 홍상수 김민희 스캔들과의 관계속에서 훨씬 풍부한 해석의 여지를 남깁니다.스캔들을 전혀 모르는 외국 관객들은 이 영화가 주려던 재미의 절반밖에는 누리지 못했을 겁니다.그 절반만 가지고도 베니스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긴 했습니다만.

 

홍상수 영화답게 딱히 ‘내용’이랄 건 없습니다.그냥 주인공들은 대화를 나누고 술을 마셔요.극장을 나서면서 한 무리의 남성들이 ‘너무 지루하고 도대체 뭘 말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며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것을 들었는데,실제로 그렇습니다.등장 인물들은 야채 수프를 먹으러 간 식당 문이 닫은 것을 보며 아쉬워하고,점장이 암 투병중이라는 서점에 들러 책을 한 권 삽니다.우연히 만난 선후배간엔 ‘선배는 젊어지셨네요,너는 여전히 예쁘다.’같은 대화가 오가요.지루하죠.딱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도 알 수가 없고요.

 

그러나 (늘 그랬듯)홍상수 영화의 매력은 여기에 있죠.어떤분은 홍상수 영화를 보고 ‘홈비디오같다’고,‘영화’가 아닌 그냥 영상물같다고 이야기하더군요.하지만 반대입니다.진짜 홈비디오들은 영화적이에요.우린 결혼식이나,아기의 재롱 같은 것을 주로 기록합니다.야채수프 가게가 닫아서 아쉬워하는 모습을 십 분 이상 촬영해 굳이 간직하는 경우는 드물죠.오히려 전혀 영화적이지 않은 것을 스크린으로 보는 경험,이것이 홍상수의 작품세계인겁니다.

 

그럼 여기서 질문이 하나 생기죠.‘전혀 영화적이지 않은 것을 스크린으로 보는 것이 어떻게 영화적 경험이 될 수 있는가?’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가장 매력적인 대답입니다.홍상수 영화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일들이지만 현실은 아니죠.작품과 관객은 스크린이라는 하나의 막을 두고 있어요.이 막은 매우 얇지만 절대로 통과될 수 없는 성질의 것입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 등장하는 장면 하나를 예로 들어 볼까요. 팬션을 잡은 주인공들이 실내에서 홍상수식 실없는 대화를 나누는 동안,그들이 등지고 있는 뒷배경의 창문을 열심히 닦는 의문의 사내가 등장합니다.창문은 닦으면 닦을수록 깨끗해지고 결국 창을 열었을 때와 닫았을 때 눈에 들어오는 풍광은 유사해지죠.하지만 창문을 연 상태와 창을 닫은 상태는 결코 일치할 수 없습니다.영화와 현실처럼 말입니다.

 

모든 영화들은 현실과의 경계를 허물고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를 ‘믿게끔’하려고 노력합니다.외계 행성에서 이민온 초능력자가 사이코 과학자가 만든 괴물이랑 싸우는 이야기조차 시나리오만 제대로 만들어졌다면 관객들은 믿어요.하지만 홍상수의 영화는 스팸을 굽고 막걸리를 마시는 모습을 보면서도 ‘이건 영화야’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갑니다.일상과 영화의 경계에 씌워진 막膜 위에 홍상수 김민희 스캔들이라는 ‘실제’와 극중 여배우 ‘영희’와 영화감독 ‘상원’이 겪고 있는 영화 속 현실의 ‘일치’를 대비시키는거죠.결과적으로 관객들은 지극히 일상적이지만 ‘사실’은 아닌 어느 영화 속에서 펄떡거리며 살아 움직이는 ‘현실’을 보게 됩니다.

 

좀 더 쉽게 예를 보죠.앞서 저는 이 영화에 주인공이 친한 언니와 함께 실없는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고정된 앵글로 한참 보여준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관객은 홍상수가 쳐놓은 현실과 영화의 은근한 거리감,그리고 그것이 주는 영화적 긴장을 즐기며 두 여성의 ‘일상적 대화’를 구경하게 되죠.그런데 갑자기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그 남자 유부남이라며.”

 

바로 이 순간 홍상수 세계를 만든 막에 거대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합니다.그리고,극의 후반부에 이르러 시종일관 차분하던 김민희,아니 ‘영희’가 결국 술에 취해 ‘나더러는 불륜이라며 온갖 해코지는 다 하는 사람들’에 대해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면 그 긴장은 극에 달합니다.절대로 무너질 수 없는,현실과 영화 를 막고 있는 ‘스크린’이라는 벽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초조함이 생기는거죠.이런 긴장이 영화 내내 지속됩니다.그리고 배우 김민희는 이 모든 미세함을 기가 막히게 표현합니다. 그는 현재 배우로서 어느 경지에 도달한 인상입니다.

 

많은 비평가들이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비평하면서 약속이나 한 듯 김민희 홍상수 스캔들에 대한 본인의 입장을 밝히더군요.저도 왠지 안 하면 안 될 것 같아 몇 자 적어보려 했습니다만… 할 말이 없네요.다만 이 말은 하고 싶습니다.김민희는 베니스 여우주연상을 받을 만한 연기를 펼쳤습니다.그리고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죠.

 

한국 사회가 여성에게 ‘능력’이상의 무엇,특히 윤리적인 것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그녀의 베니스 수상 및 참석은 통쾌한 부분이 있습니다.그는 직업 배우이고,좋은 연기를 했으며,자기 능력으로 상을 받았습니다.이 간단한 인과가 여성이란 이유로 성립되지 않는 경우들을 목격해야 하는 ‘한국 남자’로서,전작 〈아가씨〉로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으나 레드카펫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던 그 아쉬움을 새삼 생각하며 글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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