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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민_이야기(30)] 결혼준비(上)

칼럼니스트 봉달 승인 2019.04.21 09:11 의견 0

훗날의 얘기지만 C는 내 아내가 됐고 애를 셋 낳았으며 우리집의 실질적 가장 노릇을 하고 계신다. 결혼 전 여자는 남자가 변할 것이라 믿고, 남자는 여자가 변하지 않을 거라 믿는다던가. 세상의 모든 유부남이 다 그렇겠지만 나도 결혼 전엔 마누라가 여자인줄 알았다. 근데 알고 보니 여포였을 줄이야. 아내가 페북을 안 해서 다행이지 만약 했으면 이런 취미생활도 없었을 것 같다.

물론 마누라도 이상한 놈이랑 결혼했다며 집에서 학교가 2시간 넘게 걸리지만 않았어도 나와 사귀진 않았을 거라고 한다. 듣고 보니 역시 부동산 고수들의 철칙에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집을 고를 땐 첫째도 로케이션, 둘째도 로케이션, 그리고 셋째 역시 로케이션임을 명심할 것.

이민 생활 중 가장 어려운 점이, 언어도 그렇지만 고국과 현지의 문화적 차이를 빠른 시일 안에 파악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살면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습득하는 수밖에 없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미국에 온 지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식으로 생각하다가 아내 될 사람의 사고방식과 차이가 많아 놀란 적이 몇 번 있다. 대부분 내겐 좋은 방향으로 작용했는데, 이를 테면 신혼집은 어디에 구해야 하는지 그리고 예물과 식장 손님 초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등이다.

평생 한국서 살다 결혼 적령기 즈음해 미국에 왔기 때문에 자세히는 몰라도 대략 한국의 결혼 풍습이 어떤지는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남자가 더 금전적으로 부담을 많이 해야 하고 특히 집 문제에서 더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내게도 있었다.

둘 다 개털인 건 마찬가지지만 나는 아직 영주권도 없는 박봉 외노자인 반면 C는 결혼 전 대형약국 체인에 취직해 쏠쏠하게 돈을 버는 상황이었다.

한국에선 경제적 능력도 남자가 더 있는 경우가 많아 내심 쫄려서 눈치를 보는데 예비 마누라는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결혼식은 둘이 절반씩 내서 하기로 했고 신혼집은 내가 살던 단칸방 스투디오에서 나와 방 하나 짜리 월 800불 아파트로 옮겨 살기로 했다.

기자 월급이란 게 워낙 박한데다 본사 지원을 받는 중앙일보도 아닌 폭망한 한국일보여서 더 쪼들렸다. 식장 및 신혼여행에 드는 비용을 계산해보니 대략 3만 달러 정도 필요했다. 반으로 나누면 만오천 달러이니 예비 마누라는 본인이 일해서 몇 달만에 금방 모을 테지만 나는 몇 년이 걸릴지 모를 노릇이었다.

미국 오는 비행기값부터 시작해 초기 정착 비용, 영주권 수속비 등 해서 만오천 달러 정도를 이미 본가로부터 지원을 받은 상태였다. 결혼식 비용도 별 수 없이 손을 벌리려니 참 죄송하기도 하고 자괴감도 들고 그랬다. 근데 어머니는 그게 다냐면서 되게 좋아하시는 거다. 한국에서 웬만한 남자네집은 억억씩 깨지는 게 다반사라나.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뭔가 엄청난 효도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좀 더 받아내도 될 듯 싶었다. 당장은 아니지만 나중에 집 살 때 다운페이할 돈 몇 만 달러만 더 주시면 안 되냐니 표정이 떨떠름했다.

*글쓴이: 봉달(필명)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한국에서 상사 근무 후 도미, 시카고에서 신문기자 생활. 물류업체 취업 후 관세사 자격증 따고 현재 캐터필러 기차사업부 Progress Rail의 통관부서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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