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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서브컬쳐에서 대중문화로 ? “젠더 플루이드 트렌드”

[무의식과 트렌드] ‘젠더 플루이드’ ⑤

이여진 기자 승인 2019.03.17 13:57 | 최종 수정 2019.07.04 03:17 의견 0

여성의 남장과 남성의 여장은 동일한 행위이지만 사람들은 다르게 인식합니다. 이는 대중문화 속에서 명확히 드러납니다. <커피프린스 1호점>, <구르미 그린 달빛> 등 남장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여러 드라마 히트작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남장한 여성의 모습에서 남장을 보이시한 매력을 느끼고 열광하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죠.

 

▲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 KBS방송 캡쳐

 

그렇다면 여장한 남성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우스꽝스럽다고 치부합니다. 심지어 변태나 하는 짓으로 여기며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생각 때문인지 남성의 화장이나 여성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을 입는 것은 희화화되어 개그의 소재로도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 개그콘서트 “표범, 티라미수 그리고 방울토마토” 중 ⓒ KBS방송 캡쳐

 

그렇기에 KBS <도올아인 오방간다>에 등장하는 ‘오방신’ 이희문의 존재는 파격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풍성한 은발에 진한 화장을 하고, 반짝이는 하이힐을 신고 요염한 자태로 우리 소리를 하는 그의 모습은 이질적이지만 시청자를 무대로 몰입시키는 매력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상파 공영방송에서 이런 비주류 문화를 무대에 올렸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 <도올아인 오방간다> 오방신 퍼포먼스 ⓒ KBS 방송 캡쳐

 

사실 대중들은 비주류문화-서브컬쳐를 통해 남성성 속 여성성을 많이 접해왔습니다. 남성이 매혹적인 여장을 하고 무대에 등장하는 모습을 ‘드래그퀸’이라 부르는데요... 상대의 성별의 옷을 입는다는 뜻의 ‘drag’와 여성을 상징하는 ‘queen’의 합성어입니다. ‘드래그퀸’은 리처드 오브라이언이 연출한 영국 뮤지컬 <록키 호러 쇼>를 통해서 대중문화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작품은 1975년에는 <록키 호러 픽쳐 쇼>라는 제목의 영화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팀 커리가 연기한 ‘프랭크 N 피터 박사’는 망사 스타킹과 가터벨트를 입고 진한 화장을 한 채 등장해 자신을 양성애자 외계인이라 칭하며 극중 등장인물들은 물론 관객들까지 유혹합니다. 당시엔 받아들여질 수 없는 기괴한 내용이다 보니 흥행에는 참패했으나 대표적인 컬트영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80년대 후반 비디오 시장 형성이후 컬트영화 팬들을 비롯한 다양한 성향의 소수자들에게 각광받으며 대중문화 속에 전무후무한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 양성애자 외계인으로 등장하는 프랭크 N 피터 박사 ⓒ 영화 <록키호러픽쳐쇼> 스틸 중

 

이후 ‘드래그퀸’이라는 문화코드는 대중문화의 한 구석에서 끊임없는 생명력을 발휘합니다. 보다 폭넓은 대중을 상대하는 영화나 드라마의 영역보다는 무대라는 협소한 공간을 배경으로 군중들과 직접적인 소통하며 역동적인 문화경험을 제공하는 공연 분야에서 두드러집니다.

 

뮤지컬 <킹키부츠>는 주인공 찰리가 아버지의 신발 공장을 살리기 위해 드래그퀸을 위한 부츠를 만든다는 내용입니다. 극중 눈여겨볼만한 인물은 드래그퀸 출신의 디자이너 롤라입니다. 롤라는 부츠를 만들기 위해 찰리가 영입한 디자이너로 드래그퀸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사람들의 조롱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합니다.

 

2005년 한국 초연 당시부터 조승우가 주연을 맡으며 유명세를 이어가고 있는 뮤지컬 <헤드윅>의 오프닝 장면도 드래그 클럽입니다. 풍성한 속눈썹에 파랗게 반짝이는 아이섀도로 눈을 강조한 화장, 금발 가발을 쓴 헤드윅으로 분장한 조승우가 등장하죠. 연인과 가족에게 버림받고 변두리 바에서 공연하며 힘들게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남성이나 여성이 아닌 ‘나 자신’의 진정한 반쪽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입니다.

 

▲ 헤드윅 공연 중 '조승우'의 모습 ⓒ 출처: CJ E&M

 

이 두 작품의 공통점은 ‘정체성’입니다. 드래그퀸의 모습이 자신의 본모습이거나 본모습을 찾아가기 위한 과정인 것이죠. 그렇다면 이런 문화코드는 픽션 속에만 존재할까요

 

최근 패션계에서는 젠더 플루이드(gender fluid)라는 트렌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유동적(fluid; 플루이드)이라는 의미가 담긴 이 트렌드는 남성이 여성복을 입는 등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스타일을 말합니다.

 

이를 증명하듯 치마를 입은 남자들의 모습도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2월 배우 빌리 포터가 오스카 시상식에 드레스를 입고 나타나 화제가 되었습니다.

상의로 입은 프릴 셔츠에 보타이와 턱시도 재킷만 보면 남성복이지만, 그 밑으로 보이는 벨벳 재질의 풍성한 검정 드레스는 여성복의 우아한 느낌을 줍니다. 포터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성성과 여성성, 그 사이의 모습을 드러내고자 했다”고 밝혔습니다.

 

▲ 드레스를 입고 오스카 시상식에 나타난 빌리포터 ⓒ 영국 Daily Mail 캡쳐

 

같은 2월 뉴욕 패션위크에서도 젠더 플루이드가 두드러졌습니다. 여성복 디자이너 유나 양의 패션쇼 런웨이에 트렌치코트에 하이힐을 신은 남성 모델이 등장했습니다. 트렌치코트에 여성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레이스가 사용되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또 독특한 패션으로 주목받아 온 듀오 디자이너 브랜드 ‘에카우스 라타’ 역시 성별에 대한 틀을 깨는 시도를 했습니다. 남성용 재킷의 소매 부분을 봉긋 솟아오르게 한 재킷과 어깨선을 강조한 여성용 블레이저 재킷을 선보였습니다.

 

이런 대중문화 속 변화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남성성 속 여성성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듯합니다. 남성이 여성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으면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 말이죠. 하지만 트렌드의 변화 속도를 보면 언젠가 여성성 속 남성성처럼 또 하나의 주류 문화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이 올 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의식과 트렌드] ‘젠더 플루이드’ 시리즈

① 또라이가 오방가는 시대 - 새로운 문화아이콘 ‘오방신 이희문’

② 무의식에서 행동으로 표출된 ‘남성 속 여성성’

③ 박수: 무의식의 매개자

④ 드래그퀸의 드래그퀸에 의한 드래그퀸을 위한 쇼 -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

⑤ 서브컬쳐에서 대중문화로 “젠더 플루이드 트렌드”

⑥ 외모를 관리하는 남성들 - “그루밍족 시장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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