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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독일 통일(11)] 두 개 독일 국가 간의 통일 방안.

칼럼니스트 취송 승인 2019.02.18 09:00 | 최종 수정 2019.11.20 13:55 의견 0

물론 이런 상황에서 독일 통일 이야기는 콜이 처음은 아니다. 동독의 신임 각료회의 의장으로 선임된 한스 모드로브가 취임연설에서 두 개 독일 국가 간의 조약공동체(Vertragsgemeinschaft) 통일 방안을 제의하였다. 그리고 그는 12월 4일 슈피겔지(誌)와의 대담에서 독일연합(deutschen Konfoderation)이라는 안도 제시하였다.

모드로브의 통일방안은 통일 방안이라기보다는 정치적으로 흡수되지 않고 서독과 유럽공동체로부터 대규모 경제 지원을 얻어서 동독 내부를 안정시키겠다는 안이었다. 그가 이야기하는 국가연합은 연합 국기기관, 즉 통일 정부가 주권을 보유하지만 동독과 서독이 내부 문제에 서로 간섭하지 않으며, 연방으로 가는 두 독일 국가는 군사적으로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실패하여 소멸된 1950년대 소련 주도하에 나온 독일 중립화 통일 방안과 같은 맥락으로 서독에서는 여야 모두 거부하였다. 고르바초프의 관심도 얻지 못한다.

콜 총리의 연방의회 발언에 대하여 유럽에 대한 위협이라고 반대하면서 두 개 국가 방안을 주장하는 녹색당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환영하였다. 독일정치교육센터(Bundeszentrale fur politische Bildung. bpb)의 자료를 보면 사민당은 콜의 10개 방안에서 자기들이 여러 해 동안 독일 정책에서 표명한 아이디어 중 많은 것을 재발견한 것이라고까지 생각하였다.

그러나 사민당의 지도자 특히 한스-요헨 포겔은 총리의 제안에 유보 없이 동조하는 것을 주저하였다. 그들은 동독 시민이 자기들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뿐만 아니라 자유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민당 지도부에 따르면, 독일 재통일은 아직 의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12월 1일 연방의회에서 10개항 방안에 대한 표결이 있었다. 연립 여당은 이에 찬성하였고, 사민당은 동부 국경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이유를 대면서 기권하였다. 녹색당은 물론 반대하였다.

사민당은 12월 20일 당강령 개정을 채택하는 베를린 당대회에서 통일에 관하여 ‘유럽에서의 독일인, 사민당의 베를린 선언’을 채택하였다. 전체로서의 유럽평화질서 속에서 민족 문제를 극복하며, 양독 국민이 자결권 행사에 의해 통일된다고 해서 이것이 1937년(히틀러에 의한 침략이 있기 전)의 독일 회복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동부 국경 즉, 폴란드 서부 국경은 무조건 인정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통일 방안으로는 1972년의 동서독 기본조약에 바탕을 둔 당얄한 분야의 개별적 합의→ 조약공동체-동서독이 각기 주권을 가지는 국가연합→ 연방 안을 내놓았다. 여기서 연방도 4강국의 최종결정권을 전제로 동서독 주민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여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고 이 헌법 발효에 의해 통일이 실현된다는 것이었다.

서독의 콜 총리를 비롯하여 서독의 정치권이 본격적으로 통일을 거론하고, 앞에서 보았듯이 12월 11일 라이프치히의 30만 시위를 기점으로 12월 11일부터는 구호가 “우리는 하나의 인민이다!”, “독일, 하나의 조국!”(Deutschland, einig Vaterland!)라면서 통일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국제사회 특히 독일 문제의 최종결정권을 가진 미국과 소련이 침묵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글쓴이: 취송(翠松) / 재야학자. 독일사회와 정치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했다.

*본 연재는 인터넷신문 <제3의길>에 기고된 "독일 통일의 경험"을 재구성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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