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메뉴

[이동진 작가의 3.1혁명(2)] 일본의 무단정치와 조선인 차별

이동진 작가 승인 2019.03.13 11:27 | 최종 수정 2019.07.04 01:44 의견 0

¶ 독립전쟁을 위해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다

신민회는 우리 백성들의 실력양성을 위해 강연회를 개최하고 학교를 세우는 것뿐 아니라 독립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독립군 기지를 건설하는 것까지 고려합니다.

독립군 양성을 위해 일부 신민회 회원들이 서간도로 옮겨갔습니다. 신민회 인사들이 간도로 넘어가 신흥무관학교를 세우는 데까지 수많은 난관과 고생이 수반되었습니다. 신민회 인사들의 노고는 후일 임시정부의 항일전쟁활동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그 중 이회영은 독립군 양성을 위해 오늘날로 따지면 600억 원에 달하는 전 재산을 헌납해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합니다. 신흥무관학교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1920년대의 독립전쟁과 연계되기 때문입니다.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독립군을 형성하며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내는데 주요한 역할을 합니다. 물론 이런 독립전쟁은 일부분의 승리일 뿐, 실제 독립으로 연결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민족의 사기를 북돋아 임시정부가 독립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는데 불씨가 되지요.

▲ 1940년 9월 광복군 사령부 앞에서 사진찍은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 ⓒ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 105인 사건 1911년 신민회 해산

이렇게 활발한 활동을 했던 신민회가 해산된 건 바로 ‘105인 사건’입니다. ‘105인 사건’은 1911년, 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해서 일본이 조작한 사건입니다.

안중근의 사촌인 안명근이 북간도로 망명해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일본군에게 적발됩니다. 안명근은 신민회 회원이 아니었지만 일본은 안명근 사건을 확대해 신민회 간부들과 연결된 것으로 사건을 날조합니다.

이에 신민회 주요 간부들이 투옥됩니다. 백범 김구도 연루되어 투옥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운동가들은 해외로 떠나게 됩니다. 상해, 만주, 미주 지역 등으로 분산되죠. 한편, 국내에 이렇다 할 구심점이 없어지면서 국내 항일운동은 약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무단통치는 우리 민족 스스로 독립의지를 다지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 105인사건 공판기록 ⓒ 숭실대학교 박물관 홈페이지


¶ 무단통치가 불러온 조선인 차별과 탄압이 독립정신으로 승화

1910년 한일합방 직후, 일본은 강압적으로 조선을 다스립니다. 이를 무단통치라 칭합니다. 무단통치 시기에는 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심했습니다.

예를 들면, 태형(笞刑)의 부활입니다. 조선인들이 죄를 지으면 일본 순사들이 몽둥이를 들고 다니면서 때리곤 했습니다. 그러나 태형은 조선인에게만 차별적용되었습니다.

임금 차별도 심각했습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일본인의 임금이 100만원이라면 조선인에게는 60만원만 지급하는 식이었습니다. 오늘날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과 유사하다고 보면 될까요

일본 정부에서 토지조사 사업을 실시하면서 자신의토지조차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자신의 토지인데도 신고방법을 몰라 신고하지 못해 토지를 잃어버리게 되지요.

▲ 일본이 실시한 토지조사사업을 기록한 토지조사부 ⓒ 국가기록원


¶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한 독립운동

이런 것들이 하나씩 모여 독립의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니 의아하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3.1운동이 일어난 이유가 투철한 민족정신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나라를 잃었기 때문에 독립을 해야 한다는 마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제가 우리에게 주는 정치적, 경제적 탄압과 차별을 통해 쌓인 억울한 마음도 3.1운동이 발생한 원동력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죠.

3.1운동 직전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민족대표 33인 중에 기독교와 천도교계 인사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종교계 인사들은 투철한 민족정신만으로 활동하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종교 탄압이 심했고 계속해서 억압을 받았기 때문에 이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독립운동을 시작한 이유도 있을 겁니다.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다음 회에서는 독립운동의 결정적 계기가 된 ‘민족자결주의’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글쓴이: 이동진 / 시민들과 함께하는 역사작가]

<저작권자 ⓒ시사N라이프> 출처와 url을 동시 표기할 경우에만 재배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