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메뉴

[길따라 풍경따라(7)] 북해도여행①

칼럼니스트 김호삼 승인 2019.04.27 14:17 의견 0

결혼 30주년 기념으로 약 10년 만에 온 가족이 4박 5일로 북해도를 여행했다. 여행 이야기가 나왔을 때 선뜻 북해도를 제안했다. 내가 왜 북해도를 가보고 싶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북해도 여행하기'는 나의 열다섯 개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일본 여배우가 "오겡기데스까~"를 외치는 장면과 이제까지 읽지 않았지만 책꽂이에 꽂혀 있는 <설국>이라는 책 제목이 뇌리에 남았기 때문일까

<설국>은 통로 쪽에 꽂혀 있어서 나가고 들어오면서 자주 눈에 띄었다. 영화 <러브레터>에 나오는 온통 눈 밖에 보이지 않는 풍경도 감동이었지만 <설국>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도 좋았다. 눈 덮인 마을, 눈 많은 고장. 얼마나 눈이 많으면 설국이라 했을까 광고와 책을 볼 때 마다 점점 내 마음의 동경이 되어 왔다.

내 오랜 로망 중 하나는 교통이 두절되는 깊은 산속 오두막에서 폭설로 갇혀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살아보는 것이다. 따뜻한 장작난로 위에 물이 끓는 주전자. 눈쌓인 산과 나무들 사이에서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휴식을 만끽하고 싶다.

여행일정은 아내가 짰다. 여행을 통해 스스로 공부하고 뭔가를 깨닫기 위해서는 자유여행을 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기 때문에 부자유한 패키지여행 대신 자유여행을 하기로 했다. 여행에서 겪은 시행착오와 부딪친 경험은 큰 추억으로 남는다. 추억은 경험의 폭을 넓히고 개인의 정체성을 깨닫게 한다. 여행은 자신에게 주는 가장 큰 위로의 선물이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中)

깊은 산골에서 시간을 보내며 세상에서 묻은 원죄와 욕망의 흔적을 닦아내고 싶다. 쌓인 눈을 단단히 뭉쳐 아프게 아프게 긁어내듯이. 이런 굴레는 창조주께서 씌운 것일까 우리 인간이 스스로 선택한 것일까 아담과 이브의 피가 우리 몸에 흐른다고 그 굴레를 우리가 짊어지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욕망은 본래 더러운 것이라고만 말할 수 있는 것인가

답을 찾을 수 없는 이런 원초적 수수께기는 더러운 세상에 남겨 두고 자연을 친구 삼아 깊은 산골에서 유유자적 살고 싶다. 자연 속에는 불의가 없고 오직 정의 만이 있으며 우리의 삶과 죽음은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시사N라이프> 출처와 url을 동시 표기할 경우에만 재배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