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71주년 추념(4)] “아직도 4.3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인터뷰) 제주 4.3 희생자 유족청년회 김평선 상임부회장

윤준식 기자 | 기사입력 2019/04/04 [16:37]

[4.3-71주년 추념(4)] “아직도 4.3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인터뷰) 제주 4.3 희생자 유족청년회 김평선 상임부회장

윤준식 기자 | 입력 : 2019/04/04 [16:37]

아직도 4.3의 비극은 끝나지 않고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 4.3이 발생한지 50여년이 지나서야 진상규명이 시작되었다. 그 후 2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제자리걸음은 계속되고 있다. 좌우 이데올로기의 이분법으로 받아들이고 세월까지 흐르며 원인규명은 어렵기만 하다. 대한민국 국민 3만 명이 학살당했고, 더 많은 사람들이 공포와 압제의 두려움 속에 떨어야 했다.

 

지난 해는 4.3 70주년을 맞이해 국가차원의 대대적인 기념행사도 열렸다. 그 후 1년... 4.3은 또 하나의 콘텐츠로 전락해 버렸다. 역사문화 콘텐츠, 정치콘텐츠는 넘쳐나는데 어디에도 원인규명과 희생자를 위한 배상과 보상의 움직임은 없다. 4.3을 뭐라고 불러야할지 그 이름조차도 불분명하다. 이대로는 72주년, 73주년이 되어도 의미있는 한 걸음을 내딛지 못할 것이다.

 

이런 현실을 알리자는 취지에서 <시사N라이프>는 제주를 방문해 희생자 유족이면서 4.3연구자인 ‘제주 4.3 희생자 유족청년회’ 김평선 상임부회장을 만났다.

 

▲ 영화 '지슬'의 한 장면. 지슬은 4.3 당시 제주도민의 삶을 잘 그려낸 독립영화다     © 네이버 영화


¶ "난 4.3이 뭔지 모르겠다.
 왜 일어났고 우리 아버지가 왜 돌아가셨는지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 4.3 관련 연구를 비롯해 유족회 활동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찾아뵈었다. 이전에도 언론과 만나 자주 대화를 나눴을 텐데, 똑같은 질문과 똑같은 답변을 반복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 김평선 상임부회장: 4.3 65주년 때 제주도 내 한 매체가 4.3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도한 적이 있었다. 그 다큐는 한 마을 주민들이 마을지(마을역사문화지)에 제주 4·3을 어떻게 기술할 것인지에 대한 주민들 사이에 이견들을 보여주었다. 그 마을은 피해자 가족과 가해자 가족이 함께 살고 있는 마을이었다.

 

그 다큐에서 유족 한 분이 “난 4.3이 뭔지 모르겠다. 왜 일어났고, 우리 아버지가 왜 돌아가셨는지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난 이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원인을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일어난 현상만 조사하는 수준이다. 절름발이다. 많이 부족하다.

 

▶ 문재인 정부 들어서며 제주 4.3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작년의 70주년을 맞아 적극적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아직도 미흡한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 김평선 상임부회장: 70주년을 맞아 제주 ‘4.3’에 대해 많은 분들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 중 가장 큰 이슈가 배상과 보상에 대한 것이다. 배·보상은 4.3 해결에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정부는 배보상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희생자와 유족 등록이 상시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제 희생자와 그 유족 1세대가 고령화되어 신고제가 상설화되지 않으면 시기와 방법을 잘 모르거나 신고를 회피해 온 희생자와 유족이 피해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제주 4.3진상조사보고서는 미완의 상태이다. 조사가 미흡하다보니 원인규명도 정확하지 않다. ‘4.3’을 어떻게 불러야할지 이름도 정하지 못하고 있다.

