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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_이야기(29)] 백성의 애환이 담긴 노래, 경복궁 타령

- 송군호 선생님께 듣는 경복궁 중건 이야기(6)

김혜령 기자 승인 2018.12.11 11:41 의견 0

송군호 선생님: 흥선대원군은 예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경복궁 중건 완공 행사도 예술인들을 불러 성대하게 열게 됩니다. 완공을 축하하는 연희에는 전라도 고창에서 타령요로 유명한 여인이 초청되어 방아타령을 부릅니다. 흥선대원군은 이 여인의 목소리에 반해 나중에 그녀를 운현궁으로 데려옵니다. 이 여인이 영화 ‘도리화가’를 통해 알려진 진채선입니다.

진채선은 판소리 대가 신재효의 제자입니다. 일설에 의하면 신재효가 사랑했던 여인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경복궁 완공 연희에 참여한 이후로 진채선을 봤다는 이야기가 없어요. 이런 야사를 배경으로 ‘도리화가’가 탄생한 것입니다.

▲ 근세 조선의 판소리 명창 진채선.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서 태어나 신재효에게서 판소리 지도를 받았고, 정악에도 능하였다. 경복궁 경회루 낙성연에서 출중한 기예를 발휘하여 청중을 놀라게 했고, 흥선대원군의 아낌을 받았다. 그녀는 최초의 판소리 여성 명창이 되었다 ⓒ 위키백과


흥선대원군은 예술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그 스스로도 추사 김정희에게 글씨와 묵란을 배워 개성적인 묵란화를 남길 정도로 예술에 조예가 깊은 인물이었다. 또한 흥선대원군 집권당시 국가차원에서 공연과 행사가 많이 베풀어졌다. 그러나 역으로 이런 상황은 국고를 탕진하는데도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송군호 선생님:흥선대원군은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경복궁 중건을 서두르던 당시, 팔도에서 모인 장정들이 일의 고달픔을 이겨낼 방법을 고심하게 됩니다. 그는 남사당패, 농악대를 동원해 흥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경복궁타령 역시 이런 배경에서 등장한 노래입니다. 지금도 일할 때 노래를 틀어놓으면 흥이 나잖아요 초기에 노동요로 등장했으며 이후 타령으로 되었지요. 이밖에도 경복궁 중건 당시 공연된 예술작품들을 찾기 위한 노력이 역사학회들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경복궁타령은 서울경기지방의 민요로 조선말기 경복궁을 중건하며 불린 노래다. 자진 장단의 타령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노래는 경쾌하고 박진감이 넘친다.

경복궁 타령은 노동의 흥을 돋구기 위해 불리었다는 설과 조선 팔도에서 동원된 장정들의 고달픔을 달래는 노래였다는 설이 있다. 어느 쪽이던 사람들의 힘든 노동을 이겨내는 목적으로 불리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흥선대원군에게 불만을 품고 비판을 위해 부르는 노래로 변질되었다.

노래 가사 중 “을축 4월 갑자일에 경복궁을 이룩했네” 라는 ‘갑자을축’을 ‘을축갑자’로 도치하면서 경복궁 중건이 본말을 어겼음을 암시하는 가사도 있고, “석수장이 거동을 보소, 방망치를 갈라잡고 눈만 껌뻑 거린다”는 일하는 사람들의 불평, 부역의 고달픔을 표현한 가사도 있다.

노동의 고통 뿐 아니라 “조선 여덟도 유명한 돌은 경복궁 짓는데 주춧돌감이로다” 등 경복궁 중건의 폐단이 적나라하게 담겨있다. 초기엔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백성들이 고된 강제부역을 이기지 못하고 흥선대원군에게 불평불만을 품었으며 양반 등 기득권층들은 이를 이용해 흥선대원군의 하야를 주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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