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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푸틴_X파일(22)] 한국 정치에 실망한 로스트로포비치

칼럼니스트 박광작 승인 2019.03.24 09:30 의견 0

폭력만으로는 정통성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그래서 스탈린은 차르 정권의 ‘적폐’에 대한 새로운 의식화 교육의 차원에서 문화전선을 강화했다.

문화전선의 세뇌 교육은 러시아 제국의 멸망 후 10년이 지난 해인 1927년부터 더욱 강화되었는데, 이 세뇌 교육의 일환으로 <과거>라는 잡지에 차르 제정러시아 정권의 적폐와 타락을 과장, 조작하는 연재물을 게재하기 시작했다. 이 연재물은 알렉산드라 황후의 최측근 인물인 ‘안나 븨루보봐 궁전(의전)부인의 일기장’이었다. 이 일기장을 조작해 황실 내부의 부패를 마치 양심 고백이나 하듯이 계속해 연재하는 것이다.

이 잡지는 흥행꺼리가 없었던 당시 러시아의 척박한 언론 출판 현실에서 모든 소련 인민들이 즐겨 읽었던 기사였다.

알쏭달쏭한 성적 관계와 미친 ‘섹스 머신’, ‘악마의 승려’가 등장하는 일기장을 조작해 황비와 라스푸틴의 스캔들을 만들어 내었던 인물은 임시정부에서 적폐청산위원회의 기록 책임자였던 P.쇼고레프와 소설가 알렉세이 톨스토이 백작(<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를 쓴 레프 톨스토이와 다른 인물)이었다.

이 두 사람은 볼셰비키와 함께 일을 만들었던 대표적 선전-선동 부역자였다. 두 사람은 1927년 이전에 이미 알렉산드라를 반역자로 만들었던 연극 <황후의 음모>의 대본을 썼다. 이 연극은 라스푸틴이 황실에서 국가전복을 실행하여 독일공주 출신의 황후 알렉산드라를 러시아 제국의 통치자로 만들고자 시도했다는 내용의 선전 선동극이었다.

이 연극은 흥행에 굶주린 소비에트 인민들에게 엄청난 인기가 있었고 연극이 끝날 무렵이 되면, 선전과 소문에 약하고 새 권력자에게 굴종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천민들은 큰 박수갈채를 보냈다. 이 조작된 흥행 선전용 연극은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동시에 가장 큰 6개의 극장에서 절찬리에 공연되었다.

이러한 반복적 세뇌 과정을 통해 알렉산드라 황후와 라스푸틴의 이미지는 완전히 ‘조국의 배신자 독일 여자’ 그리고 ‘악마의 승려’로 고착화되었던 것이다. 출판물, 연극, 영화는 오래 전부터 좌익의 문화 공작 및 세뇌를 위한 선전-선동의 수단이었다. 지금은 여기에다 TV, 소셜 미디어가 선전-선동 및 조작의 수단으로 등장했다.

1917년 10월 혁명 후 공산체제에서는 획일화된 조작된 출판물, 영화, 연극이 가장 중요한 선전 매체였다. 무엇이 진실인가는 볼셰비키의 ‘진리’ 개념과 무관한 관념적 개념으로 격하되었다. 라스푸틴의 진실은 소련 공산체제의 붕괴 이후에야 점차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이렇게 라스푸틴의 진실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던 배경에는 유명한 첼리스트이며 음악가 그리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투사였던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Mstislaw Rostropowitsch, 1927~2007)의 관심, 노력 그리고 경제적 지원이 숨어 있었다.

로스트로포비치는 1980년 4월에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한국에 와서 연주회도 지휘한 인물이었지만, 그해 한국의 정치 현실은 그를 실망시켜 6월로 예정돼 있었던 내한 첼로 연주회를 취소하기도 했던 인권운동가였다.

*글쓴이: 박광작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서울대학교에서 비교체제론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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