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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OB vs YB (3)] '하동관' 그리고 '커피한약방'

칼럼니스트 조현석 승인 2019.03.26 11:00 의견 0

을지로는 법정구역상으로 보면 서울시청(세종대로)에서 신당동(한양공고 삼거리)까지 서울의 중심을 관통하는 길이다. 조선시대 사농공상이 모두 어우러져서 생활했던 곳으로 현 시청과 명동 등 사대문 안에는 과거 정부관청이나 위인의 생가 흔적이 많이 남아있고 주로 양반들이 살았다.

반면 동대문 너머 신당동과 광희동은 백정, 무당, 광대 등 하층민들이 사는 곳이었다. 광희문은 과거 시구문이라 하여 시체가 나가는 문이었고 근처의 신당동은 무당집이 많아 신당(神堂)이라는 지명이 붙었다. 이후 귀신 신(神)자가 부정적인 어감을 준다고 하여 한자를 새로울 신(新)자로 바꾸었다.

지금도 을지로에는 인간 군상들이 자신만의 모습으로 생활하고 있다. 이번 연재에서는 이들에게 사랑받는 하동관과 커피한약방을 소개해볼까 한다.

¶ 을지로 OB -하동관

하동관은 명동, 그리고 을지로에 있는 곰탕집이다. 곰탕은 과거 양반들이 먹던 고급음식이었다. 곰탕과 비슷한 음식 중에 설렁탕이 있고 둘을 혼동하는 경우도 많으나 엄연히 다른 음식이다. 곰탕은 소고기를 끓여 육수를 내기 때문에 국물이 맑고 설렁탕에 비해서 비싸다. 반면 설렁탕은 소의 사골육수를 푹 끓여 국물이 뽀얗다. 고기가 아닌 사골로 육수를 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하동관의 80년이라는 긴 역사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끌어들였고 심지어 외국인 관광객들도 찾아오는 관광 명소로 만들었다. 이른 아침 든든하게 먹고 출근하는 직장인부터 대통령까지 모두가 따뜻하고 배부른 한 끼를 먹은 식당이었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제주도에 갔을 때 헬기로 하동관 곰탕을 공수해서 먹었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야인시대, 장군의 아들로 유명한 김두한 의원도 하동관을 즐겨 찾았다.

하동관은 아침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영업하므로 저녁을 먹을 순 없다. 선불로 계산을 하고 앉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새빨간 깍두기와 김치가 나온다. 그리고 곧이어 맑은 국물에 고기가 큼지막하게 썰어진 곰탕이 나온다. 적당히 토렴이 되어 뜨겁지 않게, 먹기 딱 좋은 온도다.

▲ 큼직한 고기에 소 양을 추가한 특곰탕 ⓒ 칼럼니스트 조현석

하지만 국물이 맑다고 맛마저 싱겁진 않다. 맑은 가운데 감칠맛이 중후하게 나는 육수로 느끼함이나 누린내 없이 소고기의 담백함만을 살렸다. 고기는 큼직하지만 부드러워 입 안 가득 고기 맛을 즐길 수 있다. 고기만 들어있는 보통곰탕을 기본으로 하고 소의 양을 추가해 쫄깃함이라는 재미를 더한 특곰탕도 있다. 고기를 많이 먹고 싶다면 20공, 25공을 시키면 된다. 약간 물릴 때쯤 깍두기와 김치를 먹으면 금세 입 안이 청량해진다. 취향에 따라 깍두기 국물을 곰탕에 넣어 먹기도 한다.

하동관은 작년 화재로 인해 오랜 리모델링으로 휴업했지만 몇 달 전부터 다시 영업을 시작했다. 하동관은 사람은 누구나 밥 앞에서는 평등하다는 전제를 몸소 느끼게 하는 식당이 아닐까 한다.

¶ 을지로 YB - 커피한약방

을지로 롯데시티호텔 근처 좁고 낡은 골목길로 들어서면 ‘을지로쁼딩’이라는 족히 수십 년은 되어 보이는 낡은 간판과 함께 커피한약방이라는 모던한 느낌의 카페가 보인다. 이곳은 한약방 콘셉트의 카페로 과거 1900년대 초반 느낌의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카페 뒤의 자개장이나 한약장, 그리고 대한제국 시대를 연상케 하는 다양한 소품들이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맞은편에 있는 혜민당이라는 양과자점에서 디저트를 사서 같이 먹을 수도 있다.

커피한약방, 그리고 맞은편 혜민당은 조선시대 혜민서가 있던 곳이었다. 혜민서는 당시 의료의 혜택을 받기 어려웠던 서민을 위해 정부에서 설립한 의료기관이다. 누구나 질병 앞에서는 평등하고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에 사농공상 모두가 모이는 을지로에 혜민서를 설립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커피한약방에도 젊은 사람부터 과거 회상을 하는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찾아와서 커피를 마신다. 마치 과거 혜민서에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진료를 받았던 것처럼 말이다.

▲ 커피한약방의 드립 커피 ⓒ 칼럼니스트 조현석

커피한약방의 커피는 드립커피다. 산미가 적고 묵직한 바디감이 잘 드러난다. 단순히 모던한 이미지와 감성만 있는 곳이 아닌 커피가 정말 맛있는 곳이다.

맞은편 혜민당에서 판매하는 베이커리를 함께 곁들이면 훌륭한 티타임이 된다. 양과자라고 하니 오란다나 앙꼬빵같은 추억의 베이커리가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 무화과타르트, 빨미까레, 초콜릿 등 요즘 디저트가 옛날 경성의 양과자점 포장을 입고 뉴트로 감성을 물씬 풍긴다.

▲ 혜민당의 디저트 ⓒ 칼럼니스트 조현석

커피한약방은 맛있는 드립커피와 디저트를 중세, 근대, 그리고 현대가 어우러진 기이한 인테리어에서 즐길 수 있는 독특하고 재미있는 곳이다. 커피만 판매하는 것이 아닌 혜민서의 스토리까지 함께 파는 곳이라고 할까.

사회교과서에 미국에 대한 설명 중 꼭 나오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인종의 용광로’다.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어우러지고 동화되어 하나의 공통된 문화와 생활양식을 만들어간다고 해서 붙여졌다. 미국이 인종의 용광로라면 을지로는 ‘갑을병정의 용광로’이다. 각계각층의 사람과 문화가 한데 어우러져 을지로만의 하나의 독특하고 공통된 문화를 만들어 간다. 이 공간에서 오늘은 따뜻한 하동관 곰탕을 먹고 커피한약방에서 후식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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