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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 In 호주(8)] 브리즈번의 겨울은 파랗다

칼럼니스트 레이첼 승인 2019.03.07 11:38 의견 0

드디어 호주에 왔다.

일단 첫 달엔 홈스테이 생활을 하기로 했다. 픽업해주는 분께 한화로 5만원을 미리 드렸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너무 비싼 가격이었다. 택시보다 싸고 기사님들이 자차를 이용해 픽업해 주는 'UBER'를 이용하는 것이 낫다.

게다가 홈스테이 첫 날에 한달 치 금액을 드려야 하는데 그걸 몰랐던 나는 급하게 돈을 인출하였다. 픽업 기사님이 말씀해주시지 않았더라면 굉장히 난처할 뻔했다. 당시 나는 유학원에 모든 것을 맡기고 개인적으로는 전혀 알아보지 않아 전혀 몰랐었다. 할머니의 말을 빌리자면 '게을러 터진 년'이었다.

부랴부랴 돈을 인출하고 다시 차가 달리니 시작하니 그제서야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필리핀과는 확연히 다르다. 필리핀이 복작복작 했다면 호주는 굉장히 여유롭달까. 하늘은 파랗고 건물은 낮았다. 정면을 보니 파란 하늘이 한 눈에 들어왔다. 구름도 많지 않아 더욱 푸르게 보였다.

집에 도착해 홈스테이 어머니와 인사를 나누었다. 이름은 엘사였다. 짧은 영어로 겨울왕국에 나온 공주 이름과 똑같네 하니까 웃으셨다. 이런 얘기를 좀 들어 보셨을 것 같긴 하다. 이 집에서는 보더콜리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는데 이름이 크리스티인 걸 보니 보나마나 암컷인 것 같아 더 묻지 않았다.

엘사는 내가 다음 날 어학원에 혼자 갈 수 있도록 함께 시티로 나서주었다. 몇 번 버스를 타야하는지, 내려서는 어느 쪽으로 나가야하는지 친절하게 알려주고 학원 건물에도 데려다주셨다. 처음 만난 기념이라며 젤라또 아이스크림도 사주셨다. 그녀가 하는 말을 완전히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짧게나마 대화를 이어 나갔다.

처음 집으로 갈 때는 그리 큰 건물들이 많지 않아 하늘과 드넓은 땅이 한눈에 보였는데 브리즈번 시티에는 나름 높은 건물도 많고 가게들도 밀집되어 있다. 무엇보다 다양한 문화권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중국인과 한국인이 많았다. 아무래도 같은 아시아권이다 보니 눈에 더 띄여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 알게 된 사실, 호주는 지금 겨울이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너무 놀라 'Really' 만 연신 외쳤다. 내 주변 모든 사람들이 다 반팔과 반바지 심지어 민소매 셔츠까지 완전 한여름의 차림새였기 때문이다. 햇빛을 받으면 따뜻하다 못해 뜨겁고 그늘로 들어가면 선선한 이 날씨가 겨울이라니. 한국과 이렇게 다르구나.

저녁에는 엘사의 남편 로버트와 인사를 나눴다.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이 둘은 자녀를 다 키운 후 재혼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로 존중하고 집안일도 도와가는 모습들이 참 보기 좋았다.

첫날에는 선물을 드리는게 홈스테이 문화라길래 필리핀에서 가져온 말린 망고와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치즈 맛 케틀콘 팝콘을 드렸다. 내가 먹을 걸 준다는 것은 내 전부를 주는 것과 같다고 있는 생색 없는 생색 다 내고 싶었지만 내 영어능력이 재치 있게 말을 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This is for you’라는 교과서 적인 문장만을 구사할 수밖에 없었다. 좀 답답했지만 한 달 후에는 이들과 좀 더 깊은 대화를 하고 장난도 칠 수 있게 되길 바랐다.

다음 날엔 어학원에 가야 하니 일찍 내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필리핀에서 만난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호주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알리고 잠을 청했다. 겨울은 겨울인지 밤이 되니 조금 추워졌다. 한국에서 가져온 작은 전기방석을 키고는 몸을 방석 안에 넣기 위해 최대한 웅크렸다.

따뜻하다. 엘사의 친절도 로버트의 배려도 지금 나에게 허락된 이 시간들도. 어느 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음에 감사했다. 앞으로 내 호주 생활도 이 곳의 파란 하늘처럼 밝고 예뻤으면. 걱정 반 기대 반으로 호주의 첫날밤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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