 

▶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4.3에 대한 조치가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유족 등록이 되지 않은 분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 김평선 상임부회장: 90년대 중후반 이후 4.3 진상규명 운동이 있어서 대부분의 희생자와 유족들이 신고를 했다고 보여진다. 돌아가신 분들의 경우 자손들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간혹 그때 희생된 것은 맞는데, 여러 이유로 유족으로 등록되지 않은 분이 많다. 우선 상설화되어 있지 않고 신고제라는 번거로운 점이 있다. 작년 4.3 70주년 맞아 추가 유족신고를 1년 동안 받았다. 유족신고가 들어가도 유족으로 인정받는데 2년의 시간이 걸린다. 그러다보니 나이가 많고 자손이 없는 분들은 유족신고를 할 필요 못 느껴서 안하는 경우가 있다.

 

4.3 당시 워낙 고초를 당한 터라 과거의 두려움을 떨치기 어렵다. 신고를 하는 행위가 트라우마다. 이런 문제가 현안으로 대두되어 유족회가 오영훈 국회의원(제주시 을)과 같이 특별볍 개정안을 마련했다. 행안부에서 논의되는 것으로 알고 있고, 올 상반기 중 조속한 시일 내에 법안이 통과되기를 바란다.

 

▲ 2018.7.10, 4.3관련 공약을 내건 실천위원이 4.3 추모공원에 참배를 왔다. 4.3은 아직 진상규명도 명확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4.3 관련 피해자와 유족은 배상과 보상을 제대로 못받고 있다.     © 제주 4.3 평화재단 홈페이지


¶ 제주 4.3 피해자와 유족, 배상과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해

 

▶ 4.3에 대한 진상조사가 이루어졌는데 아직도 배상과 보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건가?

 

☞ 김평선 상임부회장: 실제로 특별법에는 배상과 보상 내용이 없다. 유족회에서는 꾸준히 배상과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과거사와 관련된 국제인권 지침에서도 배상과 보상을 권고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진상조사만 이루어졌다. 진상조사 보고서도 미흡한 것이 많다. 김대중 정부 당시였지만 기득권을 갖고 있던 군경 측이나 보수인사들은 빨리 이 문제를 봉합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진상조사가 추가적으로 더 필요한 상황이다. 4.3평화재단에서 부분적으로 진행해 왔지만, 아직까지 미흡한 점이 많다.

외국의 경우, 가해자 진실과 함께 화해 모델이 나오고 있다. 가해자, 피해자의 진실을 다 이야기해야 한다. 현재까지의 4.3은 가해자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말하는 식으로 되고 있다.

 

▶ 가해자 측이라면? 당시의 군경을 말하는건가?

 

☞ 김평선 상임부회장: 최근 국방부가 사과한다고 했다. 사과한다고 했으면 당시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 현재까지 진상조사가 부족한 이유 중 하나가 조사위원회에서 국방부에 자료를 요청하면 주지 않았던 데 있다. 국방부 입장에선 숨길 게 많다. 4.3만이 아니라 다른 의문사, 사건 공개요구도 많이 들어올 것이다. 국방부가 사과한다고 했지만, “4.3과 관련된 군경의 자료를 내놓을 수 있는가”가 앞으로의 관건이다.

 

국방부 외에도 경찰, 당시 핵심인물들에 대한 자료가 필요하다. 여기에 미군정의 역할도 제대로 확인이 이루어지지 못한 상황이다.

 

문제는 4.3관련된 현안이 많은데 실제 연구자 그룹이 별로 없다. 미국이 자료를 공개할 경우 영어자료도 다뤄야 한다. 그러나 제주도 안의 인력이 절대 부족하다. 4.3이 제주만의 일이 아니기에 전국화 해야하는 등 남은 과제들이 상당히 많다.

 

▶ 현재 배상과 보상 문제는 어떻게 풀어가고 있나?

 

☞ 김평선 상임부회장: 지금까지 배상과 보상은 법원을 통해서 진행되어 왔다. 유족이 개인 자격으로 소를 제기하면 법원이 판단해서 “이 사람은 피해를 봤으니 국가가 배상해라” 해야 배상을 해주는 식이다. 그런데 크게는 4.3이라고 하지만 그 안에 작은 다양한 사건들이 있다. 소를 제기할 때는 어떤 특정 사건을 가지고 진행해야 한다.

