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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민_이야기(7)] 2016, 무작정 미국으로

칼럼니스트 봉달 승인 2019.02.02 10:00 의견 0

며칠 전 병원 간다고 조퇴를 해서 밀린 일을 하느라 저녁 7시가 다 되도록 아직도 회사다. 원래 4시반이면 칼퇴근인데 오늘 너무 무리하는 것 같다. 배도 고프고 머리도 멍하고 사무실엔 아무도 없고 일에 집중도 잘 안 되네. 오늘은 이쯤 해서 접어야겠다.

하릴없이 페북 탐라를 보고 있자니 옛날 생각이 난다. 거의 자포자기 심정으로 무작정 미국에 온 게 2006년이다. 그 전에도 96년 대학생이 된 후 LA 삼촌집에 놀러가긴 했었지만 그거야 암 생각없이 몇달 관광이나 한 거니 안 칠란다.

암튼 나이 먹어 남들처럼 준비성 있게 유학이나 주재원으로 온 게 아니고, 인생이 잘 안 풀려 에라 모르겄다 도망치듯 왔다. 사실 그것도 내 의지가 아니라 한국서 다니던 회사 그만 두고 빌빌대고 있으니 큰아버지가 막내 삼촌네나 갔다오라고 비행기 표를 끊어주신 덕분이었다. 그게 아니었음 지금쯤 나는 뭘하고 있었을까. 아마 한국에서 로또가 돼 아너소사이어티의 일원으로 기부를 하면서 매주 단타매매로 20000% 수익도 내고 뭐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암튼 가는 김에 LA 찍고 과 친구가 사는 시카고도 들리겠다고 하니 그렇게 부킹이 됐다.

친구놈은 고시생이었다. 다들 그렇겠지만 항상 공부만 할 순 없고 그렇다고 주머니 사정이 넉넉해 유흥비가 넘치는 것도 아니니 신림동 오락실 같은 데나 출몰하는, 그렇고 그런 많은 고시생들 중 하나였다. 이 인간도 세월만 가고 시험은 붙을 기미를 보이지 않자 징징대며 군대를 갔다. 제대 후 식은 머리 더 식히러 잠시 고모가 사는 시카고에 갔다. 거기서 어학연수를 핑계로 1년 가량 빈둥댔던 것 같다. 고시생 버릇이 어딜 가겠나. 맨날 하던대로 베짱이 놀이나 하고 있으니 꼴뵈기 싫은 고모가 사지 멀쩡한 게 어디 가서 캐시잡이나 하라고 잔소리를 했단다. 그래서 찾아본 게 현지 교포사회 회계사 사무실.

미국에서 회계사 특히 한인 회계사들은 하는 일이 한국과는 조금 다르다. 세무, 법무등기, 각종 민원 및 신고 등 기타 잡무를 대신 해주는 경우가 많다. 이놈도 회계사 사무실서 그런 일로 알바를 시작했다. 고모에게는 룸펜이었으나 사장님이나 손님들에겐 성실하면서 꼼꼼한 업무로 날이 갈수록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몇명 밖에 없는 사무실이지만 정식으로 채용되면서 고모집에서 나와 독립할 수 있었다. 어차피 한국 가봤자 별 뾰족한 수도 없고 고시에 미련도 없는데다가 미국에서 여유있게 사는 삶이 괜찮아 보여서였다.

문제는 방이었다. 정직원이면 뭐하나 급여가 열정페이 수준이라 비싼 렌트를 감당할 수 없었다. 마침 다니던 교회에서 알게 된 횽이 룸메이트를 구한다길래 같이 살기로 했다. 그는 시카고 한국일보 기자였는데 마찬가지로 얼마 되지 않은 월급에 열정이 넘치던 사람이었다.

한국일보 기자는 재밌는 사람이었다. 사람 자체가 위트 있거나 한 건 아니고 하는 짓이 특이해서다. 회사일 빠릿빠릿 잘 하고 열심히 교회 나가고 근검절약이 몸에 밴 사람이었는데, 세상만사가 다 그렇듯 밝음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기 마련이다. 일견 바른생활 그 자체였던 그의 문제는 도박이었다. 본인 말로는 병아리 똥만큼도 안 되는 월급으로 살기 힘들어 부득이하게 재테크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사는 데서 왕복 3시간이나 걸리는 카지노에, 그것도 주말은 교회 가야 하니 안 되고 주중 저녁 취재가 없는 날마다 가는 건 보통 정성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글쓴이: 봉달(필명)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한국에서 상사 근무 후 도미, 시카고에서 신문기자 생활. 물류업체 취업 후 관세사 자격증 따고 현재 캐터필러 기차사업부 Progress Rail의 통관부서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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