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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고흐와 이상의 못다한 이야기를 무대 위로 펼치다

윤준식 기자 승인 2014.10.01 19:03 의견 0

[View-人] 고흐와 이상의 못다한 이야기를 무대 위로 펼치다

다재다능한 극작가 고원, "고흐+이상, 나쁜 피"에서 고흐의 연인 '시엔'역까지


고흐와 이상. 살아있을 당시에는 대중적인 인정을 받지 못하다가 뒤늦게 대중들에게 작품이 알려지며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고, 후세에 많은 영향을 끼친 예술가들이다. 하지만 그림과 시라는 장르의 차이, 서로 살았던 시대와 장소가 달랐다는 점에서 두 천재를 한 무대에서 만나게 한다는 설정은 독특하다. 천재화가와 천재시인의 동거를 소재로 한 팩션극 고흐+이상, 나쁜 피의 극작가 고원을 만났다.


 

▲ 극작가의 꿈에서 시작된 연극 "고흐+이상, 나쁜 피". ⓒ 윤준식 기자

어느 날 꿈 속에서 두 사람을 만났어요. 시골길을 달리는 버스를 타고 바람을 맞으며 가고 있는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제 뒤엔 고흐가, 제 앞엔 이상이 앉아있는 거예요.”

고원 작가는 아직도 꿈꾸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꿈에서 깨고 나서 이 두 사람을 한 공간에서 만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연극뿐이라는 생각을 하고 극작에 돌입했죠.”

원래 고원 작가는 영화 쪽의 일을 했던 사람이다. “고흐+이상, 나쁜 피를 쓰기 전 10년 동안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다. 가끔은 연출부 생활도 하고 배우로도 출연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리 열심히 해도 되지 않는 좌절의 시기를 겪으며 고흐와 이상을 만나게 되었다.

고흐와 이상에 대한 자료를 다 찾아봤어요. 저는 고흐의 그림과 이상의 시집에서 전율을 느껴요. 고흐는 1,000점의 회화를 남겼고, 이상도 27세에 세상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문학전집이 나올 정도로 방대한 작품을 남겼어요.”

그럼 고원 작가가 만난 고흐와 이상은 어떤 존재였을까

이상이 세상을 떠났던 27살 때, 저도 이상과 같은 병인 폐결핵을 앓았어요. 이상의 글을 읽을 때는 제가 쓴 글을 읽는 것과 같았어요. 실제로 이상을 모르던 때의 습작 중에는 이상의 작품과 비슷한 것도 많았고요. 그래서 이상을 알아가면서 제 분신이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소름이 끼칠 만큼 자신과 닮았다고 여겼죠.”

죽음을 빼놓고는 이상을 이해할 수 없다. 고원 작가는 이상의 난해한 시들은 허구가 아니라 죽음을 앞둔 이상 자신의 삶을 표현한 것이라 말한다. 친부모가 아닌 백부의 양자로 들어가야했던 이상은 늘 마음 둘 곳 없이 살았고 그 때문에 어둡고 쿨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고 설명한다.

반면 고흐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 타인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있어요. 테오와 주고 받은 편지에도 감동적으로 표현되고 있어요. 성공하지 못한 예술가로서 이상한 행동을 하고 정신분열을 보이기도 했지만, 자기가 더 밑바닥으로 내려가 진정으로 느껴보려는 모습을 보여요. 특히 자기도 가난한데 죽어가는 길거리의 창녀를 집에 데려와 살려보려 했던 것에서는 예수님 같은 면이 있는 것 같았어요.”

▲ 극작가 본인이 고흐의 연인 '시엔'으로 출연했다. 고흐 역의 김도영 배우와 이미지 컷 ⓒ 뉴와인엔터테인먼트 제공

고원 작가는 그런 고흐야말로 자신의 이상적인 남성상이라 표현한다. 극중에 등장하는 고흐의 연인 시엔은 작가의 그런 마음을 투영시킨 존재이기도 하다.

고흐를 알면 알수록 남자로서의 사랑을 느꼈어요. 그래서 시엔을 보며 극 속에서는 내 남자로 마음껏 사랑해볼 수 있겠구나 했죠.”

작가 스스로 초연에 이어 이번 재연에서도 시엔으로 출연한다. ‘시엔은 비천한 출생과 가난 탓으로 거리에서 몸을 파는 창녀였고,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는 아이를 임신한 채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고흐에게 발견되고 고흐 덕에 삶을 이어간 여인이다.

고흐가 사랑한 여자라는 것 외에도 극 중에서 시엔은 관객을 위해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해요. 고흐와 이상, 둘은 한 세기에 한 명 나올까 말까하는 존재들이예요. 일반인에게는 괴리감이 큰 둘을 현실에 안착시키고 현실을 인식시켜주는 존재이죠. 거리의 창녀라는 점에서 어쩌면 그 둘보다 더 불행하면서 더 현실적인 존재지요.”

시엔의 입장에서 보면 예술가는 사치스런 존재인지도 모른다. 예술가는 맨날 놀고 먹기만 하고 돈도 벌지 않는다. 고흐가 탄광에서 죽어가는 아이들, 열사병에 걸려 죽어가는 열네 살 소년을 보며 동정심을 갖거나 들에서 고생하는 농부에게 사랑을 갖는다 하더라도 자신이 그 일을 하지 않는 이상 그 현실을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 현실의 인간인 시엔은 고흐와 이상이 현실을 깨닫게 만드는 존재다.

극 중 시엔을 통해 도미닉이란 아이가 태어나요. 도미닉은 예술작품처럼 추상적인 물건이 아니라 먹고 싸고 젖을 줘야 하는 현실 속의 생명체죠. 날마다 살기위해 애쓰는 생명이 숭고한 예술보다 더 위대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시엔은 도미닉을 통해 현실이 더 위대하다는 것을 고흐와 이상에게 보여주게 되요. 그렇기 때문에 시엔이 떠난 후 고흐와 이상이 더 큰 예술로 자신들을 승화시킬 수 있게 되지요.”

특히 이번 공연은 초연보다 극적인 재미가 더 가미되었다. 그러다보니 고흐와 이상의 주변인물들을 통해 희노애락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회를 거듭하며 더욱 많은 관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연극 고흐+이상, 나쁜 피과연 고흐와 이상같은 천재 예술가의 몸에 흐르는 것이 나쁜 피일까 아니면 그런 천재를 이해하지 못하는 평범한 인생들이 나쁜 피일까 작가는 이 점에 대해서는 명확히 말하지 않는다.

이 작품을 통해 고흐와 이상의 못다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제 소명인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작품이 기가 세요. 매번 고흐와 이상에 부딪히며 제가 강해지는 것 같아요. 언젠가는 저의 기가 고흐, 이상의 기와 맞물려 완벽한 작품이 될 거예요.”

어쩌면 나쁜 피의 의미를 찾는 과정 속에 배우와 관객 모두가 요절한 천재들의 못다한 이야기를 찾아내게 될런지도 모른다. 이번 공연은 서울 종로5가 가나의 집 열림홀에서 1012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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