 

당시 군사 재판이 불법이었다. 따라서 자료가 없고 엉성하다. 군사재판이 무효라는 판결이 나와서 이를 토대로 유족회가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끌려갔는데 안 돌아오신 분들,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고 시신도 찾을 수 없는 상황이라 소송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이런 것들을 막는 여러 요인도 있다. 특히 정치권이다. 특별법 제정이 제한적이었던 건 지금의 자유한국당이 반대해서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반대하는 입장으로 안다. 배상과 보상 내용이 특별법에 들어가려면 수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어느 범위까지 할 것인지, 금액 문제도 정부가 정해야 해서다.

 

그래서 적당히 묻어가려고 한다. 과거사, 현대사 대부분이 그런 식이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것이라는 안일한 태도가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집단, 반대 움직임... 당시 특정 세력의 문제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반대할 명분을 만든다. 이런 것들이 힘들게 한다.

 

▲ 4.3 추념일을 바로 앞둔 주말, 제주 4.3 희생자 유족청년회 김평선 상임부회장을 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 1층 카페에서 만났다. 서로 표정없이 약 1시간 가량 덤덤히 대화를 나눴다. 옷깃에 달려있

 

¶ 제주 4.3, 정확한 원인 규명으로 공식명칭부터 정리해야

 

▶ 인터뷰 서두에서 4.3의 명칭 문제도 언급했다.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드린다.

 

☞ 김평선 상임부회장: 작년에 70주년 맞아 70주년 기념사업회가 여론조사와 국민이벤트도 진행했는데, 공식명칭도 정하지 못했다.

 

전에는 ‘4.3 사건’이라 했지만 지금은 현재까지의 진상보고서에 기반해 ‘4.3 사건’이라 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식명칭이 없어 ‘4.3’이라고 한다. 명칭이라도 정확히 붙이기 위해서는 진상조사가 제대로 마무리되어야 한다.

 

이 사건을 어떻게 규정하겠다는 게 없다. 대한민국 역사 안에서 4.3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어떤 위치에 있는가,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정립이 안 되고 있다.

 

기존 연구자들 중에도 통일운동, 제주 민중항쟁, 국가건설운동 등 자기들의 시각에 따라 여러 명칭이 제시되었지만 정리가 안 되고 있다. 4.3의 과정에 여러 요소들이 결합되어 있어 어떤 활동만 부각시킬 수도 없다. 아직 유족회 측에서도 명칭문제가 공식적으로 논의되지 않은 상황이다.

 

▶ 연구자로서 4.3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 김평선 상임부회장: 4.3을 제주도로 한정지어 보고 싶지는 않다. 당시 <제주신보>라는 신문사가 있었다. 한 달에 4번, 4면을 발행했다. 깜짝 놀란 것은 신문기사의 절반이 국제면이 나머지가 국내와 제주소식이다. 당시 제주 언론인은 왜 외신을 많이 다뤘을까? 제주의 운명이 국제정치의 흐름에 따라서 결정될 것이라 보고 이런 정보를 빨리 알려주고 싶었던 것 아닐까?

 

진상조사보고서를 보면 당시 “누가, 어디서, 누구를 죽였다” 이렇게 기술한다. 피해자 분의 증언도 보면, “군인이, 경찰이 어디서 우리 어머니를 고문했다, 학살했다”고 한다. 시각적 기억일 뿐이다. 시각적으로만 보면 맞는 내용이다.


하지만 방금 말한 것 같은 “당시 제주 언론인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와 같은 비시각적인 영역에는 아직 접근이 부족하다.

 

이런 것들도 큰 메카니즘 안에서 벌어진 결과다. 그런데 큰 메카니즘에서의 시각은 아직 부족하다.


지식인 중에 “당시 무장봉기를 일으켰던 남로당 세력이 안일하게 접근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과연 안일한 것일까? 국내외 뉴스를 다 접했던 사람들인데 안일했을까?

 

이런 고정관념 안에서 4.3을 이야기하는 것이 다가 아닐 수 있다고 본다. 정반대의 뭔가가 있을 수도 있다. 이런 것들도 중요한데, 드러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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