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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요들50주년(1)] 우리나라에 요들이 들어오기까지

풀로만목장 조영현 대표 인터뷰① “50년 전 김홍철 씨를 통해 요들 전래”

이연지 기자 승인 2018.12.27 12:12 | 최종 수정 2020.03.18 14:07 의견 0

올해는 우리나라에 요들이보급된 지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난 10월에는 무의도에서 50주년 기념 축제가 열리기도 했는데요... 스위스 민속음악인 요들이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어떻게알려지게 됐을까요 전라남도 장흥에서 요들과 알프혼 보급에 힘쓰고 있는 풀로만목장 조영현 대표를 만나 우리나라 요들의 역사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 스위스 의상을 입고 찍은 사진. 언제나 아내 이은경 씨(오른쪽)와 함께다. 왼쪽이 조영현 대표. ⓒ 조영현 페이스북

¶ 김홍철로 시작된 한국 요들의 역사

▶ 시사N라이프(이하 ‘시사N’): 요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이 언제인가요

☞ 조영현 대표(이하 ‘조’): 우리나라 요들의 시작을 말하려면 가수 김홍철 씨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40대 중반 이상이라면 잘 아실 겁니다. 사실 요들 50주년은 가수 김홍철의 50주년이라고 말해도 과하지 않아요. 김홍철 씨가 방송에서 요들을 부르기 시작한 게 1968년입니다. 그 때를 기준으로 우리나라 요들의 역사가 50주년이 됐다고 하는 것이지요.

▶ 시사N:대표님은 언제부터 요들을 하게 되셨나요

☞ 조: 저는 1970년에 종로 YMCA에서 김홍철 씨가 프로그램을 운영하시면서 한국 에델바이스 요들클럽 지도자로 있었을 때, 요들 강습이 있는지 찾으러 갔다가 김홍철 씨가 요들클럽 집회를 소개해줘서 참석했는데요... 그 날을 계기로 저도 48년째 요들을 즐기고 있습니다.

▶ 시사N:요들의 역사를 함께 걸어오고 계시네요. 요들을 떠올리면 많은 분들이 김홍철 씨의 ‘아름다운 베르네’를 떠올립니다. 그런데 요들이 스위스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요

☞ 조: 맞습니다. 김홍철 씨가 부른 요들도 다 스위스 민속음악은 아니에요. 또 알프스에만 있는 것도 아니지요. ‘아름다운 스위스 아가씨’는 미국 민요인데요. 미국에서 불리는 요들은 웨스턴 요들이라고 불리는데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갔던 오스트리아나 스위스 사람들이 전파했으며 나중에 웨스턴 요들이라는 하나의 장르가 됐습니다. 웨스턴 요들은 요들 중에서도 상업성이 크다고 보고 있죠.

대표적인 웨스턴 요들 가수로는 스위스 사람이면서 웨스턴 요들을 작곡해 부른 피터 한넨이 있어요. 국적이 스위스다보니 사람들은 그가 부른 요들이 다 스위스 민요인 줄 알기도 해요. 피터 한넨은 혀가 제일 빠른 사람으로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빠른 요들을 불렀는데 그의 곡은 세계에도 많이 알려졌고 우리나라에도 많이 퍼졌지요. 김홍철 씨가 스위스에 갔을 때 피터 한넨이 일하는 레스토랑에서 함께 지내면서 그 노래를 듣고 배웠다고 해요. 대부분 요들 하면 피터 한넨의 아주 신나는 곡을 떠올리시는데 사실 스위스 전통 요들은 진지한 곡이 많습니다.

▲ 아내와 함께 알프혼을 연주하고 있는 조영현 대표 ⓒ 조영현 페이스북

우리말로 부른 요들송, 우리의 문화가 되다

▶ 시사N:그렇군요. 당시 70년대에 요들이 대중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가 있을까요

☞ 조: 여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째, 원어가 아닌 한글로 불렀으며 둘째, 우리 정서에 맞게 가사를 새로 썼기 때문이에요. 사실 요들은 1절에서 5절까지 ‘우리 아빠는 알펜젤로 사람인데 씨름도 잘해. 우리 엄마는 어디 사람인데 무엇을 잘해’ 이런 스토리로 이어지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직역을 해서 부르면 아무래도 우리 정서와는 맞지 않을 수 있죠. 그래서 우리는 많은 곡을 편곡하고 작사를 해요.

개사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가사를 그대로 번역하지 않아서입니다. 특히 김홍철 씨가 곡의 느낌을 살려서 원래 가사와 다른 가사를 썼는데 그게 너무 서정적이고 예쁜 거예요. 또 한글, 우리말로 부르니까 더 많이 보급 됐죠. 사람들이 우리말로 작사된 요들을 부르며 행복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김홍철 씨의 공헌이 정말 크다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에도 요들이 전해졌었는데 일본에서는 활성화가 안됐어요. 일본에서는 원어로 부르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외국말이다 보니 발음도 어렵고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또 느낌도 살리기가 어려웠지요. 그러다 보니 널리 퍼지지는 못했어요. 결국 우리나라에서 여러 사람들이 요들을 부르고 즐겼던 것은 가사를 정서에 맞게 바꿔서 우리말로 불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 시사N:요들을 주체적으로 수용해서 우리 문화로 만든 셈이네요... (후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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