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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포용"의 4차 산업혁명 시대(2) 점점 심해지는 불평등, 그리고 무감각함

4차 산업혁명과 자치분권 시대(55)

조연호 작가 승인 2018.12.24 10:32 의견 0

점점 심해지는 불평등, 그리고 무감각함

‘운 좋게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은 콩고에서 출생한 이들이 얻는 소득의 93배에 이른다. 지구촌에서 가장 잘사는 1%는 전체 소득의 29%를 가져가며, 총자산의 46%를 차지한다. 그리고 0.0001%의 부호들이 한국의 4년 치 GDP와 맞먹는 5조 4천억 달러의 자산을 소유한다.’

『왜 우리는 불평등해졌는가』 중에서

‘실제로 일반 근로자와 CEO의 월급을 비교하면, 1990년에는 70배였는데, 2005년에는 300배까지 늘었다.’『기계와의 경쟁』 중에서

연봉 3만 파운드 미만의 사람은 연봉 10만 파운드 이상의 사람과 비교해서 기계에게 일자리를 빼앗길 확률이 5배 이상 높다고 한다. 『인공지능과 딥러닝』 중에서

자신이 혜택을 받는 계층이면 좋겠지만, 대부분은 소외 계층에 포함된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서 상위 1%에 속하는 분들이 몇 명이나 있을지 모르겠다. 혹, 그렇지 않다면 나는 1%를 위해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필자가 대학을 다닐 때 『세계화의 덫』이라는 책이 꽤 많이 읽혔다. 필자는 20:80 파레토 법칙을 이 책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필자가 군대에 있는 동안 『90%가 하류로 전락한다.』라는 책이 등장했다. 이제 10:90이었다. 필자는 10% 안에 포함되는 학업 성적을 가졌기 때문에 큰 위기의식을 갖지 않았다. 정말 단순한 사고방식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1:99라는 숫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급기야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에서는 0.1:99.9가 등장한다. 필자는 1:99 즈음에는 철이 들어서 스스로 20% 안에도 들지 못한다는 자각을 하고 있었기에 0.1을 본 순간은 충격적이기보다는 1%든, 0.1%든 크게 관심 두지 않았다. 대부분 사람이 필자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자발적 가난』에서 말하는 실천을 대안으로 삼기에는 인간 자체가 욕망으로 가득한 욕심쟁이들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웰빙-포용의 시대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경제적인 부분일 수도 있고, 여러 자료에 따르면, GDP 2만 5천불 이상이 되면 행복은 부와 상관관계가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의 실정으로 볼 때 이미 2만 5천불 이상이 되었으니, 행복과 부의 상관관계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한국은 상대적 박탈감이 워낙 큰 사회라서 변수가 꽤 있다. 자살율이 현상을 말해준다.

행복에 관련된 추상적인 것일 수도 있다. 여기서 방점을 찍은 것은 ‘대부분’이다. 극소수만 웰빙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누리지 못한 계층에게도 웰빙-포용의 기회가 주어지길 바란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희생자로 남는 사람이 최소화 되는 사회가 우리 사회이기를 소망한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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