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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OB vs YB (1)] '부민옥' 그리고 '녁'

칼럼니스트 조현석 승인 2019.03.05 14:53 의견 0

을지로는 조선에서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조선시대에는 구리개라고 불리며 각종 관청들이 자리했고 일제 강점기 때 '고가네마치(黃金町; 황금정)'으로 명명되어 금융 수탈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아픈 역사가 있다. 그러나 해방 이후에는 을지문덕 장군의 성 ‘을지’를 따 지금의 을지로로 개명되었다.

현대에 이르러 여러 대기업의 본사 사옥과 방산시장, 조명거리의 소상공인 등이 밀집한 장소가 되었다.이를 굳이 구분해 보자면 한국에서 가장 커다란 다양성을 가진지역이라 할 수 있다.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다양한 음식점들이 생기고 사라진 곳이기도 하다. 최근 인쇄골목의 낡고 어두운 상가를 각자의 감성으로 재해석한 레스토랑&바는 을지로의 새로운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앞으로 본 연재에서는 역사와 감성이 공존하는 을지로에서 흔히 우리가 노포라고 부르는 반세기의 역사와 야화들이 남아있는 오래된 맛집과 최근의 힙한 맛집 한 군데씩을 함께 소개할 예정이다

¶ 을지로 OB - 부민옥

1955년에 연 부민옥은 을지로의 노포집하면 빠지지 않는 곳 중 하나이다. 점심에는 대파향 가득한 육개장으로 을지로 직장인들의 속을 풀어주는 곳으로, 저녁에는 꼬들꼬들한 양무침에 소주 한 잔 곁들이며 삶의 애환을 나누는 곳으로 60년이 넘는 시간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부민옥 육개장은 투박하지만 따뜻하다. 일명 ‘스뎅 그릇’에 손으로 찢은 양지살이 푸짐하게 올라가고 대파도 큼직큼직하게 썰려있다. 음식이 나오면 일단 대파 특유의 알싸한 향이 식욕을 자극한다.

국물은 자극적으로 새빨간 국물 색과 다르게 담백하면서 시원하다. 거기에 파의 달착지근한 맛이 입가에 맴돌면서 한 술, 두 술 계속 뜨게 하는 은근한 매력이 있다. 길게 찢어진 양지살은 질기지 않고 적당히 쫄깃쫄깃해 식감에 재미를 더한다. 이러한 매력 때문일까 점심시간에 부민옥에 가면 육개장에 반주를 곁들이는 직장인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 부민옥 육개장은 투박하지만 따뜻하다 ⓒ 칼럼니스트 조현석

또 다른 대표 메뉴인 양무침은 일점일잔(一點一盞)을 하게 만드는 훌륭한 안주로 애주가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접시 한가득 푸짐하게 담겨져 나오는 양무침은 꼬들꼬들하면서 질기지 않은 식감이 꽤나 중독성 있다. 내장 요리 특성상 처리를 잘못하면 비리거나 냄새가 날 수 있는데 그러한 것이 전혀 없이 내장이 주는 담백함을 최대한 살려냈다. 양파와 고추, 마늘과 함께 무쳐 느끼한 맛은 최대한 줄였다.

▲ 꼬들꼬들한 식감의 양무침은 일점일잔을 하게 만드는 훌륭한 안주이다 ⓒ 칼럼니스트 조현석

부민옥이 한 번 이전한 탓에 지금의 가게에서 예전의 모습들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60년 세월은 대표 메뉴인 육개장과 양무침에서 느낄 수 있다. 왁자지껄하고 소란스러운 식당에서 아저씨들이 소주 한 잔 걸치면서 넋두리하는, 아재감성 가득한 곳이다.

¶ 을지로 YB - 녁(NYUG)

을지로 3가 타일거리를 걷다보면 연보라빛 그라데이션으로 한껏 멋을 낸 정사각형 간판이 보인다. 이탈리안 레스토랑 녁이 자리한 곳이다. 사실 간판을 보고 찾기는 어렵다. 최근 생긴 을지로의 가게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간판의 가시성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녁 역시 위치를 미리 알아보고 찾아가도 근처에서 헤매기 십상이다.

녁은 을지로의 힙한 감성이 잘 나타나는 레스토랑 중 하나이다. 일반 레스토랑과는 다른 인테리어가 눈길을 끈다. 최근 트렌드인 뉴트로(Newtro) 감성에 따라 마치 90년대의 사무실, 혹은 당시에 유행하던 커피숍을 연상케 하는 소품들이 세련된 멋을 풍긴다.

▲ 뉴트로 감성 가득한 녁 ⓒ 조현석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는 갈버치보 리조또이다. 갈비, 버섯, 치즈, 보리밥 리조또의 줄임말로 갈비찜 국물에 비벼먹는 밥맛을 재해석한 메뉴이다. 비주얼만 보면 큼직한 갈빗대가 밥 위에 올라가있는, 영락없는 갈비찜 밥이다. 위에 올라가있는 갈비는 시각적으로도 만족감을 주지만 맛 역시 훌륭하다. 단짠단짠 갈비찜에 버섯과 치즈의 향이 맛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리조또에 들어간 보리는 특유의 탱글탱글한 식감으로 씹는 재미를 더한다.

▲ 갈비찜 밥을 연상케하는 갈버치보 리조또 ⓒ 칼럼니스트 조현석

토핑이 잔뜩 올라간 피자도 먹어볼 만하다. 가게 이름을 딴 녁 피자는 빨간 토마토소스와 프로슈토 햄, 그리고 초록색 루꼴라가 색감 대비를 이루며 입맛을 돋운다. 화덕에서 잘 구워낸 피자 도우는 쫄깃하면서 바삭하다. 여기에 와인을 곁들이면 굳이 피자를 이탈리아에서 먹어야 되나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다.

▲ 토마토 소스 베이스에 프로슈토 햄과 루꼴라가 올라간 녁 피자 ⓒ 칼럼니스트 조현석

녁은 칵테일과 커피는 물론 와인메뉴도 충실하게 갖추고 있다. 감성에만 치중해서 레스토랑 본연의 기능인 ‘맛’을 등한시한 몇몇 식당과는 다르다. 그래서인지 주말 저녁에는 소개팅으로 보이는 테이블도 꽤 많다. 감성과 맛을 동시에 잡은 을지로 힙의 대표 주자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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