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연결성 : 5G가 핵심이다(1)

4차 산업혁명과 자치분권 시대(22)

조연호 작가 | 기사입력 2018/11/05 [12:09]

초연결성 : 5G가 핵심이다(1)

4차 산업혁명과 자치분권 시대(22)

조연호 작가 | 입력 : 2018/11/05 [12:09]

초연결성 : 5G(generation)가 핵심이다

 

“초연결은 캐나다의 사회과학자인 아나벨 콴하스와 배리 웰먼에 의해 고안된 용어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이 연결되어 상호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우리는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였다. 다양한 미디어 매체를 통해서 독자들도 인지했겠지만, 평창 동계 올림픽은 스포츠 이상의 것을 보여주었는데, 특히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다양한 기술의 향연을 보여주었다. 올림픽 관계자와 일반인들은 자율주행 버스 내부에서 5G 기반으로 실현되는 홀로그램, 투명 디스플레이, 무안경 3D의 실감 영상을 체험함녀서 5G 상용화 시대가 성큼 다가왔음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평창에서 보여준 5G에 대하여 ‘차세대 무선기술이 이륙준비를 완료.’ 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평창동계 올림픽의 주요 기워드 중에 IT가 포함된다. 개인적인 생각에는 ICT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데, 유사한 뉘앙스를 지닌 약자여서 IT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5G를 통한 기술의 퍼포먼스가 좋았다. 홀로그램이 뜨고, 내가 좋아하는 선수의 움직임만을 집중적으로 볼 수 있고(옴니 포인트뷰), 보다 정밀하고 화려한 동작들을 모니터에서 볼 수 있다.(360도 가상현실 라이브, 인터랙티브 타임슬라이스) 

 

산업혁명을 설명하면서 필자는 연결성과 생산력을 주요 키워드로 삼았는데, 연결성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라고 할 수 있다. 3G 스마트폰을 사용하다가 4G 스마트폰으로 바꾸고 나니 답답한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만큼 속도 면에 있어서 탁월했고, 동영상을 볼 때 버퍼링이 거의 없었다는 것, 그리고 와이파이 존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 수준으로 모든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무선인터넷(와이파이)존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느껴질 정도였으니, 만족감이 상당했다. 그런데, 벌써 새로운 시대의 속도를 기다리고 있다. 인간의 속도에 대한 열정과 갈구함은 끝이 없는 것 같다. 이 번 연재에서는 5G가 도래하기까지의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5G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간략하게 정리하고자 한다.

 

5G에 이르기까지 : 추억의 속도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

 

이동통신은 10년을 주기로 발전을 거듭하면서, 그 속도의 개선도 100배에서 1,000배 수준으로 발달해 왔다. 사실, 이정도 수준의 발전을 경험했던 초창기에는 기술의 발전에 ‘헉’소리를 낼 만큼 경탄하기도 하지만, 곧 그 경탄은 또 다른 불만을 가져왔고, 이러한 인간의 불만이 결과적으로는 새로운 기술의 ‘황금알을 낳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최초 1세대 이동통신은 1G라 할 수 있고, 주로 음성만은 전달하는 시스템이었다고 보면 된다. 한국은 1984년에 시작되어 1999년까지 약 290만 명의 가입자가 사용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1990년대 중반)에 한 친구가 벽돌만한 휴대폰을 학교로 가져 온 것을 본적이 있었다. 이동하면서 전화를 할 수 있는 도구라는 것은 알았지만, 솔직히 부럽지 않았고, 오히려 통화요금이 비싸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많은 사람이 사용했지만, 크게 부럽지 않았던 도구였다. 1990년대는 대부분이 ‘삐삐’라는 무선호출기를 사용했고, 송신만 할 수 있는 시티폰이 보조했는데, 전자는 대중적인 인기와 보급률을 자랑했지만, 시티폰은 크게 인기를 얻지 못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 후반 2G 휴대전화가 등장한다. 흔히 말하는 휴대폰이다. 필자는 1999년에 휴대폰을 구입했는데, 지금은 010으로 시작하지만, 당시는 011, 017, 016, 018, 019 등 다양한 앞자리 번호가 있어서 앞자리만 보고도 사용하는 통신사를 알 수 있었다. 2G는 음성과 문자 메시지를 사용할 수 있게 했으며, 당연히 그 편리성이 ‘삐삐’와 시티폰을 결합한 것 보다 뛰어났고, 요금제도 저렴해져서 앞의 기기들을 아득한 기억 저편으로 보내 버렸다. 당시 2G폰의 이슈는 크기에 있었다. 플립 형태의 핸드폰이 등장했고, 이후 접으면 반으로 줄어드는  폴더형이 등장했다. 폴더형도 사용하는 성별에 따라 그 크기를 더 작게 출시하기도 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말이 변형된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다.

 

2G폰 시대까지는 이동통신 기술이 과거에 비해 발전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이 전 세대 이동통신 기술에 통화기능이 있었던 기기가 있었고, 메시지 수준은 아니지만, 간단한 문자를 전송할 수 있었던 ‘문자 삐삐’도 있었기 때문에 신천지를 보는 듯한 경험은 아니었다. 그리고 산간 지역이나, 지하, 기지국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통신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답답한 즉, ‘잘 터지지 않는’ 상황이 종종 있었다. 그리고 문자 요금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다가 3G 시대가 도래 한다. 2007년 애플사의 아이폰 출시를 기점으로 국내에서도 삼성, LG 등 대기업을 중심으로 스마트폰이 출시되기 시작했고, 그 경합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3G는 통화, 메시지, 화상통화까지 가능한 수준으로 이동 간 인터넷 사용이 가능했으며, 바야흐로 모바일 경제의 시작이자 플랫폼 기업들이 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리고 통근 지하철 안에서 신문 구독자를 현격히 줄어들게 했고, 카페에서도 사람들의 말소리 보다는 무언가에 몰입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었던 시기였다. 

 

하지만 흔히 말하는 ‘와이파이 존’이 아니면, 동영상 시청은 꿈도 꿀 수 없었는데, 버퍼링이 심해서 제대로 영상을 볼 수 없었고 영화 하나를 다운 받다가 인내하지 못하고 포기 한 경험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얼마 후 모든 이동통신사는 4G를 선전하기 시작한다. 3G에서는 최대 수Mbps정도가 가능했다면, 4G는 최소 100Mbps정도의 데이터를 전송시킬 수 있었다.

 

4G는 통화, 메시지, 영상통화를 지원하고 데이터 전송 속도를 수십 배 수준으로 향상 시켰다. 필자는 새로 개통한 4G 스마트폰을 들고 3G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지인을 만나서 기술의 혁신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지인은 그저 눈을 크게 뜨고 ‘우와!’하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우리가 잘 아는 플랫폼 기업들이 무수히 등장하기 시작하고 우리 일상에 본격적으로 침투하기 시작한다. 필자도 4G시대에 이르러서야 페이스북을 시작했고, 다양한 플랫폼 채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자동차의 제로백(zeroback: 자동차가 100킬로미터에 도달하는 시간을 말한다. 예를 들어 제로백이 4초라면, 4초 만에 시속 100킬로미터 수준의 속도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이동통신의 속도에도 욕심이 많다. 필자도 초기에는 경탄을 금치 못했던 4G의 끝 무렵인 요즘에는 그 데이터 전송 속도에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다음 회에 계속)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