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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19세기 바그너의 음악극과 21세기 동화적 영상미의 만남 - "니벨룽의 반지, 라인의 황금"

김혜령 기자 승인 2018.11.18 19:46 | 최종 수정 2020.12.30 13:05 의견 0

난장이족, 거인족, 절대 반지... 영화화되어 더 유명해진 J.R.R. 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듯한 소재다. 소설 <반지의 제왕>은 북유럽 신화를 모티브한 작품으로 웅장한 스케일과 짜임새 있는 전개로 우리에게 익히 잘 알려졌다. 그런데 <반지의 제왕>보다 먼저 만들어진 북유럽 신화를 차용한 작품이 있다. 바로 바그너의 대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다.

<니벨룽의 반지>는 총 4부작으로 이루어진 오페라로 이 4부작을 모두 연주하는데 걸리는 시간만 무려 15시간이다. 바그너의 인생 역작으로 꼽히는 작품으로 바그너 스스로 북유럽 신화와 독일의 전설을 토대로 스토리를 집필했다고 한다.

이번에 공연된 작품은 4부작 중 이야기의 문을 여는 <라인의 황금>이다. 황금과 얽힌 전설, 반지를 탐낸 한 난장이의 저주, 그리고 그로 인한 신들의 갈등과 파멸의 시작을 음악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

▲ 절대반지의 힘을 이용해 난장이족에게 금을 착취하는 알베리히 ⓒ 월드아트오페라/옥상훈

<라인의 황금>은 총 3막으로 구성되었다. 1막은 라인의 황금을 발견하게된 난장이 알베리히와 라인강의 요정 이야기, 2막은 북유럽신의 요새를 완성한 거인족과 신들의 갈등, 3막은 갈등의 해결책으로 난장이족에게 뺏어온 반지가 파멸을 가지고 온다는 예언을 듣는 북유럽 신들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난장이족 알베리히는 라인의 황금을 지키는 요정들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요정들은 그런 알베리히를 비웃으며 희롱한다. 요정들은 자기들도 모르게 알베리히에게 황금의 존재를 알리게 된다. 라인의 황금은 물속에서 잠자다가 볕을 보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이 황금을 반지로 만들어 소유하면 이 세상을 모두 가질 수 있다. 요정들에게 사랑을 고백했으나 거절당한 알베리히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황금을 녹여 반지를 만든다. 이 황금을 녹여 반지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사랑을 포기해야만 한다는 숙명까지 짊어진다.

▲ 미의여신 프레이아를 구하기위해 난장이족을 찾아가는 로게와보탄 ⓒ 월드아트오페라/옥상훈

한편, 이 이야기는 신들의 요새를 완성한 거인형제와 북유럽 신들 사이의 갈등으로 연결된다. 거인족은 요새를 완성한 댓가로 미의 여신 프레이아를 신부로 줄 것을 요구한다. 신들의 왕 보탄은 처음엔 요새를 얻기 위해 프레이아를 주겠다 약속했지만 요새가 완성되자 프레이아를 줄 수 없다고 선언한다. 프레이아를 지키고, 거인족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반인반신인 로게가 라인의 황금 이야기를 전하는 꾀를 낸다. 이에 거인족은 프레이아의 몸을 가릴 수 있을 정도의 황금과 라인의 황금으로 만든 반지를 요구한다. 이에 보탄은 세계를 얻을 수 있다는 반지를 얻기 위해 난장이족이 사는 곳으로 떠난다.

알베리히가 만든 반지의 힘은 실로 엄청났다. 알베리히는 모습을 바꾸거나 감출 수 있는 투구를 만들어 자신을 보호했다. 이에 로게와 보탄은 꾀를 내어 알베리히를 붙잡고, 그 대가로 난장이들의 금과 반지를 요구한다. 알베리히는 반지를 넘기며 “반지를 본다면 누구나 욕심을 낼 것이며, 반지를 가진 자는 불안과 불행이 함께할 것”이라는 저주를 담는다. 반지가 욕심난 보탄은 거인족에게 황금은 주되 반지는 넘기지 않으려 하지만, 예언의 여신이 나타나 반지가 재앙을 가져올 것이라는 예언을 남긴다. 이에 보탄은 거인족에게 반지를 넘긴다. 그러나 거인족 형제는 갈등을 빚고 형제 중 하나는 죽음을 맞이한다. 신들은 거인형제가 만들어놓은 요새, 발할성에 입성한다.

▲ 반지에 저주를 거는 알베리히 ⓒ 월드아트오페라/옥상훈

여기까지가 '라인의 황금'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방대한 스토리와 인터미션 없이 2시간 40분간 진행되는 공연에서 돋보인 것은 화려한 스크린과 작품의 판타지적 해석, 그리고 배우들과 오케스트라의 합이었다. 특히 오페라를 현대미술과 우화적 감성으로 재해석한 무대는 신선한 시도로 관객들의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최고신을 상징하는 보탄과 그의 아내 에르다는 눈을 강조한 모습으로 시각화 되었다. 이는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신의 모습과 더불어 보탄이 잃은 한쪽 눈을 상징화 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반지에 깃드는 저주를 표현하기 위해 뱀 인형을 두른 배우가 등장해 반지를 온몸으로 휘감는다거나, 황금의 반짝임을 표현하기 위해 은박지 재질의 원반을 거울삼아 반사되는 조명으로 빛을 표현하는 등 새로운 자극을 위한 노력이 보였다.

무대에 쓰인 영상 역시 판타지 장르 특유의 느낌을 준다. 특히 스크린을 독특하게 활용했는데, 뒷 배경의 스크린과 무대 앞 스크린을 동시에 활용하며 3차원적 입체감을 만들어냈다. 또한 무대에 빨강, 파랑, 검정 등 알록달록한 원색적 색감을 사용해 신화에 동화적 상상력을 입혔다. 그 덕택에 어렵고 무겁다 생각할 수 있는 바그너 음악을 가볍고 친숙하게 다가오게 했다.

▲ 라인의황금을돌려달라는 물의요정목소리를뒤로한채 발할성에 입성하는 신들 ⓒ 월드아트오페라/옥상훈

물론 묵직하고 고전적인 바그너를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은 매우 실망할 수 있다. 그러나 19세기에 남긴 바그너의 작품이 21세기의 영상미를 만나 새롭게 재해석된 모습을 보며 예술이 지닌 생명력을 다시 느끼는 계기를 만들었다.

오케스트라는 극을 힘 있게 리드하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면서도 오페라 연출 전반을 살려주는 감초역할을 톡톡히 했다. 잔잔하게 흘러가다가도 돌연 음악에 긴장감을 입히며 드라마틱한 신화적 스토리에 생동감을 더했다. 또한 빠르게 음을 쪼개는 현악기 사이로 들려오는 관악기의 묵직한 힘이 뒷받침해 바그너 음악의 매력에 젖어들었다.

다만, 스크린으로 보여주는 자막 중 니벨룽족과 난장이족을 혼재해서 사용한다던가, 신화와 원작에서 동일인의 이름인 홀다와 프레이아를 혼용하는 부분은 생소한 북유럽신화의 지식이 없는 관객이나 일반 대중에게 혼란을 줄 수 있는 요소였다.

<니벨룽의 반지-라인의 황금>은 국내 초연되는 작품이며 그 두 번째 시리즈도 준비되고 있다. 새로운 무대와 바그너의 만남을 기대하는 오페라 팬들에게 다음 작품은 어떤 감동을 선사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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