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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푸틴_X파일(8)] 반역자 라스푸틴

칼럼니스트 박광작 승인 2019.02.03 09:00 의견 0

모스크바 시장의 발언은 풍선처럼 부풀었고 인간의 모든 상상력을 자극해 더 큰 소문으로 유포되었다. 라스푸틴에 대한 나쁜 소식은 센세이셔널리즘(sensationalism)에 빠진 당시의 신문들이 서로 경쟁하며 한 목소리로 마치 ‘여론전선’을 형성하듯이 보도했다. 그의 정적인 브라디밀 푸리쉬케비치(Wladimir Purischkewitsch) 두마(의회) 의원은 극우 반유태주의자로서 “어떤 어두운 힘이 라스푸틴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러시아제국의 존립이 위협 받고 있다”고 발언하며 라스푸틴을 반역자로 몰아갔다.

황궁에서 점차 발언권을 잃어가고 있었던 황실 친인척들도 라스푸틴을 극도로 증오했다. 그 중 가장 중요인물은 양성애자(兩性愛子)인 펠릭스 유소포프와 니콜라이 2세의 사촌인 드미트리(Dmitri Pawlowitsch Romanow) 대공이었다. 이 두 사람은 결국 암살 계획을 세워 실행한다.

일차 대전이 일어났을 때 황후와 라스푸틴과의 친밀한 관계는 제정 러시아의 존립에 위협적일 만큼 큰 스캔들로 비화되었다. 심지어 라스푸틴이 니콜라이 2세의 황후와 성적 관계를 갖고 농락했다는 유언비어도 퍼졌지만 적폐청산위원회는 그러한 사실이 없다고 확인했다. 황후는 라스푸틴의 조언을 받고 황후의 모국인 독일제국과의 평화협정을 황제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의혹을 샀다.

라스푸틴에게 음탕한 강간범, 색광, 황후를 범한 자, 성스럽게 보이는 악마, 말 도둑 등등 모든 악행을 덮어씌웠다. 정치적으로도 국정농담 주범, 제국의 배신자, 독일간첩 등등 모든 나쁜 죄를 범했다고 왜곡 유포했다. 로마노프 왕조의 모든 적폐와 비리는 결국 라스푸틴의 잘못으로 귀착되었다. 라스푸틴은 속죄양이었던 것이다.

1907년 라스푸틴이 혈우병을 갖고 태어난 러시아 제국의 황태자 알렉세이의 내출혈을 어떻게 치유했는가는 영원한 역사의 수수께끼다.

“라스푸틴의 전설 전체에 있어서 가장 비밀스러운 사건 중 하나가 알렉세이의 치유”다. (역사학자 Robert K. Massie)

기적이 있다면 기적이 발생했다는 것 이상으로 더 설명할 수 없다.

초자연적인 힘이 작용하였는가 또는 우리가 모르는, 혈액응고 효과가 있는 약초가 사용되었던 것은 아닌지, 그것은 영원히 알 수 없다.

차르 니콜라이 2세도 라스푸틴의 신통력을 믿었고 황후인 알렉산드라도 그렇게 믿었다. 황태자가 유전병인 혈우병에서 완쾌해 건강을 회복했다는 사실은 니콜라이 2세에게는 왕통을 이어갈 제국을 살려내었다고 할 만큼 엄청난 경사이었다.

라스푸틴은 황실에 꼭 필요한 인물이 되었고 황제뿐만 아니라 황후 알렉산드라의 확고한 신임을 얻게 되었다. 모친 알렉산드라에게는 라스푸틴이 하늘이 내린 구원자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라스푸틴은 황실의 조언자로 자리를 굳혀가면서 점차 정치적 조언도 하게 되었다.

*글쓴이: 박광작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서울대학교에서 비교체제론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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