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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리뷰] 김홍도 Alive; Sight, Insight

김홍도의 시선이 머무르는 곳을 따라가다

김혜령 기자 승인 2018.10.17 10:44 의견 0

우리가 생각하는 김홍도는 어떤 사람인가 우선 ‘풍속화의 대가’라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김홍도의 작품은 풍속화 뿐이 아니다. 풍속화는 극히 일부일 뿐이며 풍경화, 인물화, 풍속화, 궁중화 등 그의 눈길이 닿는 곳, 붓이 닿는 곳마다 그림이 피어났다.

<김홍도 Alive; Sight, Insight> 전시는 빛과 음악을 활용해 김홍도의 작품을 3차원으로 경험하는 미디어아트 전시다. 양민부터 사대부까지 신분을 넘나드는 단원 김홍도의 숨겨진 이야기들과 마주할 수 있다. 전시장은 김홍도의 초상이 전시된 인트로를 제외하고 총 5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있다.

<인트로>에 전시된 김홍도의 자화상에서 자신을 고고한 자태의 선비로 표현한 김홍도를 만날 수 있다. 물론 이 그림은 공식적인 김홍도 자화상으로 밝혀진 그림은 아니며 김홍도의 작품으로 추측하는 그림이다.

김홍도는 중인 출신의 화원보다 관직에 진출한 ‘사인’으로 표현되어 있다. 김홍도는 실제로 준수한 외모에 미술, 음악 모두 조예가 깊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얼굴의 묘사는 사실적이지만 옷이나 배경은 가벼운 선 처리로 마무리되어 있는데, 이는 서양화풍이 동양화에 접목되면서 이렇게 했을 가능성이 있다.

▲ <섹션-1: 박달나무 언덕> 전시장 초입에는 나무로 된 프레임들이 겹겹이 설치되어 있다. ⓒ MADE STUDIO


<섹션-1: 박달나무 언덕>은 ‘올려다보다’라는 테마로 꾸며졌으며 문인 사대부의 삶을 누렸던 김홍도를 만날 수 있다. 김홍도의 호인 ‘단원’은 박달나무 동산을 뜻한다. 이곳은 김홍도의 스승인 강세황의 ‘단원아집’의 장소이기도 하다.

강세황은 조선후기에 그림과 글씨에 조예가 깊은 평론가로 활동했다. 스스로 글과 그림에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었기도 했다. 작품에 ‘표암평’이라는 세 글자가 적히면 그 가치가 엄청나게 상승했기 때문에 강세황을 만나기 위해 예술가들이 줄을 서기도 했다. 그는 조선시대의 르네상스인 조선 후기 화단을 이끈 사람이다.

김홍도는 사대부처럼 단원이라 이름 지은 정원을 경영하고 아집(사대부들의 예술모임)을 베풀었다. 김홍도는 강세황과 협업을 많이 진행했다. 김홍도가 그림을 그리면, 강세황은 그에 걸맞은 글을 남겼다. 그렇게 강세황과 김홍도는 단순한 사제지간을 넘어 깊은 인연을 이어갔다.

▲ 세션2에서는 화원으로서의 김홍도를 만날 수 있다. ⓒ MADE STUDIO


<섹션-2: 궁궐 ‘살펴보다’>는 김홍도의 도화서 생활을 엿볼 수 있다. 김홍도는 정조가 규장각에 설치한 자비대령화원제도의 화원으로 들어가 정조의 통치철학을 시각화했다. 단원은 화성행차 기록의 책임자로 임명되어 ‘원행을묘정리의궤’와 ‘화성능행도8폭병’ 두 작품을 남겼다.

엄청난 규모의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당시 화성행차의 위엄을 느낄 수 있다. 김홍도는 실제보다 더 화려하고 장엄하게 그려 궁궐의 위상을 살려냈다. 그림에는 화려한 색채들이 돋보이는데, 당시 이런 화려한 물감은 중국에서 금과 맞바꿔야 구할 수 있었다. 이 그림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전시장에는 기록자인 김홍도와 행차의 주인공인 왕이 메신저로 대화를 주고받는 형태의 미디어아트가 섞여있어 그림만 봐서는 지루해 할 어린이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섹션-3: 금강산 ‘굽어보다’>는 김홍도의 금강비경을 볼 수 있다. 김홍도는 금강산에서 남긴 스케치로 금강산화첩 60폭을 완성했다. 김홍도의 금강산화첩은 한국적인 산수화풍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겸제정선이 진경산수화를 만들어냈다면, 김홍도는 진경산수화를 완성했다. 우리나라 산수화에는 산과 들, 바다만 그려지지 않았다. 곳곳에 사람, 집 등 사람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요소들을 숨겨놓았다. 여기에는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는 동양철학이 숨겨져 있다. 이 공간에서는 김홍도의 금강산화첩과 금강산 미디어아트를 동시에 만날 수 있다. 계단을 올라가면 금강산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형태로 미디어아트를 관찰 할 수 있다.

▲ 이번 전시에서는 프랑스 기메박물관에 있는 행려풍속도8곡병을 미디어아트로 재해석했다. 행려풍속도8곡병은 김홍도 풍속화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작품이다. ⓒ m


<섹션-4: 저잣거리 ‘꿰어보다’>는 우리들에게 널리 알려진 김홍도들의 풍속화들이 전시되어 있다. 김홍도는 서민의 현실적인 삶을 관찰하고 그를 김홍도 식의 파격적인 구도로 담아냈다.

그는 양반들을 씁쓸한 풍자로 담아냈다. 그러나 이를 우울하게 풍자하기 보다는 익살스럽고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또한 파격적인 붓터치와 인물의 표정을 생동감있게 표현하면서 사람들의 일상을 돋보기로 관찰하듯 담아 일상의 아름다움을 드러냈다.

김홍도의 풍속화에는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관찰하는 듯한 포즈의 인물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는 서민의 삶을 관찰하는 김홍도 자신을 투영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는 프랑스 기메박물관에 있는 행려풍속도8곡병을 만날 수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풍경을 각각 두폭씩 그려냈으며 치밀한 삶의 묘사가 돋보인다. 또한 김홍도 그림의 원작에 현대 삶을 접목한 재해석 미디어 아트도 만나볼 수 있다.

▲ 섹션 5 '단원의 방'으로 들어가는 전시장 입구. 선비의 방을 보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 MADE STUDIO



마지막 섹션인 <단원의 방>에서는 단원의 내면을 표현한 그림들이 걸려있다. 김홍도는 중인이라는 신분의 한계를 넘어 부와 명예를 모두 누린 인물이다. 앞에서 그의 명성과 외면적인 삶을 볼 수 있었다면, 이 공간에서는 마음 속 김홍도를 만날 수 있다.

<추성부도>는 61세에 그린 그림으로 김홍도 그림 중 가장 나중에 그려진 그림이자 송대 구양수가 지은 ‘추성부’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매서운 가을 바람과 앙상한 가지는 고독한 김홍도의 말년을 표현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렇듯 김홍도의 시선이 머무른 곳은 모두 그림으로 남겨졌다. 그것은 인물, 풍경, 자연, 동물 할 것 없이 모두 김홍도의 애정 어린 마음이 담겨있었다. 거칠지만 힘 있는 특유의 붓질에서 그의 자신감이 돋보이며 그림의 구도 역시 김홍도만의 매력이 물씬 풍겨난다. 이번 전시는 김홍도의 그림을 현대와 접목시켜 김홍도의 작품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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