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향(竹鄕)의 소풍] 아이슬란드 여행 5회차(3) 2015년 9월 3일 사진 일기
눈과 화산, 푸른 바다의 나라 아이슬란드 16박 17일 일주기
장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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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4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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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생각을 하고
서로 대화를 통해 공감대가 쌓인다.
그 공감대가 뿜어내는 즐거움은 느껴본 사람만이 안다.
그런 사람을 이 초록별에서 여행의 동반자로 만나,
평생 같이 간다는 건 얼마나 커다란 축복이며 행운인가
- 근데 여보 아까 그 여자 얘기 어디까지가 사실이야
- 여자 얘기 무슨 여자 얘기
- 생선공장 메니저 말야 슐츠인가 뭔지 하는
- 슐츠가 뭘 어쨌는데
올 것이 왔다.
여자들 속에서 자란 나는 아내의 속을 빤히 들여다보면서도
끝까지 버텨야함을 직감한다.
- 저녁에 혼자 올 수 있겠냐고 물었다며
혼자 사는 여자가 같이 저녁 먹자고 했다면 스토리가 뻔하잖아
언니 안그래요
어라 이젠 형수님까지 끌여들여 총공세로 나온다.
블루베리와 버섯을 손질해야 한다며 형수님은 못들은 척 흠흠.. 하더니 수돗가로 가신다.
- 그랬지 같이 저녁이나 먹자고
요리하는 게 취미라나 어쩐다나
난 능청을 떨며 시간을 번다.
찰나의 순간에 잔대가리가 파바박 돌아간다.
- 그래서 뭐랬는데 간다고 그랬어
- 쉽지 않겠지만 기자들 브리핑 끝나면 시간이 좀 날지도 모른다고 그랬지.
참 그 여자가 여기 이사피요르드에 산다구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내가 가로채며
- 이메일하고 주소와 전번도 줬더구만
- 어.. 어떻게 알았어 그건..
- 내가 누구랑 30년 넘게 살았는데
다행히 한전 앞에서 촛불들고 까부냐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런 상태면 이 위기에서 벗어날 가망이 있단 얘기다.
- 아니, 사람을 뭘로 보구.. 점점..
- 횟감을 넣은 박스 뜯다가 봤지. 그래서 갈거야
- 간다면 보내줄래
- 피.. 누가 말려! 가든가 말든가
- 내가 당신을 두고 가긴 어딜가.
지까짓거 트럭으로 빡빡 채워서 싣고 와봐라.
내가 눈하나 깜짝 하나
바로 이때 구원투수가 등판한다.
- 장서방!
항구에 덴마크에서 온 페리가 있대. 구경이나 가자구!
바로 옆에서 빙하의 폭포는 줄기차게 쏟아지지요.
페리 구경은 건성으로 하고
난 피곤하다며 먼저 텐트로 돌아와 벌렁 누워버렸다.
간만에 저녁다운 저녁식사에다 보드카를 곁들였으니
아내의 바가지 쯤이야 이젠 자장가로 들린다.
우리들이 지지고 볶는 와중에도 빙하 녹은 시원한 물줄기는 쉬지 않고 바다로 흐른다.
사흘을 보내자
아니, 이틀만 보내자 했던
이사피요르드도 결국엔 우리들의 발목을 잡지 못했다.
그것이 슐츠 때문이었는지는 아무도 입을 뻥끗 하지 않아 나는 모른다.
우리들 갈 길은 아직 멀었거든
눈이오려는지 바람은 더욱 세차고 오사(誤死)하게 춥다.
내일 저녁 해지기 전까지 가야 하는 크(흐)마(망)스탕기(Hvammstangi)는
적어도 열시간 넘게 가야 하는데
피요르드를 자그마치 열군데도 더 돌아야 하는 지옥의 코스였으니..
[죽향(竹鄕)의 소풍]
죽향(竹鄕)이라는 아호를 가진 장욱은
1986년 재학 중 먹고살기 위해 도미,
30여년 이민 생활을 지내며 한시를 써온 시인이다.
[죽향의 소풍]은 우주의 수많은 별 중
지구라는 초록별의 방문객이라는
그의 소풍(삶)을 독자들과 공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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