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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너의 앞의 생 - 연극 '자기 앞의 생'

박앵무 기자 승인 2019.02.22 10:00 의견 0

▲ 연극 '자기 앞의 생' ⓒ 박앵무 기자

연극 ‘자기 앞의 생’을 시작으로 2019년 국립극단 시리즈의 막이 올랐다.

연극 ‘자기 앞의 생’의 원작자 로맹 가리는 소설 ‘하늘의 뿌리’와 ‘자기 앞의 생’으로 공쿠르상을 2번 수상한 이색 경력을 가진 작가다.

원래 공쿠르상은 한 작가가 중복 수상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후일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자기 앞의 생’을 발표했는데 이 작품으로 또 한 번의 공쿠르 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자기 앞의 생’ 출간 후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와 비교되며 ‘자기 앞의 생’ 이외에 의미있는 작품을 내놓지 못하는 소설가로 취급되기도 했다. 그러나 죽기 전 자신이 에밀 아자르였음을 밝히며, 결론적으로는 공쿠르상 중복 수상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 것이다.

‘자기 앞의 생’은 파리 슬럼가의 허름한 아파트에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키우는 로자와 그녀에게 맡겨진 열 살 소년 모모의 이야기다.

인생만큼 쉽지 않지만 호기심 많은 모모의 눈에 비친 세상은 매일매일 새롭지만 로자는 그런 모모가 걱정이 된다. 로자 아줌마와의 소소한 대화가 모모를 지탱해준다. 그러던 어느 날, 로자 아줌마의 비밀이 밝혀지며 모모의 아버지라는 남자가 불쑥 찾아온다.

필자는 원작을 모른 채 이번 연극을 계기로 ‘자기 앞의 생’이란 작품을 접하게 되었다. 시작과 함께 정면으로 선반으로 이뤄진 전체적으로 아담한 느낌의 무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선반 위 소품들 하나하나가 이질감 없이 어우러지며 프랑스 부엌 한 켠을 가져다 놓은 것 같았다. 첫 장면은 어린 아이와 푸근한 느낌을 주는 할머니의 등장이었다.

로자는 인종과 종교에 상관없이 수많은 아이들을 돌봤고, 아이들의 부모가 원하는 대로 아이를 키워낸다. 모모를 두고 간 부모는 세 살이 된 모모를 이슬람교도로 키우기를 부탁했다.

동급생들보다 체격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모모는 학교에서 쫓겨나고, 로자와 단둘의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다. 로자는 모모가 밖에 나가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두려워하고, 모모가 자신의 곁을 떠날까 두려워한다. 로자는 모모가 창녀와 어울리거나 포주가 될까 내내 걱정한다. “궁둥이를 내려서는 안 돼!” 라는 말을 반복하며 끝내 포주가 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극이 흐르는 가운데 로자가 유대인이라는 것과 스무 살 때 삼십 분만에 싼 가방을 들고 독일군에게 끌려갔다 온 적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두 사람은 인종, 종교, 세대 등 모든 사회적 기준에서 다르고 같이 살아가지만 서로가 속해 있는 시간이 다르다. 열 살의 모모가 로자의 시간을 따라 갈 수 없다. 어느 날 로자가 쓰러지게 되고, 그 결과 두 사람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음을 알게 된다. 그런 와중에 모모의 아버지가 집을 찾아와 이슬람교도로 성장했을 자신의 아들을 찾는다. 로자는 모모를 유대인으로 키웠다고 거짓말하고, 모모는 로자의 거짓말에 장단을 맞춘다. 모모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임에도 유대인으로 자랐다는 아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후, 두 사람은 자기들만의 세계 속에서 산다. 그들은 더 이상 7층 계단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다.

7층 계단은 로자에게 물리적으로 어려움을 주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심리적인 높이기도 하다. 더 이상 독일군이나 사회복지사가 초인종을 누르지도 않는다. 모모는 “노인들은 추억 속에 갇혀 산다”고 하면서 로자의 남은 추억에서 함께 사는 것을 택한다. 로자가 죽을 때까지 두 사람은 한 공간에서 서로를 의지하고 사랑하며 남은 시간을 보낸다.

두 사람의 모습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잣대와 사랑이라는 단어의 원초적인 의미에 대하여 생각하게 만든다. 자신의 아들임이 확실하지만 유대인으로 자랐기 때문에 아들을 거부하는 모모의 아버지와 모든 사람을 차별없이 키워낸 로자는 상대적이다. 로자는 모모에게 있어 모든 것을 품어주는 세계가 된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인종, 종교 등의 타이틀은 모모의 앞에 붙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결국 그 모든 단어는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에게 있어서, 또 죽어가는 한 사람의 앞에서 중요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암’ 아니면 ‘치매’로 죽음을 맞이하는 가운데 이 작품은 ‘죽을 권리를 주지 않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모모의 대사처럼 행복은 ‘추억 속에 갇힌 노인’에게도 필요하지만, 추억에 갇히기 전까지 누구와 사랑하며 어떤 추억을 만들 지도 생각하게 만든다.

이 극이 주는 감동은 제목 그대로 ‘자기 앞의 생’이다. 공연을 보고 나온 사람들이 ‘나의 오늘’에 ‘내 앞의 생’이 좋아하는 일, 보고싶은 사람, 사랑하는 이를 채워 넣었으면 한다. 언젠가 나의 생이 쌓여 추억 나를 가둔다면, 어떤 추억 속에서 살게 될 지 생각해 보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 때가 언제라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고, 아무도 모를 텐데, 나는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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