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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푸틴_X파일(24)] 라스푸틴의 유해 없애기

칼럼니스트 박광작 승인 2019.03.31 09:30 의견 0

라스푸틴의 예언 “내가 죽는다든가 너희들이 나를 추락하게 만들면, 6개월이 지나기 전에 너희들은 네 아들과 황제의 관도 잃게 될 것이다”, “내가 없어지면 모든 것이 붕괴될 것이다”는 말은 적중했다.

암살 후 8주만에 2월혁명이 발발했다. 그리고 10월에는 극좌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 볼셰비키 정권이 등장했다. 차르 니콜라이 2세가 퇴위하고 제정러시아는 마침내 붕괴되었다. 3월 임시정부가 들어서고 난 후 라스푸틴의 묘가 어디에 있는가는 즉시 알려지지 않았다.

신정부의 법무장관에 취임한 알렉산데르 케렌스키는 3월 초 대단히 예민한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언론인들을 소집했다. 라스푸틴의 묘를 빨리 찾아내야 한다는 회의였다. 그는 제정러시아 지지자들이 라스푸틴의 묘를 참배하고 또 거기에서 반정부 집회가 열릴지도 모른다는 우려 속에 선제 대응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때까지 하관식에 참여한 사람들을 빼고 라스푸틴의 유해가 어디에 있는가는 아무도 몰랐다. 시베리아 고향으로 갔다는 소문과 함께 페트로그라드 공원묘지에 있다는 소문도 유포되었다. 정세가 유동적인 상황에서 케렌스키는 시체를 찾아 흔적도 없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몰두했다.

황후 알렉산드라와 올가 공주가 몇 번 븨루보바 교회 건설 현장에 나타난 적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클리모브 대위는 인부들을 동원해 그곳을 집중적으로 굴착했다. 드디어 지상에서 약 3미터 깊이에서 금속관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 소식은 3월 9일 신문에 대서특필되었다. 라스푸틴의 시체가 들어 있는 관은 화물차에 실려 지역 군청으로 옮겨졌고 차르스코예셀로 주둔군 대장이 바로 임시정부 당국에 알리고 지시를 기다렸다.

임시정부는 라스푸틴의 유해를 없애기로 결정하고 그 임무를 언론인 필리프 쿠프친스키에게 맡겼다. 여하튼 누구도 라스푸틴의 유해나 기타 흔적을 토대로 참배하거나 문제가 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없애야 한다는 특명이 내려졌다.

쿠프친스키가 3월 9일 저녁에 차르스코예셀로 역에 도착했을 때 이미 많은 군중들이 소문을 듣고 모여들기 시작했다. 쿠프친스키는 군중들이 시체를 따라오면 곤란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해 시체를 그대로 둔채 기차를 남동쪽 이웃 역으로 출발하게 한 후 화물차에 시체를 싣고 그 곳으로 가 다시 옮겨 실었다. 라스푸틴의 유해는 페트로 그라드에 있는 오래된 황실 마차보관소에 옮겨졌다.

*글쓴이: 박광작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서울대학교에서 비교체제론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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