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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OB vs YB (6)] ‘우래옥’ 그리고 ‘4F cafe’

칼럼니스트 조현석 승인 2019.04.24 16:38 의견 0

을지로 4가는 참 애매한 곳이다. 시청, 을지로 입구 근방은 관공서와 기업들도 많으며 관광객들도 많이 오고가는 곳이다. 을지로 3가는 최근 생겨나는 힙한 거리를 즐기기 위해 찾아간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은 DDP와 의류매장, 야시장 등 관광지로 늘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붐빈다. 그렇다면 을지로 4가는 서울에 살아도 방산시장에 가는 것이 아니라면 을지로 4가에 갈 일이 거의 없다. 환승을 한다고 해도 동대문역사문화공원과 2, 5호선이 겹치기 때문에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가까운 관공서로 중구청이 있지만 그마저도 충무로역에서 가는 사람들이 많다.

오늘은 이곳 을지로 4가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한다. 조선시대에는 서울을 한성이라고 하였고, 수도를 관할하는 한성부를 5부 52방으로 나누어 행정관리를 하였다. 을지로 4가는 한성부 남부 중에서 성명방, 그리고 낙선방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후에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다. 광복 이후 한국 전쟁이 발발하며 이 지역은 미개발 지역으로 남아 있다가 을지로 3가와 마찬가지로 주방용 가구점과 인테리어 전문점 등의 업체들이 많이 들어오며 시장도 크게 발전하였다. 지금은 시장이 점차적으로 축소되는 추세지만 아직까지도 구석구석 골목에 상인들, 그리고 지역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해온 맛집이 남아있다.

¶ OB - 우래옥

우래옥은 평양냉면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너무나 유명한 냉면집이다. 광복 다음해인 1946년 을지로 4가에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냉면과 온면, 그리고 고기를 판매한다. 6.25 전쟁 이후 북한의 실향민들이 서울 을지로 근방에 냉면집을 많이 개업했다. 을지면옥이나 필동면옥, 남포면옥 같은 평양냉면 집부터 오장동 함흥냉면, 오장동 흥남집 등 함흥냉면 집까지 모두 모여 있다. 을지로는 냉면 매니아에게 있어 성지순례길 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작년 말,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서울행이 예측된 적이 있었다. 그때 만찬의 장소 중 유력하게 이야기 되던 곳이 바로 우래옥이다. 모두 알다시피 앞선 평양정상회담에서 북한 측이 냉면을 대접하였다. 그 답례로 한국의 냉면집에서 만찬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고 봤고, 주차나 접근성 등을 따져보았을 때 우래옥이 적격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물론 방남은 미뤄졌지만 이런 이야기가 돌 정도로 우래옥 평양냉면은 맛있다.

▲ 소고기만으로 낸 진한 육수가 일품인 우래옥의 평양냉면. ⓒ칼럼니스트 조현석

우래옥 평양냉면은 고기 맛이 진하게 나는 육수, 그리고 부드럽지만 쫄깃하게 씹히는 메밀면이 특징이다. 혹자는 우래옥 육수를 ‘아이스 갈비탕’이라고 할 정도로 진한 맛을 자랑한다. 동치미나 닭, 돼지 등을 배제하고 소고기만을 사용하여 육수를 낸다. 여기엔 사연이 있다. 과거에는 돼지고기를 같이 이용해서 육수를 만들었다. 그런데 냉면 가격은 비싼데 왜 돼지를 섞어서 쓰냐는 손님들의 항의에 오기가 생긴 창업주가 양지와 사태살 등 소고기만으로 육수를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슴슴한 맛이 물릴 때 쯤 새콤한 무를 같이 곁들이거나 김치를 먹고 다시 한 젓가락 하면 언제 물렸던 양 술술 들어간다. 함께 나오는 따뜻한 면수를 한 두 모금 들이키고 차가운 냉면을 먹으면 온도 차이 때문인지 더욱 맛있게 느껴진다.

이런 우래옥만의 특별함에 일부 극성적인 냉면 매니아들은 이곳 냉면을 먹을 때 겨자와 식초를 더하거나, 면을 가위로 잘라먹거나 하면 맛이 떨어진다며 경멸하거나 핀잔을 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건 개인의 취향이니 먹고 싶은 대로 먹는 것을 추천한다.

작년 평양정상회담 때 평양냉면 붐이 한바탕 휘몰아쳤다. 어쩌면 그때 평양냉면을 찾던 많은 사람들이 진짜 원했던 것은 평양냉면 그 자체보다 북한 평양에서 직접 냉면을 먹게 되는, 언젠가 다가올 평화가 아니었을까.

¶ YB - 4F cafe

을지로 방산시장은 한국전쟁 이후 사람들이 먹고살기 위해 악착같이 살았던 곳이다. 지금은 인테리어 제품들이나 섬유, 패키지 등 다양한 물품을 판매하는 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4F cafe는 이름처럼 4층으로 이루어진 카페이다. 바쁜 일상을 보내는 상인들과 지게차 사이를 지나 방산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구석지고 으슥해 정말 이런 곳에 카페가 있을까 싶은 좁은 골목에 있다. 입구에 들어가면 크고 낡은 윤전기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아마 을지로 인쇄골목에 대한 오마주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 카페 1층에 있는 낡고 큰 윤전기 ⓒ 칼럼니스트 조현석


과거 을지로는 인쇄로 유명했다. 수많은 지류들이 생산되고 선거철에 정치인보다 더 바쁜 골목이었다. 예전에 비해서는 주춤하다고 해도 아직까지는 을지로의 큰 정체성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4F cafe는 인쇄소를 모티브로 했다. 인쇄소의 느낌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굉장히 특이하고 힙한 감성으로 가득하다. 목재를 이용한 투박한 소품과 거칠게 마감한 벽이 인스타 감성러들을 자극한다.

▲ 편히 쉬기도, 작업하기도 좋은 카페 4층의 널찍한 공간 ⓒ 칼럼니스트 조현석


2층에서 주문을 하고 올라가면 3층엔 큰 테이블과 작은 바 형태의 테이블이 있다. 4층은 널찍한 공간에 벽을 따라 소파가 넓게 둘러져 신발을 벗고 편하게 기대 쉴 수도 있고 곳곳에 콘센트도 있어 간단한 작업도 가능하다. 한 쪽 벽엔 프로젝션이 설치되어 대관해서 이벤트도 한다고 한다. 평소에는 감각적인 영상과 함께 경쾌한 재즈가 흘러나와 음료 한 잔 시켜놓고 멍 때리기 좋다.

메뉴 선택의 폭도 넓다. 시그니처 메뉴인 방산라떼는 야생꿀을 넣어 달달하게 즐길 수 있는 음료다. 고소한 커피에 달달함이 감돌아 쓴 커피를 즐기지 않는 이들에게도 추천할 만하다. 이 외에도 티, 스무디 등의 음료도 있고 티라미수, 토스트와 같은 디저트나 가벼운 식사 메뉴도 다양하다. 맥주, 와인, 칵테일 등 이 곳 감성과 어울리는 술도 갖추고 있다.

▲ 시그니처 메뉴인 방산라떼와 식사 대용으로 좋은 시금치&스크럼블 토스트 ⓒ 이여진 기자


이렇게 을지로 4가는 놀기 위해 찾아가는 사람은 적지만, 보는 이 없어도 어디선가 굳세게 자라나는 잡초와 같은 생명력을 가진 곳이다. 겉옷을 입지 않아도 될 만큼 날도 풀렸으니 을지로 4가에서 진한 생명력을 느끼며 냉면 한 그릇, 커피 한 잔 하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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