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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관점에 따른 호불호 연극 ‘인형의 집’

박앵무 기자 승인 2018.11.20 09:00 의견 0

여성 서사의 대표작자 고전인 입센 원작 연극 <인형의 집>을 보았다. 150분 러닝타임에 인터미션이 두 번이다. 연극으로서는 흔하지 않은 장시간 공연이었다. 공연 안내 멘트에 “공연 중간 인터미션 때 인형의 집이 아닌 본인의 집으로 돌아가지 마십시오”라는 재치 있는 멘트도 섞여 있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겨울날, 은행장이 된 토르발 헬메르와 그의 아내 노라는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기대한다. 10년 만에 찾아온 친구 크리스티네 린데를 위해 노라는 남편 헬메르에게 일자리를 부탁한다.

노라에게는 비밀이 있는데, 남편이 큰 병에 걸렸을 때 치료를 위해 남편의 은행 동료 크로그스타드에게 큰 돈을 빌렸던 것이다. 크로그스타드는 노라에게 은행에서 해고되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하면서도 차용증서에 남편 대신 서명을 한 것은 문서 위조라고 노라를 압박한다.

그러나 헬메르는 브로그스타드가 부도덕하다며 해고장을 보내고 노라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노라는 남편의 친구인 랑크에게 도움을 청하려 하지만, 오히려 랑크는 노라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한편 린데는 노라의 집에서 크로그스타드와 은밀히 만나며 크로그스타드와 과거의 관계를 회복해보려 한다.

불안과 혼란 속의 노라는 자기에게 살아있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는데...

막이 오르고 조명이 들어왔지만 무대는 완전한 어둠에 감춰져 있다. 놀라울 정도로 삼면이 완벽에 가까운 검정색이었다. 전체적인 느낌은 어두웠지만 천정의 무늬를 통해 인형의 집을 축소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천정 한 가운데 보름달처럼 크게 매달려 있는 구(球) 형의 장치가 인상적이었다.

반 이상 내려와 있는 천정 아래에서 제각각 기이한 포즈를 취한 인물들이 동시에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춤이라기 보다는 음악에 맞춘 움직임에 가깝다.) 움직임이 격해지며 천장은 점점 올라가고 한 구석에서 ‘헬메르’만이 옷을 모두 벗는다. 다른 인물들이 모두가 퇴장하고 음악이 그치면 ‘토르발’이 다시 옷을 하나씩 입기 시작하며 본격적인 극이 시작된다.

‘노라’의 등장 또한 인상적이다. 침대에 앉아있는 ‘노라’. 풍성한 드레스를 입었지만 쇼케이스 속에 갇힌 인형같다. ‘노라’는 절대 사람을 쳐다보며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녀가 사람을 바라보며 말하는 때는 유독 자식과 남편을 지키려고 ‘크로그스타드’에게 맞설 때 뿐이다.

‘크로그스타드’가 ‘노라’를 협박하는 장면은 책상과 배우의 움직임으로 표현되었다. 침대에 거꾸로 누워있는 ‘노라’의 위로 ‘크로그스타드’는 책상을 올리고 책상을 지탱하고 올라오려는 ‘노라’를 끊임없이 떨어뜨린다. 극은 표현될 수 있는 심리적인 한계를 이런 움직임으로 극복하고 있다.

2막도 독특한 무대를 경험하게 한다. 곳곳에 철로 만든 원통들이 배치된다. ‘랑크’는 ‘노라’와 대화한 후 ‘노라’의 옆에 원통을 쌓고 퇴장하고 이어 등장한 ‘크로그스타드’는 ‘노라’를 압박하며 이 기둥을 무너뜨리고 던진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음은 관객에게 노라에 대한 압박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3막은 인형들이 사는 ‘놀이방’을 정의하고 있다. 막이 오르자 등장하는 인물은 인형놀이를 하듯 남자 아이의 턱시도와 여자 아이의 드레스를 번갈아 걸치며 ‘노라’와 ‘토르발’의 흉내를 낸다.

공연은 온 몸과 오감을 사용한다. 연출자 ‘유리 부투소프’는 “관객은 자신이 생각하고 기대하는 이미지의 실현을 보러 극장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와는 다른 새로운 견해, 다른 해석, 다른 세계를 보러 극장을 찾는 것”이며, “연출가에겐 그 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연극 <인형의 집>은 움직임에 많은 에너지를 투자하고 있다. 배우들이 스토리와 감정을 움직임으로 표현하고 있고 보여지는 이미지를 강조한 극이다. 대다수의 관객이 기승전결이 분명한 스토리 중심의 극을 좋아하는 것을 반영하듯, 이미지가 강조된 이번 작품의 경우 인터미션마다 많은 관객들이 자리를 비웠다.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의 여성 서사적 관점을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공연은 그간 볼 수 없던 <인형의 집>인 것은 분명하다.

‘노라’는 제 할 말을 마치고, 차분하게 걸음을 옮겨 문을 나선다. 무대에는 남편 ‘토르발’만 남겨진다. 이 장면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1막에서 막이 오르자 홀로 조명을 받는 것도 ‘토르발’이었고, 내려오는 천장 아래에 남은 것도 ‘토르발’이다. 팬티와 와이셔츠만 입고 무대 한 가운데에 앉아 온몸을 웅크리는 ‘토르발’을 주목하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연출자 ‘유리 부투소프’는 입센이 원작을 썼던 당시 이 극이 제기했던 ‘남녀관계’, ‘자유의 경계’, 혹은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서 나 자신을 속이며 살 수 있는가’ 같은 문제를 언급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 시간의 공연이 어떤 것이 특별하지는 않았다. ‘노라’와 ‘토르발’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남편과 부인의 모습이었고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정의하는 남성과 여성 각각의 역할을 보여줬다.

그동안 여러 번 무대에 올랐던 <인형의 집>에서는 ‘노라’에게만 초점을 맞췄고 “노라가 집을 뛰쳐나간다”는 점이 극의 중점이 되어 왔다.

이번 공연은 ‘여성이 나가는 것’이 아닌 ‘한 사람이 만들고 지키던 세상에서 그 한 사람이 나감으로써 무너지는 한 세계’를 그렸다. 이를 말해주듯 무대 위의 기둥은 1막에서 4개였지만, 3막이 되었을 때는 2개로 줄어들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기둥이 사라지고 천장은 내려앉는다.

여성이 외치는 소리에 그 소리를 없애려고만 할 뿐, 그 여성이 사라졌을 때의 남성의 모습을 생각해 보았는가 이 사회에서 여성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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