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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동식 칼럼] 워이틴스키 선생의 "위대한 여로"

주동식 칼럼니스트 승인 2018.09.15 12:20 의견 0

기억하시는 분이 거의 없으시겠지만, 블라디미르 워이틴스키라는 분이 쓰신 <위대한 여로>라는 책이 어렸을 적 우리 집에 있었다.

저자는 러시아혁명 당시 고참 볼쉐비키 당원이다. 혁명 활동에 참여했던 개인적 경험과 소회를 기록한 책이다. 어마어마한 분량으로, 한 2천 페이지는 됐던 것 같다.

어렸을 때라 그 방대한 분량을 다 읽을 엄두는 내지 못하고 띄엄띄엄 읽었는데, 그 가운데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조직 활동을 하는 중 경찰관들이 자기들을 찾아와 노조 결성과 혁명 활동 참가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는 것이다.

결국 경찰관 몇 사람과 볼쉐비키 당원 몇 사람이 은밀한 장소에서 이 문제로 논의를 했는데 경찰들이 상당히 진지했다는 것. 그 자리는 경찰관들이 술을 마시자고 해서 다들 대취하는 분위기로 훈훈하게 마무리됐다는...경찰이라는 조직의 특성이랄까, 러시아 국민들의 민족성이랄까...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든 에피소드라서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나도 군생활을 전투경찰로 복무하면서 대충 경찰 조직과 경찰관들의 분위기를 엿보았던 경험으로 말하자면 군대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고 체제 친화적이고 상명하복의 규율과 분위기가 강한 곳이 경찰 조직이다.

그런 경찰 조직에서 "이건 아니지 않나"라는 의견이 공개적으로 표출된다는 것은 만만히 볼 신호가 아니라는 얘기이다. 경찰관들이 공식조직에 대한 분노와 저항을 생각하고, 다른 조직적 대안을 생각하는 사회는 거의 끝장에 가까이 있다는 이야기다.

인터넷 검색으로 워이틴스키 선생과 <위대한 여로>를 찾아봤더니 전혀 나오는 게 없다. 부득이하게 국회도서관 사이트를 검색. 그랬더니 워이틴스키가 아니고, 위이틴스키로 기록돼 있다. 혹시나 하여 알파벳으로 확인하니 워이틴스키가 맞다. 어째 국가기관 하는 일이 내 개인의 기억력보다 더 부정확하냐 ㅉㅉㅉㅉ

국회도서관 자료에서 알아낸 영문 이름으로 검색해보니

https://en.wikipedia.org/wiki/Wladimir_S._Woytinsky 이 분인 듯.

내가 읽은 <위대한 여로>는 아무래도 [Stormy Passage: A Personal History Through Two Russian Revolutions to Democracy and Freedom: 1905-1960 (1961)] 이 책 같다.

참고로 워이틴스키 이 분은 나중에 서구세계로 건너가 경제학자로 활동하신 것 같다. 미국에 가서는 중앙통계위원회(Central Statistical Board)와 사회보장국(Social Security Board)에서 근무했다고...

갑자기 어렸을 때 대충 읽은 <위대한 여로>를 완독하고픈 욕구가 생긴다.

그럴 수 있으려나 심지어 저 책이 우리나라에서는 두 번 다시 출간되지 못하고 영원히 잊혀질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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