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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 In 호주(6)]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

칼럼니스트 레이첼 승인 2019.02.21 13:50 의견 0

과음 후유증을 지독히 겪으면서 술을 함께 마시던 친구들과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대신 룸메이트와 같은 층 사람들과 더 친해졌다. 함께 서핑도 하고 맛있는 음식들도 먹으며 추억을 함께 나눴다. 너무 행복하게 지내서 그런지 시간이 무척이나 빨리 갔다. 외국인 친구들도 보내고 휴가내고 잠깐 어학연수 왔던 왕언니도 보내고 순식간에 내 차례가 왔다. 무척이나 고대하던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드디어 가는데 전혀 기쁘지가 않았다.

퇴소일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무거워졌고 이유 없이, 아니 너무 명확한 이유로 문득문득 눈물이 고이기 일쑤였다. 정든 선생님들과 친구들과의 마지막을 몇 번이고 상상해서였다. 나에겐 예정된 슬픔이나 불행을 미리 상상하며 그 일이 닥치기 전부터 아파하는 병이 있다. 한마디로 청승을 거하게도 떤다. 그 병은 툭하면 도진다. 지금처럼.

어차피 떠나는 거 룸메이트 동생들과 조금이라도 더 오래 붙어있고 싶었다. 밤마다 영화를 같이 보고 툭하면 수다 삼매경이었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애절한 마음으로 울컥하기를 여러 번. 떠나기 이틀 전에 결국 눈물샘이 터졌다.

첫 날 너희가 왔을 때 몰래카메라 한답시고 짐도 못 풀고 쪼그려 앉아 눈치 보는데 편히 쉬라는 말 한마디 못하고 잠만 잔거 너무 미안했다고. 이렇게 두고두고 속상할 정도로 너희가 좋다고. 너희같이 좋은 동생들을 또 어디서 만나냐며 호주에서도 너무 보고 싶을 거라고 흐르는 눈물도 닦지 않은 채로 말을 쏟아냈다. 어쩌면 다시 못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없던 용기도 솟게 했고 솔직한 마음을 전하게 했다.

그렇게 좋고 애틋하면 나중에 한국 와서 만나면 되잖아 하겠지만 어디 그게 말처럼 쉽나.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내 마음이 나중에는 식을 거라는 것을. 이 아이들을 만나기 전에도 잘 살아 왔듯 이후에도 어느새 잊고 잘 살아가리라는 것을.

관계는 식물과도 같아서 꾸준히 물도 주고 사랑도 주며 신경을 써야 이어질 수 있다. 각자의 삶에 치이다 보면 소원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몇 년 만에 만나도 어제 본 것 같은 친구들이 되기 위해서는 함께 지낸 시간들이 많이 필요하다. 이 친구들과의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기 때문에 금방 아무렇지 않게 잊고 지낼 것이란 생각이 막연하게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생각이 지금의 감정에 집중하게 했다. 이 순간, 이 시간이 더 값지게 느껴졌다. 찰나일지라도 내 사랑에는 거짓이 없었기에 온 마음을 다해 표현하고 싶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에도 모두가 치열하게 사는 것처럼 다시는 없을 이 순간과 감정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랬기 때문에 미련이 남지 않아 더 잘 지내고 있다는 거. 사람들과 이별할 때마다 아파하고 후회했던 날들로 인해 생기게 된 나만의 방어기재랄까.

그렇게 서로 끌어안고 눈물을 한바탕 쏟고 나자 멋쩍은 정적이 찾아왔다.
“우리 미리 울었으니까 당일엔 울지 마요.”

내가 바라는 바다. 당일에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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