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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OB vs YB (4)] ‘무교동 북어국집’ 그리고 ‘마구간’

칼럼니스트 조현석 승인 2019.04.02 14:39 의견 0

을지로는 예나 지금이나 산업의 중심지였다. 요즘 을지로라고 하면 금융업만 생각하지만 조선시대부터 도성 내에서 종로와 더불어 상공업이 발달한 곳이었으며 산업화 시대에는 인쇄소와 각종 철공소, 그 자재를 공급하는 시장으로 산업화를 주도했다.

광복 직후 을지로3가에는 많은 고물 상가들이 있었고 지금은 시멘트 대리점, 타일, 건축자재 상가와 철물, 가구 등 건축 자재상들이 모여 있다. 6.25 전쟁 때 크게 파괴된 을지로 지역을 재건하기 위함이었다는 아픈 역사가 있는 곳이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을지로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그 당시 유명 건축가였던 김수근의 설계로 주상복합인 진양상가, 청계상가, 세운상가 등이 생기며 을지로는 도시중심지로 르네상스를 맞이하게 된다. 지금은 청계천 복개와 함께 용산 등지로 많이 옮겨갔지만 아직까지도 이곳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많다.

산업화와 함께 을지로에는 방직소와 철공소 등 다양한 상공업소가 들어왔으며 그만큼 많은 장인들을 배출하였다. 을지로에서 마음만 먹으면 탱크도 만들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그렇게 오랜 기간 ‘인이 박힐 대로 박힌’ 장인들이 많은 곳이 바로 을지로이다.

각 분야의 장인들이 많은 곳이니만큼 오랜 시간 한 음식만을 파서 그야말로 장인의 경지에 이른 식당들도 많다. 이번 주제는 바로 한 가지 음식만을 파는 한 가지 메뉴 음식점이다.

¶ OB - 무교동 북어국집

무교동 북어국집은 1968년 영업을 시작한 곳으로 근처 직장인들의 지친 속을 달래는 북어국을 파는 식당이다. 메뉴는 북어국 단 하나다. 들어가서 사람 수만 말하면 따로 주문을 할 필요 없이 사람 수대로 북어국이 나온다. 취향에 따라 건더기를 많이 달라고 하거나 국물을 많이 달라고 하는 등의 조절을 할 수도 있고 추가금액을 내면 계란 프라이를 주문할 수도 있다.

자리에 앉으면 테이블마다 놓인 반찬통에서 밑반찬을 먹을 만큼 담으면 된다. 반찬은 배추김치와 오이지, 그리고 부추무침. 소박하지만 북엇국과 곁들여먹으면 그만인 반찬들이다.

▲ 무교동 북어국집의 맑고 개운한 국물. 해장으로도 그만이다. ⓒ 칼럼니스트 조현석

그렇게 먹을 준비를 하고 있으면 금방 따끈따끈한 북어국이 나온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스뎅’그릇에 뽀얀 국물과 두부와 계란, 그리고 큼직큼직한 북어채가 올려져있다. 국물을 한입 떠먹으면 맑고 개운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자극적이거나 맵지는 않지만 맑은 국물이 위장을 부드럽게 달래준다. 간을 맞추기 위한 후추와 파는 느끼해지기 쉬운 국물을 상쾌하게 해준다. 씹히는 북어채는 쫄깃쫄깃해 씹는 맛을 더하고 길게 썰려있는 두부도 고소하다.

무교동 북어국집의 북어국은 바다와 육지의 조화라 할 수 있다. 개운한 국물 맛을 책임지는 부드럽고 큼지막한 북어채에 진한 사골육수로 담백함을 더한 국물까지. 해장에 이보다 더 좋은 국물이 있을까.

한 가지 음식으로 50여 년간 롱런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장인의 반열에 올라선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을지로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제야의 고수들이 많다. 그리고 이 북어국에서도 그 흔적을 느낄 수 있다.

¶ YB - 마구간

을지로3가 부산복집 맞은 편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빨간색 대문이 보인다. 바로 카레전문점 마구간이다. 마구간이라는 이름은 ‘마구 먹는 공간’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 형태의 오픈 키친과 좁지만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입구에서 무인주문기로 주문과 결제를 하고 자리에 앉으면 서빙이 된다.

▲ 작은 골목길 속 빨간색 대문이 인상적이다. ⓒ칼럼니스트 조현석

이곳의 메뉴는 일본식 카레 하나다. 다만 카레에서 몇 가지 베리에이션을 줄 수 있다. 밥과 면을 선택할 수 있고 사이드메뉴로 튀김과 온천계란을 선택할 수 있다. 물론 술도 함께 팔기 때문에 퇴근 후 혼밥에 혼술을 곁들이는 이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마구간의 카레는 우리가 흔히 보는 되직한 농도의 카레가 아닌 묽은 카레이다. 묽은 농도에 카레 맛도 연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면 그 걱정 넣어두시길. 신기하게도 일반적인 되직한 농도의 카레보다 더욱 농밀한 맛이 난다.

카레를 주문하면 밥 혹은 면과 카레가 나오고 양배추가 곁들여진다. 국물은 따로 나오지 않고 반찬은 무말랭이와 단무지가 나온다. 추가로 온천계란이나 가라아게(닭튀김)나 돈까스, 민치까스 등을 주문해 반찬처럼 즐길 수도 있다. 여기는 카레에 시원한 육수를 섞기 때문에 국물이 없어도 충분하다.

▲ 묽지만 농밀한 맛의 마구간 카레. ⓒ 칼럼니스트 조현석

온천계란을 터뜨려 카레와 잘 섞은 다음 한입 먹으면 카레의 향과 함께 시원한 맛이 같이 느껴진다. 우리가 흔히 먹는 카레가 되직한 농도의 버터향 가득한 카레라면 마구간의 카레는 보다 가볍고 상쾌한 느낌이다. 곁들여먹는 가라아게 역시 별미다. 특별한 기법은 없지만 바로 튀겨낸 듯 바삭하고 카레와 잘 어울린다.

을지로의 여러 감성 식당들과 다르게 마구간은 충분히 감성적이면서도 약간은 어수선한, 꾸미지 않은 듯한 사람 냄새가 난다. 카레에서도 그 느낌이 물씬 풍긴다. 화려한 기교는 없지만 기본기에 충실한 집밥같은 포근한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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