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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노벨문학상 주제 사라마구 원작의 연극 “눈 뜬자들의 도시”

박앵무 기자 승인 2018.11.19 13:22 의견 2

<눈 먼 자들의 도시>의 후편 <눈 뜬 자들의 도시>가 막을 올렸다. 기획의도를 읽어 보고 꽤 기대에 찬 마음으로 극장을 방문했다.

수도 시민 전체 실명 사태. 그 지옥 속에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았던 한 여자. 위정자, 민중, 재벌, 노동자 등 모든 사람이 평등해진 눈먼 세상을 보며 눈물을 흘렸고 잔혹했던 실명의 도시는 몇 주가 지난 후 다시 눈을 뜨며 정상으로 돌아온다.

그로부터 4년 후, 모든 사람들은 실명 사태가 벌어진 동한 정부가 자행한 일과 자신들이 행한 일들로 침묵의 시간을 보낸다. 이후의 지방선거에서 시민의 70% 이상이 백지 투표를 하는 일이 벌어지고,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정부는 재선거를 하지만 오히려 시민의 83%가 백지 투표를 하고 만다.

각료들과 정부는 애국을 명분으로 시민들을 대상으로 민간 사찰, 불법 취조, 거짓말 탐지기를 이용한 심문까지 하게 된다. 마침내 계엄령이 선포되고 내무부장관의 명을 받은 경장, 경감, 경사는 고군분투 끝에 실명 사태 때 유일하게 눈을 뜨고 있던 여자를 만나게 된다는 줄거리다.

▲ 연극 '눈 뜬 자들의 도시' 포스터 ⓒ극단 초인

배우들의 움직임이 처음 시작할 때부터 재치 있다. 배우 각각의 춤사위와 마임이 좋았다. 코믹한 요소도 많았다. 객석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진다. 무대 중앙이 정사각형의 나무바닥으로 이루어져 극중 배우들이 구둣발을 구르며 소리를 내는 퍼포먼스가 펼쳐지기도 한다.

극 중간중간에 애니메이션이 나오는 점도 특이하다. 독일 출신 ‘카르라 크라흐트(Karla Kracht)’와 스페인 출신 ‘안드레스 베라디에아(Andres Beladiea)’의 작품이라는데, 원작자의 다른 작품이 궁금할 정도로 흥미로웠다. 애니메이션 속의 장면과 극중 장면을 같은 그림체로 통일시키는데 꽤나 애를 먹었을 듯한 데 어색함 없는 영상의 흐름이 좋았다.

영상을 활용한 장면은 이밖에도 있다. 통화하는 장면마다 수화기 반대편의 인물이 영상에 나오는 것이다. 영상에서 나오는 인물은 점점 확대되며 압박감을 준다. 그렇지만 소극장이 아닌 대극장이라 압박감보다는 시선이 분산되어 산만한 느낌이 더 컸다.

배우들의 대사가 중심이 되는 후반 부분은 배우들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좋게 느껴진다. 특히 ‘경장’ 역을 맡은 이상희 배우의 연기에 감탄했다. 오롯하게 대사만으로 무대를 채우는 에너지가 놀라웠다. 관객들을 무대 안으로 흡입하고 집중시키는 그만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배우 김세용은 ‘대통령’ 역을 맡았는데 여느 아이돌답지 않은 정확한 딕션과 발성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가요 프로그램의 무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제스쳐와 어색한 웃음소리는 다소 부족함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 위에서 보여준 움직임은 추후 그가 어떤 배우로 성장할지 기대감을 주었다.

총평을 하자면 아쉬움이 많은 공연이었다. 공연시간이 길게 느껴지고, 관객의 웃음을 끌어내는 연출은 전반부에 몰렸으며, 미처 담지 못한 내용들은 뒷부분에서 해설과 대사로 급하게 전달하려 했다.

특히 총리와 그의 아내가 나오는 침실 장면은 매우 불편했다. 짧은 반바지를 입고 가운을 입은 여배우가 그 장면에서 맨 다리를 내놓고 누워있어야 했는지, 양복 위에 가운을 입은 총리가 왜 굳이 침대 위에서 대화를 해야 했는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시대를 역행하는 극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마지막 장면인 ‘백지로 가득한 무대’는 연출자의 메시지가 담긴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이 장면 하나에 극이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를 담기에는 연출의 욕심이 과했고 대극장의 빈 공간들이 너무 크고 공허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동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상징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사찰과 검열을 의미하는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폭로되고 사라진 지금, 연극 <눈 뜬 자들의 도시>는 이전보다 나아진 세상을 살고 있다는 희망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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