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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파크] 오늘, 나는 해고되었다. <카트>

강동희 기자 승인 2018.07.08 08:59 의견 0

영화 <카트>는 사측의 일방적인 계약 위반으로 부당해고 당한 마트 노동자들의 파업을 다룬 작품입니다. 전태일 열사의 기일인 11월 13일 개봉했죠. 눈물샘을 자극하는 예고편과 트위터를 통한 문재인 의원의 추천으로 작품에 대한 기대가 컸던 저는 개봉 바로 당일에 조조로 영화를 보러갔습니다.

상영관은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의외로 어린 여학생들이 많이 보여서, '아, 유소년 여성층이 노동 문제를 다룬 영화에 이토록 관심이 크다니, 고 무적인걸'이라고 잠시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옆 자리에 앉은 한 무리 여학생들의 대화를 통해, 그들이 소재에 대한 관심이 아닌 극중 '태영'역을 맡은 도경수의 출연 때문에 상영관을 찾았음을 알 수 있었죠. 도경수는 아이돌 그룹 엑소(EXO)의 멤버입니다. 뭐 어쨌거나, '오빠' 보러 왔다가 여성 노동문제에 관심 가져주면 그것도 좋겠다, 하는 생각으로 그들과 두 시간을 함께했습니다.

영화는 기대 이상으로 울림이 컸습니다. 네, '마트에서 일하는 아줌마들이 기업의 횡포에 힘을 합쳐 맞선다'는 기본 설정만으로도 이 작품이 어떤 종류의 눈물과 웃음을 줄 것인지, 또 이 '아줌마'들에게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 것인지 예상하고 기대할 수 있죠. <카트>는 바로 그 기대치를 정확히 이해하고 상업영화 관객들이 원하는 모든 종류의 눈물, 웃음, 그리고 이야기를 성실히 보여줍니다. 부당함 앞에 눈물짓는 이들의 좌절 있습니다. 거대한 힘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약자들의 설움 있습니다. 가진 자들의 교활한 이간질에 놀아나 서로를 헐뜯는 약자들의 싸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짓밟으면 밟을수록 더 단단히 그들에 맞서는 이들이 주는 감동 있습니다.

두 시간 남짓 되는 상영 시간 동안 관객들은 쉼 없이 울고 웃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작품의 제목 <카트>의 의미가 드러나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메마른 관객조차 눈물을 주체하기 어렵게 돼죠.

완벽히 잘 만든 영화라는 뜻은 아닙니다. 사실 정치적인 시각을 걷어내고 작품만 본다면 <카트>는 그렇게 유려한 만듦새의 영화는 아니에요. 마트 노동자들의 고된 하루가 묘사되고, 그들에게 부당한 일이 닥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힘을 모으는 영화의 도입부는 담백하고 경쾌합니다. 긴장도 크고요. 그러나 강동준 대리(김강우)가 큰 결심을 하게 되는 이야기의 중반부를 넘기고 나면 영화는 살짝 비틀거리기 시작합니다.

'무시당하던 아줌마들이 힘을 모으고 결의를 다지는', 초반부의 노조 결성 장면이 주는 짜릿함 이상의 그 무언가를 더 이상 내놓지 못하는 것이죠.나머지는 주인공들이 만들어 놓은 노조를 흔들고 깨려는 온갖 무자비한 폭력들의 나열인데, 공권력의 과도한 투입, 용역깡패의 등장, 사측의 고소장 남발, 노조원들의 부상 등으로 이어지는 드라마들이 이야기의 전진 없이 그저 '나열'만 되다보니 긴장감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영화가 보여준 '관심'과 '위로', 고마웠습니다

십대 여성 관객들을 끌어모은 도경수가 연기한 '태영'의 이야기 역시 주목할 만한 주제이나, 태영 엄마의 파업 이야기와 완벽하게 섞이지는 못한 인상입니다. 태영은 태영의 이야기대로, 태영 엄마 선희(염정아 분)의 이야기는 선희의 이야기대로 그저 옆에 붙어만 있는 느낌이에요. 김강우가 연기한 강동준 대리도 감정을 적시는 등장과 적지 않은 극중의 비중에 비해 퇴장이 너무도 단순해 좀 황망하기까지 하더군요.

그러나 지적이 불가피한 이런 영화적인 문제들을 모두 인정하더라도 영화<카트>의 각본에 담긴 진정성은 훼손되지 않습니다. 이런저런 아쉬움을 부인할 순 없지만, 대한민국에 살며 계약직이란 이유로 '문자 해고'를 당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노동한 만큼의 임금을 받지 못한 경험이 있었던 사람으로서, 거대한 힘 앞에 분루를 그저 꿀꺽 삼키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과거가 있었던 한 개인으로서 도저히 울 수밖에 없더란 얘깁니다.

네, 오로지 애국심 하나로 <디 워>를 좋게 평가하는 것이 우스꽝스러운 일이듯, 대한민국 사회의 '99퍼센트'라는 이유로, 극중 한선희 여사와 거의 같은 일을 겪었던 경험이 있었단 이유로 이 영화를 기울어진 시각으로 보는 것은 안 될 얘기겠지요. 하여 '비정규직인 당신이 꼭 봐야 할 단 한 편의 영화' 하는 말은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영화가 보여준 '관심'과 '위로'가 고마웠다는 얘기 정도는 해도 될 것 같군요. <카트>는 '더 마트 소속 여직원'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땅, 이 대한민국 위에서 '근로자'로 살아가는 너와 나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소재로 상업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의미 있는 도전이란 생각이 들었다'는 연출자 부지영 감독의 인터뷰가 새삼 마음을 울립니다.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오는 길에, <오마이뉴스>의 새 기사 소식이 제 휴대폰을 울립니다. 대법원이 '쌍용차의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며 원심을 파기 환송했다는군요. 대법의 판결문을 찬찬히 읽노라니 더 기가 막힙니다. 트위터 곳곳에 자신을 쌍용차 노동자라 밝힌 이들이 '싸움을 계속하겠다'는 취지의 글들을 적어 올리기 시작합니다. 암담하지만, 자식 걱정에 더 슬플 이들에게 이 영화 속 대사를 살짝 바꾸어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아이들 지켜주는 신은 따로 있대요. 저라면 꿈도 못 꿀 일을 해내고 계세요.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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