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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71주년 추념(2)] 1948년 제주, 피바람이 불다

김혜령 기자 승인 2019.04.02 09:44 | 최종 수정 2019.07.15 14:43 의견 0

애꿎은 시민 6명의 죽음 외에도 3번의 고문 사건까지 발생하며 제주의 민심은 더욱 혼란스러워졌습니다. 미군정은 3월 1일의 사건이 마무리되자 민관총파업에 가담했던 공무원과 경찰들을 대거 파직시키고 서북청년회와 경찰들을 주둔시킵니다.

이후 주민과 경찰의 충돌은 잦아졌죠. 또한 1947년 11월에 5.10 단독선거가 확정되어 남한 만의 대통령을 뽑아 정부를 수립하기로 하자 제주에서는 2월 7일 총파업을 일으키며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4월 3일 제주에 있던 남로당 세력은 무장대를 만들어 도내 12개의 경찰지서와 우익단체원들을 습격합니다. 우익청년단과 경찰의 탄압, 남한 단독선거 반대, 반미 투쟁이 무장대의 명분이었습니다. 이에 제주도는 대대적인 탄압을 받기 시작했고 단순히 몇 일만에 상황이 종료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4.3이라 부르는 비극의 시작입니다.

▲ 1948년 제주 4.3 사건 중 사형을 기다리는 시민들 ⓒ 위키백과

처음에는 사건을 단순 마무리하기 위해 경찰의 무력진압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장대와 경찰은 대화를 통해 타협점을 찾고 전투 중지를 약속합니다. 하지만 미군정이 이를 거부하고 더욱 강력한 토벌작전을 시작합니다.

한편 5월 1일에 제주 오라리에서 방화사건이 일어납니다. 우익단체원이 화재를 저지른 일이었으나, 무장대가 저질렀다고 사실을 왜곡하며 협상의 여지를 사라지게 했습니다. 결국 양측 모두 강력한 투쟁을 선포합니다.

무장대들은 5.10 선거 당일 투표소를 공격했으며, 투표한 종이를 모두 빼앗기도 합니다. 결국 제주도는 투표수 과반수 미달로 처리되고, 제주도민들은 모두 미군정에 반대하는 세력-빨갱이로 취급받게 됩니다.
5.10 선거로 이승만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는 제주도를 빨치산이라 간주하며 정권에 도전하는 세력으로 낙인찍었습니다.

▲ 4.3이후 토벌대의 진압작전이 본격화되면서 다랑쉬 굴에서는 무차별학살이 진행되었다. 젊은이는 물론이고, 어린아이, 노인, 임산부 모두 죽임을 당했다. 사진은 학살이 자행되었던 다랑쉬굴의 발굴당시(1992) 모습이다. ⓒ 제주 4.3평화재단 홈페이지

이승만 정부는 10월에 제주도 경비사령부를 만들어 군대를 증강한 후, 11월에 제주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계엄령이 선포된 11월 이후에는 노인과 어린이까지 무차별적인 학살이 이루어집니다.

또 중산간지대를 통행하는 자는 폭도로 간주하여 총살하겠다고 발표하지요.


중산간지대 근처에 살던 제주도민은 군대를 피해 산 속으로 도망갔지만, 폭도로 간주되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이때 중간산지대의 95%가 불에 타 없어졌다고 합니다.

한편, 1949년 3월에는 귀순하면 용서한다는 사면정책이 펼쳐져 주민들이 다시 산에서 내려오며 제주도 전체가 안정을 찾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1950년 6.25가 발발하면서 전국에 있는 불순분자를 잡아들여 총살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 1960년대 곤흘동의 모습. 곤흘동은 당시 중산간지대의 마을로 토벌대의 작전에 의해 모두 불타 없어졌다. 사진에는 4.3당시 불타 없어진 곤흘동 마을의 전경이 담겨 있다. ⓒ 제주 4.3평화재단 홈페이지

제주도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좌익사범과 불순분자를 미리 파악해 구금·연행하는 ‘예비검속(豫備檢束)’에 의해 잡혀 들어간 사람들이 많았으며, 이들은 대부분 집단총살당한 후 수장되거나 암매장 당했습니다. 또한 전국 형무소에 수감된 제주 출신 재소자들도 즉결 처분되었습니다.

제주도에서는 매년 4월 3일 제사를 지내는 집이 많았는데, 그만큼 같은 날 죽은 사람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태가 진정된 1954년 9월까지 6년 6개월 동안 벌어진 참극은 25,000~30,000명을 학살하고, 130여 개의 마을을 초토화시켰습니다. 애초에 토벌대에서 파악한 남로당 무장대는 약 500명이었으나 남로당과 상관없는 무고한 수많은 시민들이 목숨을 잃고 공동체가 파괴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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