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메뉴

[한국요들50주년(3)] 한국 요들의 대부 김홍철

이여진 기자 승인 2018.12.31 09:30 | 최종 수정 2020.03.18 14:06 의견 0

(1) 요들에 대한 열정 - 요들의 본고장 스위스를 찾아

한국 요들의 역사는 김홍철 씨와 그 흐름을 같이 합니다.

1947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홍철 씨는 중학생 때 처음 요들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합니다. 더 배워보고 싶은 욕심에 백방으로 자료를 찾았지만 당시 국내에서 요들은 아주 생소해 이에 대한 정보를 찾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습니다. 국립도서관에 가서 백과사전을 뒤져봐도 나오는 것은 ‘알프스 지방의 목동들이 부르는 노래’라는 설명이 전부였습니다.

그렇게 요들에 대한 호기심을 품고 듣기만 하면서 지내다가 고등학생이던 1965년 영어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스위스의 신문사 6곳에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무작정 보냈습니다. 그의 열정이 전해진 것일까요. 취리히에 있는 '타게스 안자이거(Tages Anzeiger)지 편집장에게서 자주 듣고 따라 해보라는 답장과 함께 요들송이 녹음된 테이프와 악보를 받았습니다. 김홍철 씨는 열심히 녹음테이프를 들으며 연습을 했는데 심지어 1년 뒤에는 이 편집장이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궁금하다며 노래를 녹음해서 보내주면 전문가에게 부탁해 피드백을 해주겠다는 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그가 보낸 녹음테이프는 현지에서 기사화되고 방송국으로 넘어가 라디오에서도 나오게 됐습니다. 노래를 들은 스위스 사람들의 호평이 이어지자 1967년 스위스에서 ‘직접 부르는 것을 듣고 싶다’며 스위스로 초청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습니다. 결국 그는 1968년 4월 신문사와 스위스 관광청의 지원을 받아 스위스에 갔습니다. 스위스에서 머무는 6개월 동안 요들클럽 연습을 참관하고 전문가에게 요들 수업을 받기도 했으며 TV와 라디오에도 수차례 출연했습니다.

▲ 김홍철 요들앨범 쟈켓 사진 ⓒ 출처: lp7080.com

(2) 요들 보급을 위한 활동

김홍철 씨는 스위스에서 유학하는 동안 한국에도 좋은 요들클럽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스위스에서 돌아온 후 합창 악보 등 준비를 시작해 1969년 우리나라 최초의 요들클럽 ‘에델바이스’를 발족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1974년에는 알파인 요들과 스위스 민속음악을 연주하는 아시아 최초의 요들송 그룹 ‘김홍철과 친구들’을 결성하기도 했습니다.

요들클럽 활동과 국내 TV 프로그램 출연, 전국공연, 스위스 식당 운영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김홍철 씨는 93년 딸들의 교육을 위해 가족들과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을 떠났습니다. 이후 그는 근근이 현지 및 국내 방송에 출연하고 요들 공연을 위해 한국에도 수시로 방문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에는 한국 요들 전파를 전파한지 50년이 되는 해를 맞아 인천 무의도에서 ‘김홍철 요들송 50주년 빅 콘서트’를 여는 등 지금도 요들을 기억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시사N라이프> 출처와 url을 동시 표기할 경우에만 재배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