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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 In 호주(3)] 필리핀 바기오시티에서의 짧은 어학연수

칼럼니스트 레이첼 승인 2019.01.24 10:28 의견 0

영어의 기본기라도 다지고 가야 호주에서 내가 다져지지 않을 거란 생각에 워홀을 시작하기 전 필리핀 어학연수 두 달, 호주 두 달 코스를 신청했다.

내 생애 처음으로 해외에 나가는 거라 그런지 공항마저도 신기했다. 시뻘개진 눈을 하고 인증샷을 찍는 것도 잊지 않았다. 픽업장소로 이동하던 중 봤던 긴 총을 들고 서있는 경찰관이 어찌나 무서워 보이던지. 지은 죄도 없으면서 눈치를 심히 봤더랬다.

큰 버스에 짐과 몸을 싣고 내리 잤다. 어학원에 도착해 방 키를 받고 핸드폰 개통 및 환전을 하러 우르르 움직였다. 한국인이 많아서 그런지 단체로 수학여행 온 기분이었다.

내 룸메이트는 조선족 언니였다. 영어를 한 번도 배워본 적은 없지만 한국어와 중국어를 참 잘했다. 원래 그 방에 있던 다른 룸메이트는 일본인이었다. 한, 중, 일이 다 모였다며 우리끼리 글로벌 방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처음 만난 사람들과 인사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You look Japanese” 혹은 “You look Chinese”였다. 화장을 안 해버릇 해서 그런지 나를 자꾸 다른 나라 사람으로 오해했다. (노파심에 말하지만 저 문법은 틀린 것이다. 정확한 표현은 ‘You look like a Japanese.’이다. 실제 회화는 문법이 틀려도 대화가 잘만 된다.)

초반에는 난 한국인이라고 정정해 주곤 했지만 나중에는 그러려니 하면서 “맞아. 나 일본인이야”라고 했다. 그럴 줄 알았다며 자신의 눈썰미에 감탄하는 사람들을 속으로 비웃는 재미가 쏠쏠했기에.

필리핀 생활은 꽤나 규칙적이었다. 오전 8시에 일어나 1:1 혹은 4:1 수업을 듣고 점심 먹고 또 수업을 들었다. 저녁 먹고 단어시험을 보고나면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금요일과 토요일엔 주로 대형마트나 야시장을 구경하며 지냈다.

밖에 한 번 갔다 오면 코딱지가 아주 새까맸다. 연식이 오래 된 차들이 내뿜는 배기가스 때문이다. 돈이 많지 않아서 차를 자주 바꾸지 않는다나. 매번 코 팔 때마다 식겁하곤 했다. 이런 게 고스란히 몸속으로 들어가면 병 생기는 건 시간문제일 듯싶었다. 새삼 코털에 감사했다.

필리핀은 확실히 물가가 싸다. 그래서 망고를 실컷 먹고 오겠다고 다짐 했었는데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했던가. 하필 망고철이 끝날 때 가서 몇 개 못 먹었다. 혹시 망고를 좋아한다면 6~8월은 피하시길.

대신 싸고 맛있는 과자들이 많았다. 잔뜩 사서 쟁여놓고 수업 중 쉬는 시간에 당충전을 해줬다. 나는 이 때 열심히 먹었던 군것질거리들이 지치지 않고 모든 수업을 다 들을 수 있게 한 원동력이라고 확신한다. 케틀콘 치즈맛 팝콘은 그 중에서도 단연 최고였다. 이 과자는 훗날 호주에서 만난 홈스테이 부모님께도 좋은 선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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