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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 In 호주(15)] 주인의식이 불러오는 나비효과①

칼럼니스트 레이첼 승인 2019.05.02 13:39 의견 0

메뉴가 소고기래서 따라간 어느 기업의 야유회. 술을 마시지 않는 나는 술 마시는 사람들이 모인 테이블과 최대 떨어져 앉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메뉴로 소고기가 아닌 돼지갈비가 나와서 실망했다. 돼지라는 메뉴에 계속되는 건배사까지 불평은 심해졌다.

새로운 지점을 시작하는 지점장부터 영업팀 직원들까지 모두 건배사를 외친 후에야 고기 먹을 시간이 주어졌다. 저기압일 땐 고기 앞으로 가라 했던가. 검증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갈비를 먹기 시작하면서 내 기분은 한결 좋아졌다. 기분이 한결 나아지자 서서히 주변에서 하는 말들이 들려왔다.

회장님은 지사장들에게 체인점이 아니라 자신의 가게를 운영한다는 마음으로 죽자 사자 해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호주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한 일개 직원이 영주권을 얻게 되었다는 기적 같은 이야기.

10여 년 전에는 호주의 영주권을 따는 것이 정말 쉬웠지만 갈수록 영주권 따는 길이 힘들어지고 있다. 실제로 호주 영주권을 준비하던 사람들은 준비하던 호주 영주권을 포기하고 캐나다로 넘어가고 있는 추세다. 불과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사업자가 직원들에게 임시 취업비자인 ‘457 비자’를 발행해주면 일하는 사람들은 일정기간 일을 하고 영주권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는 ‘노예계약비자’라 불렀지만 그 비자 또한 없어지면서 영주권을 획득할 수 있는 문턱이 더욱 높아졌다.

호주에서 머무는 동안 다양한 일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자면 내게 많은 도움과 아픔을 동시에 주었던 마사지 기계를 파는 일이었다. 마사지 기계 판매 기업은 시드니에 본사를 둔 한국인 이사님이 경영하는 기업이었는데 브리즈번에 새로운 지사를 열고 새로운 사람을 구하고 있었다. 지사 문을 연지 두어 달 후에 면접 볼 기회가 생겼고 면접 본 당일부터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단순히 핫팩을 열심히 팔았다. (이 기간에 많은걸 깨달았지만 오늘의 요지는 아니므로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겠다.)

지사장님은 직군교육과 더불어 판매의 팁을 꾸준히 가르쳐주셨고 나는 잘리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 해야만 했다. 그때는 학생 비자라 학비 및 생활비의 지출이 꽤 컸으므로.

지사장님이 교육 중 해주신 몇가지 이야기는 내 뇌리에 꽤나 깊게 자리잡았다. 그 중 하나가 지사장님이 이 일을 하기 전 영주권을 딸 기회를 받았던 내용이었다. 지사장님은 당시 워킹홀리데이를 온 학생으로 한 스시가게에서 일 했었다. 영어 실력이 출중하지 않지만 성실함 하나만으로 호주에서 버텨왔다고 한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한 시간 일찍 출근해서 가게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저녁에는 자신의 사비로 재료를 사서 스시를 말아보며 실력을 늘려갔다.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며 한 것도 아니었지만 지사장님은 스시집 사장님의 눈에 띄었고 가게의 열쇠를 받아내며 가게 오픈 및 마감까지 맡았다. 당시 매니저로 일하던 사람이 영주권을 바라고 열심히 일했지만 스시집 사장님은 영주권 줄 생각 없다고 못 박았다고 했다. 실제로 사장님들이 직원에게 영주권을 줄 경우 세금 등의 지출이 꽤 크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해주지 않는다.

그래도 매니저는 영주권을 포기할 수 없었던지 불안해하며 계속 일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지사장님은 시드니로 거처를 옮기기 위해 가게를 그만 두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매니저에게는 영주권을 절대로 주지 않겠다고 했던 사장님이 지사장님을 따로 불러 ‘영주권을 받게 해 줄테니 계속 가게에서 일해달라’는 요청을 해왔다고 한다.

그때 지사장님은 성실히 하면 전혀 예상치 못한 기회가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지사장님은 시드니로 이주했지만 그 때의 경험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해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아... 때의 지사장님처럼 주인의식을 갖고 열심히 일하길 바라시는구나.' 나는 몹시 불편해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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