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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민_이야기(34)] 신문사를 사직하다

칼럼니스트 봉달 승인 2019.05.05 09:27 의견 0

우리를 상대했던 심사관은 꽤 사람이 좋아보였는데 내가 징징대니까 맞다맞다 배를 보니 더 질문할 것도 없겠다고 막 웃었다. 그래도 자기들 규정이 있는 만큼 사진 찍어놓은 거 몇 개만 가져오라고 그런다. 아이고 분부만 하십쇼 당장 집으로 가서 2시간 안으로 가져오겠다고 하니 따로 약속 잡을 것 없고 그냥 어텐션 누구누구만 해서 두고 가면 된다고 한다.

다행히 잘 해결이 됐나 싶었는데 복병이 더 하나 있었다. 원칙은 인터뷰 시 모든 자료가 다 있어야 하는 것인 만큼 몇 시간 차이로 보충을 했다고 해서 자료를 한 번에 다 낸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한다. 자기 선에서 없던 일로 해줄 순 없고 매니저에 상황 설명할 테니 윗선에서 다시 리뷰하고 잘 처리해줄 거라고 그런다.

그 말만 철석 같이 믿고 집에 돌아와 기다리는데 몇 달이 지나도 영주권 카드가 안 오는 거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큰애가 태어나고도 한참 뒤 2년 넘게 지나 ‘영구’ 영주권을 받았다. 원래 결혼으로 받는 영주권은 기한이 있는 임시적 승인으로서 3년 후 배우자가 진실된 결혼이 맞다며 서류에 서명 후 다시 접수를 해야 한다. 나는 몇 년 동안 영주권이 나오지 않아 뭐 잘못된 게 있나 걱정이 많았다.

어느 날 갑자기 집에 우편으로 이민국에서 편지가 왔다. 내 결혼이 진짜고 잘 살고 있음을 지들이 verified 했단다. 뭘 갖고 검증했다는 건진 잘 모르겠으나 암튼 좋은 소식이라 신나하고 있던 중 일주일만에 영주권이 와서 보니 임시가 아닌 permanent라고 돼 있었다. 아 이런 일도 있구나 신기했다.

첫애가 태어나기 두어 달 전 다니던 신문사를 사직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결혼식 때 장기투자()를 해주신 커뮤니티 회장님들께는 먹튀나 다름 없는 죄송한 일이지만 나도 언제까지 박봉에 시달리며 미래가 없는 일을 계속할 순 없는 노릇이 아닌가.

정식으로 영주권이 나오기 전이었어도 노동허가는 받은 상태라서 이직에는 문제가 없었다. 진짜 문제는 뭘 해서 먹고 사느냐 하는 것이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정치학 전공에 글을 써서 깐죽대는 건 할만 했지만 그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미국에 오기 전 1년 정도 한국서 상사에 다니며 신입사원 교육을 받은 게 전공 외 경험의 전부였다. 주로 무역 관련 실무와 접대, 음주가무, 룸빵 미리 가서 세팅해 놓… 아 아니다 암튼 상사맨으로서 필수적으로 익혀야 할 술기를 많이 배웠다. 이걸 다시 써먹고 나아가 평생의 업으로 삼게 될 줄은 그땐 꿈에도 몰랐다.

시카고에 삼촌 친구분이 컨테이너 운송을 하고 계셨다. 몇 번 인사 드린 게 전부인데 결혼식 선물도 크게 해주시고 자주 챙겨주셨다. 내가 잘나서가 당연히 아니고 삼촌이 그동안 쌓은 덕을 내가 누리는 것이다.

뭘 해먹고 살까 고민 중에 밥이나 먹자는 연락을 해 오셔서 솔직하게 말씀 드렸다. 그랬더니 마침 잘 됐다며 물류업을 하는 아는 후배가 사람을 뽑는데 한번 가보라는 것이다. 통관과 포워딩을 겸한 회사로 먹고사는 데는 문제가 없을 거라고 한다.

*글쓴이: 봉달(필명)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한국에서 상사 근무 후 도미, 시카고에서 신문기자 생활. 물류업체 취업 후 관세사 자격증 따고 현재 캐터필러 기차사업부 Progress Rail의 통관부서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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