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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호크니, 애정어린 시선과 파격적인 화풍으로 세상을 그리다

서울시립미술관 데이비드 호크니展(하)

김혜령 기자 승인 2019.04.19 07:17 의견 0

(상편에서 이어짐)

▲ 데이비드 호크니 전 포스터. 세션 4 '푸른기타'에 전시된 그림이 걸려있다. ⓒ서울시립미술관

세션-4. 푸른 기타

호크니와 피카소. 피카소는 근현대 미술계의 거장으로 미술사에 거대한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1973년 피카소가 사망하고 난 뒤 호크니는 피카소의 예술세계에서 엄청난 영향을 받기 시작한다. 그는 피카소에게 바치는 다양한 오마주를 통해 피카소와 재회한다. 이전까지 자신이 추구했던 자연주의 화풍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으며, 그 과정에서 피카소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벽부터 그림까지 온통 파란색으로 가득한 이 공간의 이름이 ‘푸른 기타’인 이유는 그가 피카소를 경외하는 마음과 탐구정신을 담아 ‘푸른 기타’ 시리즈를 제작했기 때문이다. ‘푸른 기타’는 에칭으로 제작되었는데, 이 작품으로 20세기 판화사에 의미있는 기여를 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날카로운 도구로 새긴 동판을 부식시켜 찍어내는 형식의 판화인 에칭은, 펜의 섬세함을 잘 드러낼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세션-4에 전시된 그림은 색연필로 그린 듯한 선의 느낌과 색감을 느낄 수 있으며, 사물을 해체하고 재조합하며 새로운 화풍을 개척했음을 볼 수 있다.

▲ 데이비드 호크니, 호텔 우물의 경관 Ⅲ, 1984 5, 석판화 에디션 80, 123.2ⅹ97.8 cmDavid Hockney, Views of Hotel Well III, 1984 5, Lithograph, Edition of 80, 123.2ⅹ97.8 cmⓒ ⓒ서울시립미술관

세션-5. 움직이는 초점

1980년대. 호크니는 자신의 화풍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다각도에서 기울인다. 사진, 연극의 무대 디자인, 중국의 회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회화에서 잠시 눈을 돌린다. 또 3차원 공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2차원의 캔버스에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를 집중 탐구했다.

이 시기부터 여러 관점에서 보이는 다시점과 역원근법을 적용해 그림을 표현하는 방법에 집중했다. 한 명의 사람을 여러 방식으로 표현한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림을 그린 방식, 재료, 색감에 따라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의 인물로 보인다. 동양 건물을 그린 그림에서는 곡선으로 이루어진 처마를 따라 변화하는 풍경을 다각도로 묘사해 한 장의 파노라마 사진을 보는 느낌이 연출된다.

세션-4 ‘파란 기타’가 색연필처럼 은은함을 보여주었다면 이곳은 크레파스로 칠한 색처럼 색채는 매우 강렬하다. 선명한 색감과 다양한 각도에서 그려진 그림은 피카소의 큐비즘과 마티스의 야수파를 동시에 연상시킨다. 화려한 색채감에 눈을 뗄 수 없다.

▲ 세션 5에서 말리부의 풍경을 그린 그림을 한참 감상하는 관람객. 우울한 색감이 말리부와 닮아있다. ⓒ김혜령 기자

세션-6. 추상

이곳에서는 1990년대 호크니의 추상화를 볼 수 있다. 이 시기의 호크니는 카메라로 나타날 수 없는 독특한 방식으로 세상을 표현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선명한 색감과 다양한 패턴의 면, 기하학적무늬들이 공간에 가득 차며 또 다른 호크니의 모습을 느낄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특징적인 것은 호크니가 그린 말리부 해변을 추상화로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비가 오는 말리부의 색감을 따다가 표현한 느낌이 묘하다. 기이하고 어두운 느낌이다. 그러나 비가 오는 말리부 풍경을 인터넷으로 찾아 대조해보면 그 우중충하면서도 묘한 색감이 잘 재현되었음을 알 수 있다.

▲ 데이비드 호크니,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 또는/또는 새로운 포스트사진 시대를 위한 야외에서 그린 회화, 2007, 50개의 캔버스에 유채, 457.2ⅹ1220 cmDavid Hockney, Bigger Trees near Water or/ou Peinture sur le Motif pour le Nouvel Age PostPhotographique, 2007, Oil on 50 canvases, 457.2ⅹ1220 cm overallⓒ David Hockney, Photo Credit: Prudence Cuming Associates, Collection Tate, U.K. ⓒ 서울시립미술관

세션-7. 호크니가 본 세상

마지막 세션 ‘호크니가 본 세상’은 최근 호크니가 관심을 지니는 시간과 공간의 확장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다른 공간에 비해 조명이 어둡게 설치되어 있어 호크니 그림에서 붉은 색 색감을 조금 더 강렬하게 느낄 수 있다. 그랜드 캐니언의 실제 풍경을 관찰하고 그렸는데, 한 그림에 다양한 시점에서 관찰한 흔적을 여실히 찾아볼 수 있다.

▲ 데이비드 호크니, 더 큰 그랜드 캐니언을 감상하는 관람객. ⓒ 서울시립미술관울


위, 아래, 측면까지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본 풍경은 우리가 사진 속에서 바라보던 그랜드 캐니언과 같고도 다르다. 이는 우리가 같은 것을 보면서도 어느 위치에서 보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것을 볼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내가 보는 부분이 전체인 줄 착각할 수 있지만 실상 그것은 내가 보는 쪽에서 전부일 뿐이다.

세션-7에서는 여러 캔버스에 따로 작업한 후 하나의 거대한 작품으로 탄생한 그림들을 여럿 만나볼 수 있다. 전시관의 출구 쪽엔 사람을 압도하는 에너지를 지닌 거대한 나무그림과 마주한다.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 또는 새로운 포스트-사진 시대를 위한 야외에서 그린 회화>는 약 50개의 캔버스로 작업된 그림이다. 거대한 나무를 중심으로 여러 나무들이 얽혀있는 그림을 보노라면 실제 나무가 있는 풍경 앞에 서있는 듯 착각이 일어난다.


이와 같이 7개의 세션을 통해 본 호크니의 세계는 전혀 다른 형상의 세계를 보여준다. 어떤 세계는 거칠고 투박했으며, 어떤 세계는 동화 같은 색감과 화려한 구조를 띠고 있었다. 모든 그림 속에는 애정어린 눈으로 사물을 관찰한 호크니의 시선이 머물러 있다. 호크니가 이 시대의 예술가로 칭송받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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