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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풍경따라(6)] 중년의 기차, 부다페스트

칼럼니스트 김호삼 승인 2019.04.21 13:30 의견 0

부다페스트의 진주 다뉴브강은 겨울처럼 조용하고 Rezso Seress의 Gloomy sunday가 흐른다. 하늘은 회색빛이고 멀리 있는 다리 위에 눈이 내린다. 그림 속에서 나는 어떤 중년의 남자를 발견했다. 보랏빛 와인 잔 속에서 그가 울고 있다.

비탈길 내리막 모퉁이 철길을 낡은 기차가 조심스럽게 돌아간다. 헐겁게 닳은 기차는 힘없이 덜컹거린다.

빛바랜 기차는 어떤 치장을 하더라도 당당했던 옛모습을 회복하지 못하리.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 언덕을 다시는 오르지 못하리. 곧게 뻗은 길을 달릴 수 없으리. 더 이상 아침 해가 찬란하게 떠오르는 동녘을 보지 못하리.

▲ 부다페스트의 철길 풍경을 담은 사진. 아내가 결혼기념일 선물로 내게 주었다. ⓒ 칼럼니스트 김호삼

밝지 않은 가로등이 침묵으로 열차를 다독이지만 초라함만 더할 뿐이다.

기적을 울리며 들녘을 거침없이 내달렸던 기차는 달랑거리는 신호등에 기대어 쓸쓸히 힘겨운 발걸음을 옮긴다. 팽팽하던 힘줄은 늘어진 전깃줄에 걸렸다.

저 낡은 기차가 새 것이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난 날 사무쳤던 일, 틀어져 버린 관계, 후회만 남긴 일을 돌이킬 수 없다. 우리들의 관계는 철길처럼 평행선을 달린다. 종착역까지 연결될 수 있는 길은 없는 걸까.

몇 년 전 결혼기념일 저녁, 아내와 와인을 마시고 가까운 갤러리에 들러 이 그림을 봤을 때 알 수 없는 슬픔이 늦가을 바람처럼 밀려왔다. 모퉁이를 돌아가는 기차는 바로 나였다.그림은 바로 나의 동지였으며 나의 위로자였다. 아내는 내게 결혼기념일 선물로 이 그림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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